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엿같은 일이다.
삼 년 전 즈음에 학교를 다닐 때 오후 네시에 수업이 끝나 밖으로 나왔더니 웬걸, 세상은 밤 아홉 시의 풍경을 하고 있었다. 내 시계가 잘못되었나 싶어 핸드폰 시계를 확인해보았지만 오후 네시가 맞았다. 꽤나 충격적이었다. 한국의 겨울은 오후 여섯 시 정도에 캄캄해지는데 솔직히 그 정도는 괜찮다. 왜냐하면 밤 새 거리를 메우는 상점들의 불빛들로 이미 환해지니까. 하지만 여기는 그렇지도 않다. 오후 다섯 시면 카페는 죄다 문을 닫는다. 술도 안 마시는 나는 갈 곳이 없다.
영국의 겨울은 우울함 그 자체다. 해도 잘 뜨지 않을뿐더러 기껏 떠오른 태양은 금세 모습을 감추기 일쑤다. 사람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이딴 식일 거면 애초에 뜨질 마!라고 외치고 싶다만 영국에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서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에 가면 그 망언이 현실인 세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한국이 자살률 1위라는 걸 납득할 수 없어진다. 날씨가 우중충한 저곳 사람들 정신건강은 괜찮을까?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나는 소금에 절여진 배추처럼 축 처지는데.
사 년 차의 겨울을 맞이했다. 여전히 오후 네시에 캄캄해진 바깥을 바라보면 기분은 엿같다. 그래서 부지런히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줄 것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일단은 한 시간 단위로 쪼개어하고 싶은 것들을 한다. 유튜브를 보고 웹서핑을 하는 것에 한 시간이라는 제한을 주지 않으면 나는 그 넓은 바다에서 헤엄치다 오히려 망망대해에 둥둥 뜬 기분과 마주하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핸드폰에 한 시간 알람을 맞춰두고 뭐든 시작한다. 요가가 되었던 웹서핑이 되었던 독서가 되었던. 보일러 따윈 없는 영국의 우리 집에 핫 워터 보틀을 들였다. 조그마한 고무팩으로 된 물 담는 걸 부드러운 퍼로 감싼 뭐 그런 건데 수족냉증이 있는 내게는 없어서는 안 될 아이템이다. 발 근처에 그걸 두면 기분이 나름 괜찮아진다. 그래도 춥고 우울하면 요가를 하며 몸을 나름 부산스레 움직이고 따뜻한 차를 마신다.
해만 일찍 지면 다행인데 비까지 추적추적 내린다. 안 되겠다. 오늘은 스릴러 영화라도 한 편 보고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