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내가 가장 마지막에 고를 커피의 옵션이다. 카페에 가면 나는 대부분 플랫화이트나 라떼, 가끔 핸드드립을 마시는 편이고 피곤하거나 디저트와 함께일 때에는 아메리카노를 따뜻하게 주문해서 천천히 오래 마시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들이 늘 신기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어찌저찌 몸에 좋은 차 마신다는 느낌으로 마시다 보면 정신도 또렷해지고 좋았는데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마시는 순간 두배는 쓰디쓰게 느껴지는 착각이 머리를 띵-하고 울린다. 기분 탓일까 하고 한 모금 더 마셔봐도 차갑고 쓰다. 물론 고등학생 때 아무것도 모를 때에는 엔제리너스의 자잘한 얼음이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설탕시럽 정확히 세 펌프를 넣어 세차게 휘젓고 한 모금 들이키며 독서실로 향하며 ‘이런 게 현대 여성의 라이프 뭐 그런 엇비슷한 건가’ 하는 기분을 느끼곤 했는데 흠. 글쎄 그건 커피 향 설탕물이었었고.
아무튼 그랬던 내가 지난 시월 한국에 들어와서도, 비자가 꼬이게 되어 한 달 머무를 계획이던 한국에 근 1년을 머물게 되면서도 나의 커피 취향은 영원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올해 여름 나는 기어이 아이스 아메리카노형 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생명수구나 이것은. 살기 위해 마시는 느낌이 좀 더 강하게 느껴졌다. 점심을 먹고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별다른 죄책감 없이 칼로리 걱정 없이 개운하면서도 정신을 말짱하게 해주는 아주 효자스러운 음료였다.
커피 한 잔을 마시는데 많은 생각을 한다. 주문하기 직전에 가장 많은 생각을 가장 빠르게 하곤 한다. 아이스 바닐라 라떼 마시면 살찌겠지. 그렇다고 아이스 라떼 마시면 우유가 들어가 있어서 달달한 게 먹고 싶어 지려나. 아. 어떡하지. 그냥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실까. 물론 맛이야 없겠지만 입맛이 떨어지는 장점 아닌 장점이 있으니까.라는 생각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해버린다.
요즈음 나는 아침에 내려마시는 핸드드립 커피와 오후에 마시는 레이디 그레이 차, 그리고 물. 이 세가지만 마시는 편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제대로 파는 곳도 없고 판다고 해도 맛이 한국만 못하다. 그리고 손이 시려운 계절이 와버렸다. 그래서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한국을 추억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나가던 고등학교 특강은 아홉 시 시작이라 아이스 아메리카노 없이는 정신을 또렷하게
차리기 힘들었던 올해 여름. 의도치 않던 일들이 많이 벌어졌고 뜻밖의 인연들이 많았던 시간들 속의 내 모습이 자주 그립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씩 두고 오고 가던 친구들과의 실없는 수다도 많이 많이 그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