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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칼립투스 Sep 13. 2021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이따금씩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 어디쯤 커리어 닻을 내려야 할까. 어릴 적부터 애늙은이로 통하던 동생의 답은 명확했다. "누나, 좋아하는 걸 하면서는 돈을 벌수 없어."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좋아하는건 취미로 하고, 잘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잘 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은, 돈이 되는 스킬을 쌓아 직업으로 만드는, 어찌보면 당연한 인생관이었다.


시간이 덧없이 흘러 20년이 지난 지금, 세 개의 직업을 거쳐 다시 원점이다. 더 이상 불러주는 직장도, 생각나는 사업 아이템이나 특출한 재주도 없다. '좋아하는 것'은 수동적인 취미 (영화를 보는 것, 음악을 듣는 것, 머리가 복잡할 때 글을 쓰는 것, 여행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떠는 것 등) 뿐, 돈이 될 만한,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것이 없다. 할 줄 아는건 돈과 시간을 소비하는 것 뿐, 타인에게 도움이 되거나 돈을 받을 만큼 가치를 주장할 것이 없다. 그럼에도 전업 주부로 살 자신은 없다. 가족들을 못살게 굴거나 시름시름 병들 것이 뻔하므로.


나의 모순은 이러하다. 혼자 있으면 곧잘 외롭고 기왕 무언가 일을 할때는 사람들과 함께인걸 좋아하지만, 나이에 걸맞는 리더십은 없고, 멋진 영화나 음악을 기쁘게 소비하지만 직접 컨텐츠를 만들거나 비평하는 데는 영 재능이 없다. 글을 쓰는것만 해도 그렇다. 극도의 빡침이나 극강의 우울감으로 바닥을 칠 때 가슴속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일기처럼 써내려가지만, 일관된 줄거리나 형식,또는 깨우침이 없으니, 다른 작가님들의 몰입감 높은 글들을 우러러 보며 내가 쓴 글들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자괴감이 들 뿐이다.


젋은 시절 난, 목표가 있으면 몸을 갈아 넣어가며 끝장을 보고야 마는 성격이었다. 대학원 졸업 전 취직하겠다고 수십번 거절을 마다 않고 매일같이 콜드콜을 돌리고, 전화 인터뷰 한번을 위해 이메일을 백번도 넘게 써내려 갈 정도로 열정이 넘쳤다. 긴 시간동안 '넌 어차피 안돼'를 반복 학습 해서인지 어린 시절 패기 넘치던 모습은 사라지고, 과한 자기검열로 주저만 하다 게으른 사람 취급을 받거나 자존심 상하기 싫은 마음에 매사 남의 눈치나 보는 약해 빠진 인간이 되어 버렸다.


글을 쓸 때 생각 나는대로 초고를 일단 쭉 써내려 가듯, 인생도 대충 연습게임 먼저 하고 탈고를 하듯 오탈자를 수정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워드에서 백스페이스 버튼 하나면 지워지는 실수가 인생은 먼 길을 돌아와야간신히 옅어지고, 때로는 영영 지워지지 않기도 한다. 내 주변에 어떤 사람들을 두는 지도 어느 순간이 되니 내가 선택하기보다, 더 이상 곁을 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까이기 십상이니. 나이가 들면 현 주소에 대한 책임감뿐만 아니라 이젠 내가 열심히 해도 정녕 더 이상 나아지지 않는 것일까 싶은 무력감과,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으니 뭐라도 해야지 싶은 조급함 사이를 조울증처럼 반복해서 오간다.


이번 직장이, '제도권'내의 명함을 내밀고 무언가를 하는 마지막이라는 씁쓸한 자각 하에, 호기롭게 사표를 던져놓고는, 여전히 매일 난, 자괴감과 희망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직장의 포근함을 벗어나도 사회적 존재인 동시에 경제적 주체로서 온전히 생존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선다. 더욱이 3-4년전 난 이런 시도를 이미 해본 적이 있고, 당시에는 10년 다닌 회사를 나오면서 얻은 공황장애와 대인기피로 결국 주저앉고 말았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오늘, 지금 이 순간 내 기분이 소중하고, 내가 사는 오늘을 최대한 행복과 보람으로 채우고 싶은 바램이 누구에게나 비슷하지만 똑같지만은 않다는걸 이젠 안다. 이렇듯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른 성격과 바램과 행복의 원동력을 가지고 있기에, 나도 그들도 모두 어느 정도는 해피하게 공존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바꿀 수 있는건 나 자신뿐이니,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잘 다독여 한 발짝씩 다시 나가는 수밖에. 내일이 어찌 될지, 지금보다 더 나빠질지 모르지만, 긴 시간이 흐르고 나면 또 지금보다 좋은 날이 올 것을 알고 있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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