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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칼립투스 Jun 09. 2020

엄마의 마지막 편지

딸아, 엄마는 그저 너가 행복하기만 하면 된단다

2009년 봄, 만 57세 생신을 갓 넘긴 엄마는, 홀연히 하늘나라로 먼 길을 떠나셨다. 울며 불며 이렇게는 못 보낸다고, 사는 내내 남편 자식 뒷바라지만 하다가 살만 해지기가 무섭게 위암 말기가 뭐냐고 원망하기를 일년. 남아있는 가족들 모두 절대 엄마가 시한부일 리가 없다고 현실을 부정하는 사이, 암 진단 받고 꼭 1년만에, 우릴 두고 허망하게 가셨다. 엄마를 보내고 일년 정도를 폐인처럼 산 것 같다. 출근을 해도 일하는 것 같지 않았고, 나도 모르게 멍 때리다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르길 수없이 했다. TV나 영화에 흔하게 나오는 임종 장면을 볼 때마다 꺼이 꺼이 통곡했고, 뜻하지 않게 하게 된 임신은, 당시 침울했던 내 기분을 한층 더 슬프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건, 제대로 된 사진 한장 미리 찍어둔 것이 없어, 임종을 앞두고 영정사진 고르며 인화했던 엄마 사진들을 꺼내볼 때였다. 사진속 엄마는 뽀얀 피부에 앳된 얼굴로 웃고 있는데, 현실속에선 다시는 볼을 쓰다듬을 수도, 갸녀린 어깨를 안아볼 수도 없는 엄마. 사진속 엄마의 웃는 모습은, 돌아가시기 직전 항암으로 검게 착색된, 볼이 움푹 파인 엄마의 얼굴을, 가장 잔인하게 상기시켜 주었다. 


끝날것 같지 않던 입덧과 오랜 가진통 끝에 찾아온 아이를 돌보느라 말 그대로 하루 종일 말도 안되게 헤매이던 시절, 엄마의 빈자리는 그 어느 때보다 클 수밖에 없었고, 그 무렵 우연히 발견하게 된, 굴러다니는 흰 A4 종이에 아무렇게나 휘갈겨쓴 엄마 편지를 보고 난, 그만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J야, 엄마는 그저 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힘든 시간은 그만큼 너를 단단하게 만들고, 너가 크게 쓰임받을 수 있도록 준비해줄꺼야." 


1970년대생으로 딸 둘에 막내가 아들인 집에서 둘째 딸인 난, 어릴 적에 엄마의 관심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언니는 맞이여서, 동생은 귀하게 얻은 아들이어서 공을 들인 반면, 난 언제나 '대충 내놓아도 알아서 크는' 존재였다. 눈치껏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지 않으면 호되게 혼이 났고,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처지면 언니나 동생에게 비교당했다. 그런 나에게, 돌아가신 엄마가 손편지를 남기다니, 감개무량으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엄마 말이라곤 평생 잘 들어본 적이 없는 반항꾼 답게 엄마는,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군데 군데 두줄로 긋거나 앞 문장을 뒤로 보내는 등 몇번을 고쳐쓰고는, 결국 매듭 짓지 못하고 고민끝에 '어차피 고집불통인 자식, 줘봤자 듣지도 않을텐데' 싶어 그냥 두신 듯 했다.


편지의 본문은, 아마 엄마가 살아계셨더라면 잔소리로 들렸을 내용이었다. '축복받은 처지에 감사할 줄 모르고 왜 매일같이 다니는 회사 때려치운다는 소리를 하는지'에서부터 '너희 아버지는 젊었을 때부터 퇴직하실 때까지 한번도 회사 그만두신다는 얘길 하신 적이 없다'는 등. 하지만 다른 구절은 그저 배경에 불과했고, 내 가슴팍에 와서 꽂힌 말은, 그 때도, 지금도, 단 한 마디였다. 


"엄마는 내 딸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살면서 엄마만큼 사심 없이 자식의 행복만을 바라는 존재가 또 있을까.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엄마 마음을 알았더라면 마흔이 되기 전, 죽을만큼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이 조금은 덜 괴롭지 않았을까. 왜 난, 살아계실때 힘든 일이건 좋은 일이건 엄마한테 더 많이 표현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엄마가 나에게 그랬듯, 나 역시 엄마의 행복을 바랬다고 말해드리지 못한게 너무 후회된다. 


한참의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이런 생각 할 여유가 생겼지만, 그 후로 난,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만큼은, 우리 엄마가 그랬듯이, 내 마음을 나 죽고난 후에 알게끔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그래서 난, 매일 밤이 되면, 이미 멀대같이 커버린 열한살난 아들에게 고백한다. 


"S야, 엄마는 그저 너가 행복하기만 하면 돼. 다른건 다 그냥 엄마 욕심일뿐,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단다."


매번 똑같이 얘기해 주는데도, 들을 때마다 아이는 얼굴에 불이 켜지듯 환한 웃음을 짓는다. 


"엄마, 엄마는 내가 그렇게나 좋아?" "그럼, 엄마는 S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무지무지 사랑해."


말도 안되게 초단순한 말 한 마디에, 아무 조건 없이 그저 내가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사람 한명이 있다는 사실이, 아이에게, 그리고 누구보다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알게 해주신, 돌아가신 엄마가 오늘따라 무척 더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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