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에 살았더라면 수제비 너를....

by 미스블루

일요일이다.

유일하게 알람이 울리지 않는 일주일에 단 하루.

늘 일어나는 6시 20분에 저절로 눈이 떠지지만 억지로 다시 눈을 꼭 감는다.

침대에서 뒹굴뒹굴하고 싶다.

그냥 말 그대로 뒹굴뒹굴..

버티고 버티다가 9시 30분쯤 침대에서 나와 부스스한 머리와 잠옷 차림으로 부엌으로 향한다.

밖보다 집이 더 추운 그런 날이다.

한국에 사시는 분들은 이해를 못 하실 것 같은 그런 날씨가 이곳에는 있다.

물론 집에서도 외투를 입고 있으면 안 춥겠지만 그러기는 싫고 집에서 입는 라운지웨어 정도를 입고 있으면 참 추운..

그러다가 밖에 나가보면 따뜻한 햇살에 얼은 몸이 녹으며 '아니 집이 더 춥네..'라는 혼잣말이 나오는.. 그런 날씨.


수제비가 생각난다.

따끈한 국물과 포근포근한 큼지막한 감자가 들어있는 아주 얇게 떠진 수제비..

빵 만드는 반죽기계를 꺼낸다.

아이들이 어렸고 나도 어렸던 그 시절, 뭐든지 재밌어 보이던 그 시절에 동네사람이 하는 베이킹 클래스에 나가서 샀던 식빵 만드는 무거운 기계를 으랏차 꺼낸다.

별로 쓰지도 않아 새것이다.

원래 취미로 무언가를 배워보려고 할 때는 일단 뭘 잔뜩 사지 않는가...

영원히 영원히 이 취미생활을 즐길 것처럼..


15년도 넘은 기계를 꺼내 밀가루와 베이킹소다 소금과 계란, 약간의 올리브오일을 넣고 반죽 기능을 누른다.

아무리 봐도 참 신기하게 기계는 혼자서 반죽을 시작한다.

밀가루와 계란을 휘휘 섞어 천천히 몇 번 치댄다.

15분 정도 혼자 열심히 반죽을 치댄 후 동그란 수제비반죽을 나에게 내민다.

그 하얀 반죽을 받아 들어 쿠킹랩으로 감싼 후 냉장고에 넣어둔다.

구리로 만든 조금 깊은 냄비를 꺼내 멸치와 건새우 다시마를 넣고 국물을 우린다.

국물이 끊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감자와 양파와 호박을 준비한다.

감자와 양파를 먼저 넣어 익힌다.

호박은 상큼한 초록빛을 위해 나중에 넣을 것이다.

국물이 어느 정도 우러난 것 같을 때 국간장과 액젓과 소금을 조금 넣어 간을 맞춘다.

맑은 국물에 국간장을 조금 두르니 연갈색의 맛나 보이는 국물로 변했다.

호박을 넣어두고 이제 주인공인 수제비 반죽이 등장할 차례다.

얇게.. 정말 얇게.. 그렇지만 찢어지지는 않게... 그리고 반죽끼리 서로 들러붙지 않도록 시간의 간격을 주며 섬세하게 국물에 반죽을 퐁당퐁당 떨어뜨린다.

이 작업을 수없이 반복하니 국물 안에 제법 많은 수제비 아가씨들이 둥둥 떠서 수영을 즐긴다.

살결이 투명하고 보드랍게 변하면 불을 끄고 중간사이즈의 대접에 수제비를 담는다.

호박보다 감자가 조금 많게.. 그 사이사이로 살결이 고운 수제비 아가씨들이 유유히 떠 있도록 비율을 잘 맞춘다.

참기름을 한 방울 넣고 굵은 후춧가루를 조금 갈아 넣은 후 조미김을 잘라 수북이 얹는다.


식탁으로 조심히 가져와 국물을 한입 떠먹고 폭신한 감자를 한입 베어문다.

감자가 다 없어지기 전에 야들한 수제비를 한점 떠 입안으로 넣는다.

미끄럼틀에서 내려오듯 수제비는 내 혓바닥 위에 탄성을 지르며 우아하게 안착한다.

얇다. 성공이다. 만족한다.

그릇이 다 비워갈떄쯤 입고 있던 스웨터를 벗어 식탁위자뒤에 걸어놓는다.

몸은 제 온도를 되찾고 일주일의 피로가 몸에서 벗겨내지는 기분이다.

나의 에너지는 Full charge가 되었다.


내가 한국에 살았더라면....

이런 상상을 매 순간 해본다.

내가 한국에 살았더라면 수제비 한 그릇을 먹겠다고 주말아침에 빵 반죽기를 꺼내 반죽을 만들어 수제비를 손수 끓여 먹었을까?

분명 단골로 드나들던 노포가 있었을 것이다.

주말아침에 손으로 쓱쓱 대충 머리를 만지고 현관에 나뒹구는 슬리퍼를 신었을 것이다.

나가는 길에 쓰레기를 손에 들었을 것이고 쓰레기수거함에 들렸다가 손을 털며 길을 나섰을 것이다.

몇 발자국 걸어 낡은 노포의 알루미늄 문을 쓰윽 열며 들어가면 주인아주머니는 주방에서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앉아 손만두를 빚거나 야채를 손질하고 계셨을 것이고 주인아저씨는 티브이를 틀어두고 국물용 멸치를 간식 삼아 씹으며 오랜만에 오셨네 라는 반말과 존댓말이 뒤섞인 알 수 없는 유형의 정다운 말을 건네며 나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셨을 것이다.

수제비 한 그릇을 달라는 나의 말에 주인아주머니는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하던 일을 멈추고 주방으로 들어가시고 멸치육수 냄새가 가득한 가게 안에서 주인아저씨와 함께 티브이를 보며 수제비를 떠서 먹었겠지 싶다.

속으로 분명 수제비를 조금 더 얇게 떠주셨으면 좋았을걸..이라고 했겠지만 그다지 뭘 더 바라는 것도 더 좋은 서비스의 기대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알루미늄 문을 열고 나오면 차가운 바람이 나의 얼굴에 닿았을 것이고 수제비를 먹고 나서 훈훈해진 몸에 시원한 청량감이 들었을 것이다.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벌렁 드러누워 티브이를 보며 한 주일의 시름을 가라앉혔겠지 싶다.


늘 하는 상상..

내가 한국에 살았더라면...

오늘도 어김없는 나의 상상을 캘리포니아의 햇살이 가로채어 던져버린다.

넌 여기 있어.

거기에 없다고...

햇살은 샘이나서 볼록해진 얼굴로 나에게 잠시 눈을 흘긴다.

그래도 나는 끝까지 한다.

내가 한국에 살았더라면 수제비 너를 내손으로 빚어 내 뱃속으로 넣었을까? 훗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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