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하지만 계속되는 젠트리피케이션
| 2019년 5월 7일 발행
| 이 내용은 원본의 수정 및 보완 버전입니다.
지난 연휴, 전 아주 오래된 베프와 춘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원래 3일간 통영을 가고자 했지만 몸이 좀 좋지 않은 관계로 일정도 반 토막, 거리도 반 토막 뚝 잘라 여행지를 수정했죠. 즐거운 마음 한 편엔 어렵게 휴가를 잡은 친구에게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춘천엔 예전과 또 다른,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 가득하여 그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반감되었습니다. (하긴, 마지막으로 간 게 춘천행 무궁화호 열차에서 욘사마의 겨울연가 ost가 나올 때였으니... 그럴 만도 하네요. -.-)
맑은 햇살과 뻔한 표현이나 그야말로 푸른 자연, 사실 기대하지 않았지만 수준 높은 일러스트를 전시 중인 갤러리로 여행의 시작에 축포를 날린 남이섬. 정말 알찬 여행지였습니다.
그저 어설픈 포토존이 아닐까, 그동안 개의치 않았던 김유정역이 준 뜻밖의 즐거움. 연휴지만 생각보다 사람이 없어 그런진 몰라도 그곳 또한 아무 생각 없이 추억에 잠겼다(?) 올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통(?) 관광지 외에 뜻밖의 즐거움과 감성을 남겨준 곳이 또 있었는데요. 바로 '육림고개'였습니다. 별 계획 없이 여행을 간 저희는 해가지기 시작하자 어딜 갈까 그때서야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무작정 인스트그램에 '춘천'이란 키워드를 입력했고, 그중 한 장의 사진에 꽂혀 이곳을 방문한 것이죠.
'육림고개'는 청년 상인들이 주축이 되어 다시 살아난 재생골목입니다. 저는 못 봤지만 '다큐멘터리 3일'에도 소개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기도 한다 합니다. 8, 90년대까진 호황을 누리던 춘천 명동 바로 옆 거리가 점차 쇠퇴했고, 나지막한 언덕 골목에 남은 이곳은 시의 서포트와 청년들의 감각, 도전으로 새로운 활기를 띠게 되었다 합니다.
실제 육림고개에는 대세라 할 수 있는 빈티지, 뉴트로 콘셉트의 가게들이 생각보다 많이, 길게, 자기만의 개성을 단단히 하며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도착 전엔 그저 가게 몇 개가 어설픈 테마파크처럼 놓여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실제로 만난 그곳은 훨씬 재미있고 즐거운 곳이었습니다. 특히 해가 지는 저녁과 밤에 즐기면 더 좋을 것 같은 운치와 감성이 넘치는 곳이었죠. 만족도 별 다섯 개 중 4개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행에서 돌아와 이 거리를 더 알아보고 SBHV에 소개하고자 각종 자료를 찾아본 지금은, 그 자체의 매력보다 다시금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평화롭고 행복해 보이던 그곳도 잠시 잊고 있던 이 반복적 문제를 끌어안고 있었죠.
요는 이렇습니다.
죽어가는 상권이라 하여 모든 가게가 문을 닫은 건 아니었기에 이곳에 유입된 청년들은 기존의 상인들과 공존의 생활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뉴트로 콘셉트의 디저트 가게 근처에 빨아놓은 면장갑을 가득 널어놓은 생선가게가 있는 식이죠. 그 두 그룹의 상인들은 되살아난 골목에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시의 지원을 받아 월세도 내고, 기타의 것들을 꾸려가는 청년들과 달리, 기존의 상인들은 그들이 유입되며 소요되는 각종 금액들 (예를 들어, 골목에 길게 이어진 예쁜 조명을 위한 전기세)과 두 배 이상 상승된 월세 등의 압박을 떠안게 된 것이죠. 시에서 마련한 시스템상, 새로 유입된 청년들에 의해 시작된 조명 전기세마저도 기존 상인들이 부담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 된 것이고, 두 배 이상 급상승한 월세에 대한 지원 또한 기존 상인들은 시로부터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권이 살아나 좋기는 한데 결국은 더 큰 출혈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기존 상인들... 참 아이러니한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죠.
유독 빠른 변화의 바람이 부는 한국 사회와 업계의 특성상 이러한 아이러니와 문제점들이 낯선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문제점들이 계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면 이쯤 해서 잠시 그 속도를 늦추더라도 대대적인 수정과 보완이 우선시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책을 잘 몰라 쉽게 하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안타까워 그 맘을 떨칠 수 없습니다 ㅜ.ㅜ ) 힘든 청년들과 상권을 살리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초래할 또 다른 문제를 조금 더 깊이 사료하고 DB화 하면 좋겠습니다.
'시작은 창대하나 그 끝은 '임대 중''인 지금의 경리단길, 서촌 등과 같은 현상이 강원도 춘천에서도 반복되지 않고 잘 해결되었으면 합니다. 그 문제의 솔루션을 육림고개가 지금이라도 찾게 된다면, 우리나라 전역에서 계속되는 'OO단길' 붐이 더 건강하고 올바른 우리만의 문화로 잘 안착되겠죠? (아직도 안타까워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있네요. ㅎ)
부디 상권만 살고 상인은 죽어가는 일이 어서 끝나길 다시 한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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