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가락 엄지에게..

by 미스블루

엄지가 약해졌다.

엄지에 힘이 들어갈 때 무리를 느낀다.

몰랐다.

엄지가 괜히 엄지가 아니라는 것을..

엄지가 그런 꼴이 되고 나서야 엄지가 하는 일을 자세히 살피게 되었다.

일단 뭔가를 쓰려고 펜을 잡을 때 둘째와 셋째가 아무리 준비 자세를 잘하고 있다고 해도 엄지가 마지막에 펜의 목덜미를 힘주어 딱 밀어주지 않는다면 펜은 둘째와 셋째를 깔보며 제멋대로 움직여 우리에게 필체가 영 그렇다는 소리를 듣게 할 것이다.

우리의 분신과도 같은 폰을 사용할 때는 어떤가?

스크린 위에서 칼춤을 추는 양 엄지를 보게 된다.

문자는 속도전이다.

문자속도에서 밀리면 모든 일이 밀린다.

물건을 잡을 때면 엄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대번에 알게 될 것이다.

마지막에 엄지가 척 나서주지 않는다면 멀리 있는 팔의 힘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팔의 눈치가 상당히 보일 것이다.

눈치는 눈치대로 보지만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는 팔의 미흡한 일 처리에 잡으려던 물체는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날 것이다.

안 열리는 병뚜껑을 생각해 보자.

아무리 네 손가락이 합심해서 병뚜껑을 열으려 안간힘을 써도 엄지가 등짐을 지고 딱 버텨주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치약을 짤 때는 또 어떠한가.. 엄지가 짜주지 않으면 누가 치약을 짤 것인가..

더 말하면 뭐 하랴..

끝이 나지 않는 이야기다.


엄지의 뜻을 찾아보았다.

으뜸, 최고, 우두머리를 상징하며 손가락 중에서 가장 굵고 짧은 첫 번째 손가락으로 어머니 손가락에서 유래된 말

으흠... 마음에 든다.

그렇다면 집안의 우두머리는 엄마였단 말인가?

sticker sticker


언젠가 어느 책에서 몸을 아껴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책에서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려주었다.

당신이 평생 차를 한대만 가질 수 있다면 그 차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상상을 해보았다.

그 한대의 차에 대하여

나는 아마 걸어서 도저히 갈 수 없는 거리를 갈 데만 그 차를 이용할 것 같다.

어떤 길이 자갈밭이나 진흙 투성이라면 절대 그 차를 끌고 그런 길을 지나가지 않을 것 같다.

주행거리를 최대한 아껴서 수명이 빨리 닳지 않도록 애지중지할 것이고 녹이 슬거나 찌든 때가 들지 않도록 세차도 정성 들여할 것이다. 물론 손세차로다가 말이다.

그 금덩이처럼 아까운 차가 우리 몸이나 마찬가지라는 작가의 말을 듣고 정말 몸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하게 지내는 치과의사인 지인은 40대부터는 마른오징어도 먹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였다.

이를 아끼고 아끼라고 말이다.

여기저기 다 아끼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엄지를 아끼라는 말은 듣지 못해서... 아껴주지 못했다.

엄지의 힘이 빠지고 나서야 엄지도 아껴야 하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것이다.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할 때면 무엇보다 엄지가 먼저 나선다.

엄지가 불편해지고 나서부터 먼저 나서는 엄지를 붙들어 세운다.

'엄지 빠져..' 낮고 엄한 소리로 말을 한다.

깜짝 놀란 엄지가 행동을 멈추고 으레 엄지가 나서 주어 버릇이 없어질 데로 없어진 나머지 손가락들이 서로 먼저 나가라며 싸움을 시작한다.

어느 손가락 하나 엄지만 못하지만 그래도 해 버릇 하라며 하게 놓아둔다.

엄지는.... 좀 쉬어야 한다.

한평생 가장 많은 짐을 지었다.

한 번도 왜 내가 늘 먼저 해야 하냐며 불평한 적이 없다.

그저 모든 일이 저 혼자만의 일인 양.. 내가 안 하면 누가 하냐는 마음으로 힘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밤이고 낮이고 그저 벌떡 일어나는 모양이...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이며...라는 가사의 '어머니의 은혜'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엄지는... 이름 그대로 엄마였다.


'엄지 손가락 마사지법'이라는 동영상을 찾아 배운 대로 손목부터 지긋히 누르며 엄지 아래쪽 근육까지 쓸어준다.

엄지는 평생 처음 당해보는 호강에 기쁘지만 쑥스러워서 어쩔 줄을 몰라한다.

시큰해하는 엄지를 다른 손으로 꼭 잡고 가만히 있는다.

엄지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내 심장소리와 함께 엄지의 조그만 혈관이 뛰는 소리가 들린다.

미안해서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내가 나에게 주는 위로에 따뜻한 눈물이 흐른다.

평생 고생만 한 엄마 손가락.. 엄지

이 글을 휴가를 떠나는 나의 엄지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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