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시각에만 온전히 온 신체를 맡길 때가 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또 전공을 계속해 온 탓인지
종종 보이는 것에 온 몸이 사로잡혀버린다.
특히 여름날의 그림자들을 바라볼 때 그러하고, 어둑한 곳에서 사물에 비치는 조명이나 초의 반사된 빛들을 바라볼 때 그러하다. 온몸이 그저 무언가를 바라보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빛을 바라볼 때 나는 일종의 쾌감을 느낀다.
빛의 찬란한 아른거림, 노란빛이었다가 금세 푸른빛이었다가 하지만 그 모든 게 결국 흰색 빛인 것들을 지켜보는 황홀함.
이렇게 글로 변환하지 않더라도 망막에서 바로 영혼으로 전달되는 메시지들이 있단 말이다. 한 사람이 쓰는 언어가 그 사람의 생각을 만들어가고, 그가 하는 행동이 그의 격을 만들어가듯이, 나는 그 사람의 감각들이 영혼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전에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빛들을 바라보는 순간이 있다’는 말을 당시 만나던 사람에게 한 적이 있었다. 딱 한 번 말해봤고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에 기억이 난다. 해가 어스름이 져가는 카페에 작은 티라이트가 흔들거렸고 늦여름이었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것들의 조합이었고, 그 빛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한 이야기였는데 상대는 비판적이었다. 그럴 수는 없고 생각은 무조건 언어로 치환된다는 주장이었다.
“ 진짜야, 한 번만 나와 같이 집중해보자”
나는 제안했으나 그는 수용하지 않았다. 아니,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점점 내 세계 전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결국 떠나갔다.
언어도 같은 말만 쓰다 보면 그 안에 갇히고, 그림자도 하늘의 구름도 흔들리는 불빛도 자주 바라보지 않으면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어려워진다. 음악도 배경으로 흘러가게만 둔다면 그 음의 높낮이에 반응하는 나의 마음들을 느끼기 힘들어진다. 말과 행동도, 모든 감각도 부단히 노력하는 자에게 더 넓은 세계를 보여준다.
빛은 자세히 보려고 하지 않는 자에게는 그 안에 담긴 수만 가지의 색을 보이지 않는다. 하늘은 언제나 우리 위에 있지만 고개를 올린 자만이 바라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