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데 꼬박 일 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지난해 7월, 영국의 대학을 졸업하고 비자 만료 직전인 10월에 한국에 들어왔다. 영국 내에서 비자 신청 중에는 다른 국가로 갈 수 없는 게 맞지만 나를 담당했던 셰필드 비자센터의 직원은 ‘나 시월에 한국에 다녀올 거 같은데 괜찮을까?’라는 나의 질문에 ‘물론이지. 여권도 너한테 있으니 문제없어.’라는 대답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11월에 다시 돌아온 영국 공항에서 문제가 되어 나는 그 날 오전부터 거의 세 시간가량을 이민국 작은 사무실에 잠도 덜 깬 상태로 앉아 온갖 서류들을 조회했다. ‘영국 내 비자 신청 중 해당 국가를 떠났기 때문에 다시 비자 신청이 필요함.’이라는 대답과 함께 그들이 끊어준 비행기 표를 가지고 나흘 후 다시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 뜻하지 않게 돌아와서는 며칠 멍하니 있다 영국 이민국 쪽과 이메일을 주고받은 후에야 서로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들은 환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 사과하며 환불해주었고 나는 다시 한국에서 처음부터 비자 신청을 다시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진이 다 빠졌다. 그래도 서류를 미리 잘 정리해놓은 덕에 몇 가지 서류만 더 챙겨 한국에서 다시 비자를 신청하고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마음 다독이며 보냈다.
그 날을 기억한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19의 조짐이 심상치 않아 보이던 그때, 할머니가 아프셔서 모시고 병원에 가 대기 의자에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데 진동이 울리더니 액정에는 문자가 밝게 떴다. 여권이 한국 센터에 도착했으니 수령하라는 연락이었다. 그게 한 이월 말 즈음이었다. 길게만 느껴지는 주말을 보내고 등기 수령을 신청한 나는 발만 동동 구르며 등기를 오전 내 기다렸다. 그 어느 날의 초인종 보다도 떨리는 소리에 크게 뛰는 심장소리를 느끼며 등기를 받고 서명을 하고 거실에서 서류봉투를 부욱 찢었다. 종이 두장과 내 여권이 들어있었다.
‘왜 종이가 들어있지? 거절 사유가 적힌 걸까? 왜 나는 늘 되는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채 여권을 열어보니 새로운 2년 반 짜리 비자가 떡하니 붙어있었다. 그동안 참아왔던 설움이 터져버려 작업 중인 오빠의 방 문을 열고 엉엉 울어버렸다. 글로 쓰니 별일 아닌 것 같지만 내겐 생이별을 한 애인이 영국에 남아있었기에 삼 년같이 길고도 또 길게 느껴진 삼 개월이었다.
앞서 말한 듯이 코로나 19 사태는 종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KLM 네덜란드 항공으로 암스테르담을 경유해서 영국에 내가 사는 도시인 Leeds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했지만 매일매일 달라지는 상황에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신천지 사태가 터진 후 네덜란드는 한국발 비행기의 모든 랜딩을 불허했고 내 비행기 표는 취소해야만 했다. 그렇게 기약 없는 기다림이 또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