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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칼립투스 Jun 07. 2020

프로걱정러의 마음 편히 사는 법

병든 마음을 한땀 한땀 추스려가다 깨닫게 된 것들

어려서부터 난, 유독 남들에 비해 걱정이 많았다. 무얼 시작해도 최악을 걱정했고,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면 이 사람이 나를 해치진 않을지 의심했다.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계획대로 안 풀리는게 하나라도 생기면 원인을 알 수 없는 울분을 터뜨리기 일쑤였고, 열 개 중 아홉개가 잘 되고 한 가지가 부족하면, 도대체 어디에서 그 한 가지가 잘못된건지 고민하느라 밤잠을 설쳤다.   


서른 중반 아이를 낳고 워킹맘이 된 후로는, 걱정 많은 성격이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체력은 달리고, 시간은 부족하고. 친정과 시댁 공히 도움받을 처지가 못되는 워킹맘의 일상은 시간에 쫓기는게 당연했다. 아침에 아이를 챙기다보면 지각하기 일쑤이고, 한참 비슷한 또래의 남자 동료들이 출세를 위해 쭉 달려 나가기 시작할때, 마치 피구하다 공에 맞아 사이드에 빠져있는 루저처럼, 멀찍이 떨어져 그들을 지켜 보아야 했다. 그렇게 십년을 상실감인지 불안함인지 모를 감정과 매일 마주하며 사는 동안, 집중력은 흐려지고 목표가 생겨도 '나같은 사람이 아'이까지 건사하며 어떻게 그런걸 할수 있겠어' 싶은 패배의식마저 생겼다.  


한창 인생의 저점을 한창 달리던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걱정 많은 성격을 타고난걸 마냥 탓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런 성격도 나름의 쓰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어떨까' '걱정이 많아 큰 불행이 닥쳤을 때 미리 대비책을 생각해두는 것과 실제 불행이 생겼을 때 매 순간 대처하는건 어차피 별개 아닐까' '그러니, 걱정은 걱정대로 치열하게 하되, 대책을 세웠으면 걱정을 그만두고 스스로에게 무브온 (move on, 인생을 계속 살) 할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냐고' '언젠가 한번쯤은 나같이 의심 많고 걱정 투성이인 인간도 쓸모 있는 날이 오지 않겠냐고' 


그렇게 난, 걱정 많은 성격과 작별하는 대신, 걱정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도 평화롭게 사는 법을 터득하기로 결심했다. 여전히 이따금씩은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일을 멋지게 해내거나, 무얼 해도 희망적이고 파이팅 넘치는, 같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들이 무진장 부럽다. 하지만 이젠 나와 다른 그들을 무턱대고 동경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진 본연의 소심한 성격 그대로, 부서지기 쉬운 멘탈을 지키고 마음 편히 살수 있는지 고민한 끝에 나름의 답을 조금은 찾은 것 같다. 나의 여정이 무척 개인적인 탓에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평소 의심이 많고 금새 비관적이 되는 성격이라면, 걱정에 파묻혀 죽겠다 싶을 때,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아래 순서대로 시도해보기를 권한다.   


1. 일단 숨돌릴 시간을 번다


할 일이 너무 많거나, 걱정이 쌓여 숨이 막힐 때, 무조건 그 순간에 모든걸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읽고 강박이라고 쓴다)을 버린다. 우선,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나 해결해야 하는 문제 중 조금이라도 덜 급한건 최대한 시간을 벌어둔다. 게으름을 피우라는 것이 아니다. 단 한 시간, 하루, 또는 일주일이라도 시간이 더 생기면 그만큼 더 급한 일에 집중할 수 있고, 해야 할 일들 스무가지 중에 제일 중요한 한두가지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으니까. 


급한 것들을 뒤로 미뤘으면 머리도 몸도 잠시 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TV나 영화, 별로 생각할 필요 없는 소설, 또는 아무 목적의식 없이 웹서핑을 하는 것. 제일 좋은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 그대로 멍 때리는 것이다. 채우기 전에 일단 비워야 한다는건 세상 모든 이치에 적용되는, 특히 내 머리에도 적용되는, 절대 진리다. 30분이든 한시간이든, 여의치 않으면 단 10분이라도 이렇게 비우는 시간을 갖고 나면, 제일 급하게 해치워야 할 문제를 다시 집어들 에너지가 생긴다.


2.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한다


급한 일을 미루어 시간을 벌고, 잠시 쉬어간 후에도 다시 활동을 개시할 에너지가 생기지 않는다면,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가만히 집중해본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통증감각은 명치끝이 답답하거나 가슴팍이 묵직하게 눌리는 식으로 느껴질 때도 있고, 심할 땐 머리끝까지 열이 확 오르거나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땐 손끝이 저릿할 때도 있다.  견디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를 받을 땐 망치로 두드려 맞은 것처럼 팔다리가 욱신거리며 아프기도 하고, 뒷목이 뻐근하기도 하다.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감각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자신을 돌아보고 감정을 달래주는 것. 마치 친구나 엄마가 해주듯이 'J야, 오늘 진짜 압박감이 심했나보구나.' 라든지 '어제  Y가 한 말 때문에 정말 많이 충격받은 모양이구나' 라고 다독이는것이, 처음엔 낯간지러워도 하다보면 그렇게 위로가 될 수가 없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한번씩 상처받은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용기가 되기도 한다. 다른 누군가를 탓하는 대신, '내가 오늘 이런 저런 일로 가슴팍이 눌리는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 상처를 받았다고'. 촉감으로 나타낼때 드러나는 감정의 힘은 생각외로 강력해서, 그 어떤 비유나 시각화된 묘사보다도 큰 공감을 끌어내게 된다. 그리고 나 자신과 가까운 타인의 공감이야말로, 나의 의심과 불안으로부터 치유를 향해 첫 발을 떼는 중요한 시작인 것이다.


3. 나를 정말 미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감각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달래보기까지 했는데도, 쉽게 불안과 분노의 감정이 가라앉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땐, 나를 이토록 자극하고 힘들게 하는 것이, 순간 차오르는 욱 하는 반응을 제어하지 못하게 만드는게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사람마다 가장 격하게 반응하는 대상, 제일 소중하게 지키고 싶은 마지막 보루는 제각각 다를 것이다. 나의 경우 마지막까지 가장 놓기 싫은건 '자존심'이다. 아무한테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게 싫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또는 일로 만난 상대방에게 멍청한, 또는 대충 사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거나 무시당하기 정말 싫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리스펙'의 대상이 되는, 그리고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 그런 바램에 미세하게라도 금이 가면 평소 온순해 보이는 외관과 다르게 사납게 돌변한다. 


이렇듯, 내 마음속 '핫 버튼'이 무엇인지 알고 나면, 그걸 인정하고 제어하기가 수월해진다.  매번 성공하는건 아니지만, 예전에 열번 열을 냈을 일을 이젠 서너번으로 줄일수 있는, 그런 효과다. '쪽팔려도 괜찮고', 내가, 혹은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해 누군가 날카롭게 비판을 한다 해도 그것이 꼭 나의 존엄을 해치는건 아니라고 마음을 바꿔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사소한 일로 자존심 내세우는 것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피곤하게 하는 일인지 서서히 깨닫게 되고, 결과적으로 'don't sweat the small stuff' (하찮은 일에 힘빼지 않는) 능력을 탑재하게 되는 것이다. 


4. 결과는 어차피 하늘에 달려있다는걸 인정한다


마음을 아무리 다스리려고 애써도, 시험을 보거나, 취직,  이직, 또는 승진을 앞두고 있다면 결과에 완전히 초연하기는 어렵다. 내가 사장이 되지 않는 이상 타인의 평가를 받고, 그 결과에 따라 나의 상대적인 지위가 결정되는건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게임의 룰을 '영리하게' 본인한테 유리하도록 바꾼 자들이 승기를 잡는걸 보고만 있어야 했던 적이 무수히 많았다. 그럼에도 나란 사람은 규칙을 내 마음대로 어기지 않고 우직하게 소처럼 남들보다 더 열심히 자가발전 하려고 노력해왔다. 그 결과 경쟁에서 밀리는 쓰디쓴 경험을 무수히도 했다. 


그럼에도 중요한 분기점을 앞에 두고 내가 할 수 있는건, 진부하디 진부한 '진인사 대천명'. 나의 최선을 다하고 나면, 결과는 내 손 밖에 있다는걸 쿨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운의 흐름이 내 편이라면 결과가 좋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다음번 도전할때 지금의 실패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므로. 결과에 아예 연연하지 않는건 어렵더라도, 남들이 쉽게 정의내린 '성공'에 목매달지 않는건, 그래서 '쪽팔려도 괜찮고', '내가 떳떳하면 경쟁에서 한두번쯤 밀려도 죽지 않는다는걸 깨닫는' 딱 그만큼의 여유가 생길 것이다.


5. 이도 저도 안되면, '해봤자 죽기밖에 더하겠어'를 기억한다


할 수 있는 모든걸 다 해봐도, 걱정과 불안이 가시지 않을 때도 있다. 나같은 경우도 심할 땐 끝도 없는 우울에 빠져 매일같이 몇 시간씩 자살충동을 겪곤 했다. 이럴때 최소한 나에게 가장 도움되었던 생각은 '해봤자 죽기밖에 더하겠어'였다. '어떻게 해도 언젠가는 죽을텐데, 호호 할아버지 (또는 할머니)가 되어 죽는 대신, 지금 잘해야 한 50년 더 일찍, 내 손으로 장렬하게 죽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을까' 라는거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논하기엔 아직 나의 인생경험이 일천하고, 이 포스트의 남은 공간도 무척 부족하지만, 어찌 되었든 죽을 때가 되면 지금 나를 너무도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 - 직함이나 명예의 상실, 경제적 궁핍, 가족이나 친구와 소원해진 관계 - 그 무엇도 더 이상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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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인생의 절반을 갓 넘긴 시점에 내가, 무슨 대단한 인생의 비법이라도 아는 양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무척 조심스럽지만, 언젠가 미래의 내가, 또는 이 글을 읽을 누군가가 심적으로 너무 힘든 시간을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지날 수 있다면, 그걸로 나에겐 더없이 기쁜 일일 것 같다. 지금 알지 못하는, 미래의 괴로움을 또 지나게 될 나 자신에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것이, 내가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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