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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Aug 19. 2018

어떤 해석을 존중할 것인가

마감 후 #5 - 안희정 1심 재판결과



지난 화요일, 8월 14일은 여름특집이 시작되기 전 날이었다. 우리가 원래 하던 방송을 그대로 할 수 있는 마지막날이었다는 뜻이다. 오전에 가장 중요한 1부 인터뷰 아이템에 대한 의견을 나누다가 금세 하나로 모아졌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선고가 무죄로 나오게 되면, 1부는 다른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결과는 무죄였고, 우리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김혜정 부소장을 섭외해 방송을 내보냈다.



다음 날인 8월 15일, 공판을 취재한 경찰팀 기자와 카톡으로 장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며칠 뒤에는 다른 기자/PD 선배들과 이 내용으로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동안 딱히 말이나 글로 표현할 필요가 없었던 내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였던지라 기록삼아 남겨본다.




1. 위력행사의 문제


사법부는 법리와 판례에 따라 판단한다. 이 사건을 위력에 의한 간음으로 보면 기존의 법리와 판례에 비추어 무죄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이야기는 2월부터 질리도록 들었다(그게 바람직하다는 게 아니라 사법부가 그만큼 답답하다는 취지였다). 그래서 검찰이 유죄를 받고 싶었으면 위력에 의한 간음이 아니라 다른 혐의를 적용했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의 핵심은 위력이다. 피해가 쉽게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이유도, 결국 피해가 발생한 이유도 위력이다. 그런데 기존의 판례가 위력의 의미를 좁게 해석해 와서 불리하다는 이유로 다른 혐의를 적용한다는 것은 글쎄,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가능했다 해도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안희정의 행동이나 주장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 뒤집어서는 피해자의 피해상황이나 피해 이후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의심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상당수 있다. 반면에 나를 포함하여 피해자의 행동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다행히) 더 많이 있다. 전자와 후자 사이에 중간지대는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왜일까.


직장에서든 일상에서든 권력을 가진 사람의 불쾌한 행동과 결정에 저항할 수 없었던 순간들을 숱하게 겪고, ‘그 새끼를 죽였어야 하는데’라는 분노에 잠못이루다가도 다음날 카톡에서는 그놈에게 “ㅋㅋㅋ”를 날릴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유사한 상황이 반복되는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피해자의 서사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어색은 커녕 공감 대잔치겠지.


반대로 안희정에게 공감하는 사람은? 운이 정말 좋아서 위력관계에 乙로서 놓여본 적 없거나, 그 어떤 부당함에도 굴복해본 적 없는 알파휴먼이거나, 내가 저 자리에 가면 저렇게 해야지, 라며 권력자와 동일시하는 스타일이거나, 아니면 일상적으로 가해를 저지르는데 주변에서 말을 안 해줘서 모르는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겠지. 위력관계에 대한 이해 혹은 공감이 이 사건에서 누구의 입장에 설지를 가른다.


그래서 핵심은 위력이다. 기존 법리가 판례가 어쩌고 저쩌고, 조금만 검색해보면 유죄가 나올법한 가능성에 대해 법조인들이 열심히 써놓은 사례들을 찾을 수 있다. 원래 위력에 의한 간음이 장애인이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만 유죄가 잘 나왔고 어쩌고를 얘기하는 건 앞으로도 계속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라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아무리 기존 법리와 판례상 불리해도 이 사안의 핵심은 위력이고, 그렇기에 검찰이 위력에 의한 간음으로 안희정을 기소한 건 당연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재판부를 이해한다는 취지로, 1심에서 기존의 법리나 판례보다 대담하게 나아간 판결을 내리긴 부담스러웠을 거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럼 1심은 대법 판례랑 법리 넣어서 AI가 재판해도 된단 소리다. 헌재에서 두 번이나 합헌 나왔던 양심적 병역거부를 헌법불합치로 만든 동력 중 하나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무죄”라는 판결을 내린 수많은 1심 재판부였다.


또 한 가지, 판결문을 읽어보면 법원이 그래도 고민을 많이 했다는 티가 난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그 부분은 나도 동의한다. 다만 법원은 성적자기결정권이 무엇인지, 그리고 위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약자의 심정이나 행동패턴에 공감하기 위해 고민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법원이 욕을 안 먹을 수 있을지를 열심히 고민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지 않고서야 성적자기결정권을 왜곡하고 입법부에 책임을 떠넘기는 판결문을 쓸 수가 없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2361384000565264&id=100000810626090&__tn__=-R


2. 피해자다움이라는 문제


밥을 어디서 먹었고 원래 다니던 미용실에 또 갔고 등등을 들어 피해자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피해자가 명백히 사후추인의 신호를 보내지 않는 한, 피해상황 이후에 대해 왜그렇게들 관심이 많나 모르겠다. 가해자가 원하는 식당일 뿐만 아니라 내 업무상 찾아야 할 식당이고, 가해자가 다니던 미용실이 아니라 평소에 다니던 미용실이다. 식당이고 미용실이고 가지 말았어야 한다는 건 피해자가 자신의 일상을 전부 포기해야만 피해자로 인정해주겠다는 뜻이다(그걸 왜 니들이 인정하냐고..). 피해자의 일상적 삶의 공간에서까지 피해자를 몰아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관음증적 2차 가해를 신나게 입에 담는 것도 참 이해하기 어려운 성격이다.


ps. 나에게 이 이야기를 한 사람들 중에 내가 바로 반론하지 못한 경우가 있는데 전부 나보다 선배였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후배가 선배의 주장을 비판한다고 해서 불이익을 당하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안 겪어봐서 모르겠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그런 상황에 놓이면 턱, 하고 입이 막힌다. 상급자가 ‘그렇게 말하면 너에게 불이익을 줄거야’라고 말하지 않아도 하급자는 그렇게 느낀다. 직급에 따른 명시적인 위력관계가 없어도, 단순한 선배-후배 사이만 돼도 이렇다. 그런데 위력이 존재했으나 행사되지 않았다고? 판사들은 참 수평적인 관계를 맺나보다(사법농단 파문 잘 지켜보고 있다).



3. 입법으로 해결하라는 주장의 문제


재판부의 자기변명 중 하나인 ‘입법으로 해결해라’는 것에 대해서는... 좀 복잡한 감정이 든다. 실제로 2~3월에 걸쳐 미투운동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많은 전문가들이 입법이 빠를 것이라고 얘기하는 걸 들었다. 보수적인 법원이 기존 관행상 무죄가 뻔한 케이스에 유죄를 주려면 (소급적용이 안 된다 해도) 어쨌든 적극적인 동의 없는 성관계는 모두 성폭행으로 규정하는 법(yes means yes)이 있어야 유리하다는 취지였고, 아무래도 여론에 반응하는 건 사법부가 아니라 입법부고, 뭐 그런..


입법부에 공을 넘기는 자세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있고 나도 동의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입법부가 아무 것도 안한 건 사실이다. 사실 이 문제뿐만 아니라 20대 국회는 소위 개혁입법이라 불릴만한 건 거의 아무 것도 처리못했다. 국회 상황이 개판이라 그런 건데 이에 대한 반성은 왜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 암튼 법원에서 2심으로, 혹은 3심까지 이어질 ‘위력행사에 의한 간음’에 대한 판단 여부와 별개로 입법부도 빠르게 움직였으면 좋겠다. 국회 그만 좀 놀아라..


출처: 한국일보



4. 이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스탠스 문제


언론 스탠스를 따지기 전에 조병구 재판부에 대한 비판이 먼저다. 이게 무슨 국민의 알 권리라고 이걸 모든 언론이 생중계 할 수 있게 재판과정을 공개했나? 기소 이전까지라면 모를까, 재판이 시작된 이후에 피해자에게 가해진 2차 가해의 주범은 재판부고 공범은 언론이다. 아... 공동정범이라고 해두자.


재판 과정의 2차가해 말고, 재판 결과가 나온 이후에 “무죄가 나왔으니 왜 무죄가 나왔는지 설명해보자” ← 이 내용으로 나가서 엄청나게 욕을 먹은 방송이 있는데 의도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결과물이 던질 메시지에 대해 예민하지 못했다고 본다. 의도를 추정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법원 판결을 비판하고, 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니 “법원은 이런 논리로 판단했다”를 해설하자, 였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법원이 이렇게 판단했으니 무죄가 옳다”라는 메시지가 되어버린 게 문제다.


내 주변에도 그냥 해설로 받아들였다는 사람이 소수지만 있었고, 어떻게 2심 판결까지 무죄라고 사실상 안희정측 주장을 강화하는 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냐며 분노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후자가 꼭 악의적인 해석이라고 보이진 않는다. 기획의도와 별개로 어떤 효과를 가질 것인지.. 판결문 자체의 편향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는 상황에서 판결문을 ‘중립적으로’ 해설한다고 해서 공정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인지, 여러 질문이 남는다. 해설과 비판을 모두 담은 디스팩트 이번 에피가 적당했다고 본다.



사실 더 큰 문제를 보여준 건 KBS 심야토론인데 ‘안희정 무죄냐’를 토론 주제로 삼는 무지막지함이란.. 그걸 왜 가해자/피해자 대리인들만큼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 변호사들이 한가롭게 앉아서 토론을 하고 있냐고



5. 누구의 해석을 존중할 것인가


쓰다보니 엄청 길어져서 어떻게 정리할까 고민 중에 얼마 전 읽었던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이 떠올랐다. 이 사건의 진실이 뭐냐며 이러저러한 것들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이 사람들을 따라다니는 24시간 카메라가 있었다고 해도 하나의 진실이 도출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안희정이 주장하는 진실(A라는 해석)과 피해자가 주장하는 진실(B라는 해석)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이 사건은 하나의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해석 중에 무엇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를 둘러싼 문제다. 아리까리할 때 나는 이런 기준을 생각해본다.


누가 내 이웃시민이고 동료였으면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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