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 생활이 오랜 시간 이어지는 내게 밀물과 썰물처럼 자주 찾아오는 것 중 하나는 미화된 추억 덩어리들이다. 영국에 온 지 일 년 차 때에는 현남친과 전남친과 전전남친이 모조리 떠올랐다. 그리고 모두가 비슷비슷하게 그리웠다.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내게 그들은 모두 지금 당장 볼 수 없는 사람들이라 느껴졌고 가끔 꿈속에 오래전 전남친이 나와버리면 아 이게 뭔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전남친 히스토리의 엉킴은 애교다. 별 거 아닌 것들이 계속해서 그리워지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서울의 복작거림과 지옥철, 작은 한 칸의 원룸, 나 말고 모두가 반짝이는 것만 같아 초라해지던 마음까지도 미화되려 하는 걸 지켜보고만 있자니 나는 참 미련 많은 인간이구나 되새긴다. 엄마는 어디에 있던 지간에 마음가짐이 중요한 거라고 말했다. 말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끔 마음이 힘들 땐 어쩔 수 없다. 칭얼거리는 나를 그저 달래는 수밖에.
락다운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누굴 맘 편히 만나러 나가지도 못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거나 애인과 고양이 감자와 보낸다. 한국에서는 가족도 있었고 부르면 나오는 친구들도 한가득이었고 친해진 카페 사장님들도 있었고 심지어 가끔 심심하면 오빠랑 집 앞 초등학교 인조잔디구장에서 함께 축구를 하던 중딩들도 있었다. 이렇게 고요한 시간 속에 나는 가만히 생각한다. 내 삶을 지탱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나는 대답한다. 나를 둘러싸는 사람들, 내가 믿을 수 있고 마음을 여는 그런 사람들. 그리고 경제활동에서 오는 약간의 자아실현과 자존감. 그리고 물욕을 조절하며 가끔 무언가를 가지게 될 때의 기쁨.
아이러니하다. 돈 잘 벌고 있다가 지금 아니면 자리 잡아버릴 것 같다며 코로나를 뚫고 다시 영국에 돌아와 놓고는 향수병에 골골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