그리스 피라에우스 항구의 렘베티카

새로운 음악을 출산한 항구들

by 김주영

수년 전 튀르키예 이즈미르(Izmir)주의 산골 마을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곳에는 양봉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수백년 째 살아가는 그리스인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유럽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활기찬 지중해 도시 이즈미르시와는 대조적으로, 산골 마을의 그리스인들은 마치 세상을 피해 숨어든 은둔자처럼 조심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의미는 전혀 몰랐지만 그들이 나지막이 읊조리듯 들려주던 낯선 음악은 차마 말로 다 못 할 세월의 무게가 실려 있는 듯 했습니다.


그 낯선 슬픔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20세기 초 유럽이 저지른 ‘조급하고 황당한 실수’와 마주하게 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 대열에 합류한 그리스는 승리에 도취해 있었습니다. 당시 그리스를 지배한 정신적 지주는 ‘메갈리 이데아(위대한 이상)’였습니다. 과거 비잔틴 제국의 영토를 회복하고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까지 되찾아 대그리스를 회복하겠다는 원대한 꿈이었죠. 하지만 이 꿈은 지도부의 조급함으로 인해 비극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1차 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배하여 연합국은 오스만제국을 해체하려고 했고, 오스만 제국은 무스타파 케말을 중심으로 튀르키예 대국민의회를 결성하여 강력한 독립전쟁을 펼쳤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나톨리아 내륙 깊숙이 진격한 그리스군은 터키 독립군의 반격에 직면했고, 결국 패배하여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바로 이 ‘메갈리 이데아’의 열기가 뜨거웠던 1차 대전 전후를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소설 속 조르바가 보여준 터키인에 대한 멸시와 승리에 대한 자신감은 당시 그리스인들의 보편적인 기세였습니다. 그러나 그 거침없던 기세는 1922년 이즈미르 대화재와 함께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조르바가 상징하던 ‘자유로운 그리스인’의 낭만은, 오래지 않아 피라에우스 항구에 내동댕이쳐진 150만 난민들의 ‘처절한 생존’으로 뒤바뀌게 됩니다.


현재의 튀르기예 서부 해안지역인 아나톨리아는 밀레토스, 에페소스, 트로이를 비롯한 서구 철학과 과학, 예술이 발아한 인류 문명의 요람이라고 할 만한 고대 그리스 도시들이 수 천년전에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튀르키예 독립 전쟁이 끝난 1923년 체결된 로잔 조약은 인류사에서 가장 멍청하고도 잔인한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오직 종교라는 기준 하나만으로 ‘인구 교환’이라는 미명 하에 아나톨리아에 살던 그리스인과 그리스에 살던 튀르키예인들이 맞교환되었습니다. 그 결과 150만 명의 그리스인이 조상 대대로 살아 왔던 아나톨리아에서 쫓겨나 그리스의 피라에우스 항구로 밀려 들어왔습니다. 피라에우스로 쫓겨온 이들은 단순히 '가난한 이웃'이 아니라, 탈레스가 철학을 논하고 호메로스가 서사시를 읊조리던 인류 문명의 본향이자 자신들의 오래된 고향을 등 뒤에 두고 쫓겨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인이었지만 터키 말을 썼고, 몸에는 터키의 문화를 품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본토 그리스인들은 이들을 반기기는커녕 ‘터키 씨앗’이라 비하하며 이방인 취급을 했습니다. 이들은 그렇게 조국 안의 섬이 되어 고통과 좌절, 그리고 반항 속에서 서럽게 뿌리를 내려야 했습니다.


이 거친 삶의 토양에서 피어난 것이 바로 ‘렘베티카(Rebetiko)’입니다. 렘베티카는 소아시아(터키 서부 해안)에서 싹터서 그리스의 항구에서 만개한 '혼혈의 음악'입니다. 그 이름은 ‘길을 잃고 떠도는 자’ 혹은 ‘반항아’를 뜻하는 ‘레베테스(Rebetes)’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피라에우스 항구의 빈민가로 흘러든 이들은 스스로를 레베테스라 부르며 그들만의 하위문화를 형성했습니다. 국가의 미숙함이 초래한 비극을 온몸으로 받아낸 이들은, 가슴 속 허탈함과 분노를 부주키(Bouzouki)의 날카로운 선율에 실어 보냈습니다. 그들이 가져온 동양적 마캄(Maqam) 선율은 그리스 본토의 음악과 섞이며,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하고 서러운 항구의 음악을 탄생시켰습니다.


피라에우스는 고대 아테네의 번영과 영광을 상징하는 관문이었으나, 1920년대의 그곳은 국가의 거대한 실수가 남긴 흉터가 고이는 아픈 땅이었습니다. 스물 두살 먹었을 때 저는 피라에우스에서 수리를 마친 선박에 실습항해사로 승선을 했습니다. 그 당시 선배들이 들려준 그리스 사람들, 특히 선원들에 대한 세상사람들의 평판은 날도둑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는데, 그런 선입관때문에 아테네 공항에 마중나온 대리점 직원의 인상 또한 처음에는 거칠어 보였습니다.

2,500년 전, 아테네의 영광을 위해 전함이 출항하던 그 피라에우스 부두에 1922년의 난민들이 내렸습니다. 고대인들이 쌓아 올린 견고한 대리석 성벽 위로 난민들의 남루한 빨래가 널렸고, 승전보를 기다리던 항구의 환호성은 부주키의 낮은 탄식으로 바뀌었습니다. 피라에우스는 다시 한번 그리스의 심장이 되었으나, 이번에는 영광이 아닌 거대한 탄식과 슬픔으로 펌프질하였습니다.


렘베티카는 커다란 흉터 위에서 피어난 꽃입니다. 자신들을 버린 세상에 대한 저항이자,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지독한 향수인 렘베티카. 이 음악은 이즈미르에서 온 난민들의 세련된 동양풍 음악과 피라에우스 하층민들의 거친 감성이 섞이며 형성되었습니다.


렘베티카의 혼은 부주키에 있습니다. 긴 목을 가진 이 현악기는 금속 줄이 내는 날카롭고 쟁쟁거리는 소리가 특징입니다. 이 소리는 난민들의 찢긴 마음을 후벼 파는 듯한 효과를 줍니다.

음계의 차이 또한 현저한데, 중동과 비잔틴 음악의 전통인 '마캄' 모드를 사용합니다. 반음보다 더 미세한 음정을 사용하여 묘하고 서글픈 동양적 색채를 강하게 풍깁니다.

9/8박자의 제이베키코는는 렘베티카의 가장 대표적인 리듬입니다. 홀수 박자가 주는 불규칙함은 마치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나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형상화합니다. 이 리듬에 맞춰 혼자서 바닥을 쓸 듯 춤을 추는 것은 렘베티카만의 독특한 의식입니다.

렘베티카의 가사는 고결한 사랑이나 희망을 노래하지 않습니다. 대신 밑바닥 삶의 아픈 진실을 드러냅니다. 상실과 향수, 사회적 소외와 저항, 마약과 술에 의한 고통의 망각, 배신과 비정한 운명의 정서로 가득합니다.


1936년 권력을 잡은 독재자 요안니스 메타사스는 렘베티카를 '사회악'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는 그리스가 서구화된 '순수한 유럽 국가'가 되길 원했습니다. 렘베티카 특유의 동양적 선율(마캄)과 터키풍의 분위기는 청산해야 할 잔재로 규정하였고, 마약, 감옥, 무정부주의적 삶을 노래하는 가사가 청년들을 타락시킨다고 판단하여 경찰은 부주키를 연주하는 선술집을 급습해 악기를 부수었고, 음악가들을 섬으로 유배 보냈습니다. 하지만 억압은 오히려 렘베티카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독일 나치 점령기 동안, 렘베티카는 굶주림과 공포에 떠는 그리스인들의 마음을 달래는 유일한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바실리스 치차니스는 거칠었던 초기 렘베티카를 보다 세련되게 다듬어 대중적인 장르로 격상시켰습니다. 그의 음악은 가난한 노동자뿐만 아니라 중산층의 귀까지 사로잡았습니다.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음악 감독으로 유명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렘베티카의 부주키 선율을 현대 음악과 결합했습니다. 이를 통해 렘베티카는 '부랑자의 노래'라는 딱지를 떼고 '그리스의 민족적 자부심'으로 재평가되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렘베티카는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피라에우스 뒷골목의 연기 속에 갇혀 있던 노래가 전 인류가 보존해야 할 보물이 된 것입니다.


한때는 부서지고 숨겨져야 했던 부주키의 선율은, 이제 그리스 전역의 광장에서 당당하게 울려 퍼집니다. 국가의 미숙함이 만든 흉터를 개인의 예술로 치유했던 레베테스들. 그들이 남긴 렘베티카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어떠한 탄압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 존엄의 고백입니다.




Αργοσβήνεις Μόνη


'그대는 홀로 서서히 꺼져가네'는 1947년에 처음 발표된 바실리스 치차니스의 곡입니다. 그리스 내전 등 시대적으로 매우 혼란스럽고 가난했던 시절, 대중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던 라이코 스타일의 곡입니다.


Misirlou


원래 1920년대에 소아시아(이즈미르 등)에서 활동하던 음악가들이 연주하던 렘베티카 곡입니다.

1922년 강제 이주 이전에도 이즈미르(스미르나)와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의 카페에서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를 '스미르네이코(Smyrneiko)'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당시 소아시아의 그리스인들은 본토보다 훨씬 부유하고 세련된 문화를 누렸습니다. 이들은 바이올린, 카노나키(치터의 일종), 우드 같은 악기를 사용하며 아주 정교하고 화려한 동양적 선율(마캄)을 연주했습니다.

이 곡은 '이집트 여인'이라는 뜻으로 렘베티카의 핵심인 마캄(동양적 선율)이 극대화된 곡입니다. 뱀이 담벼락을 타고 넘어가듯 유연하고 이국적인 선율이 매혹적입니다. 영화 펄프 픽션과 택시 시리즈에서 삽입된 락 버전 OST의 원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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