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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Aug 02. 2018

왜 워마드를 다루지 않냐고?

그냥 비판하면 끝인가

2018년 7월 12일 작성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3589#csidx811a6f448091d519ddc8ee57aa61aa8


위 기사는 남성혐오표현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을 진보언론, 정확히는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나는 이 비평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동안 이들 신문이 여성주의 운동을 대변해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거기엔 성인지적 감수성을 가진 기자들이 있고 좋은 기사도 많이 써왔다고 믿는다. 미디어오늘은 이들이 마치 여성운동에 누가 될 것을 고려하여 워마드를 '세게 비판하는' 기사를 쓰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7월 11일은 방송 아이템 거리가 정말 없었다. 핫한 걸 하자면 무조건 워마드 성체훼손이었다. 실제로 7월 12일 아침과 저녁엔 몇 군데에서 워마드를 다뤘다. 7월 11일 저녁 라디오 중엔 SBS <김성준의 시사전망대>가 워마드로 두 꼭지를 했다
. 우리도 당연히 워마드 얘기가 나왔지만 안했다. 다른 제작진이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내 생각만 정리하면 이렇다.
 
1) 워마드를 비판하는 방식으로 갈 것인가 - 초창기라면 모를까 지금은 쌔고 쌨다. 뻔한 남혐 얘기가 나올 것이고 공기처럼 퍼져있는 여혐도 맨날 안 다루는 판에 일군의 또라이들이 반복하는 나쁜 짓에 다시 주목할 이유가 없다. 일베 기사/방송이 매일 같이 나오지 않는 이유와 같다. 남혐이 도를 지나쳤다? 포털 댓글창을 봐도, 연예인 인스타를 봐도, 여성 관련, 범죄 관련 통계수치를 봐도 한국은 여혐사회면 여혐사회지 남혐사회가 아니다. 워마드의 문제를 지적할 순 있지만 남혐과 여혐의 단순대립구도를 만드는 건 현실 왜곡이다. 서울신문을 비롯해 일부 언론이 1면 또는 홈페이지 머릿기사로 워마드를 빵빵 터뜨렸다. 그런 배치가 과연 '공정한지' 의문이다.



2) 토론 포맷으로 갈 것인가 - 그러려면 누군가는 워마드를 '논리적으로' 옹호해야 한다. 문제 있지만 의미도 있다, 이런 게 아니라 큰 방향에서 이쪽이 맞다는 수준은 돼야 한다. 누가 그걸 하지? 익명으로도 구하기 어려울 거다. 워마드에 글을 쓰는 당사자들은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혹여 탈탈 털어서 인터뷰할 당사자를 구했다쳐도, 굳이 혐오세력에게 정색하고 마이크를 줄 이유는 없다는 문제가 남는다.


3) 워마드의 '의미'를 짚을 것인가 - 워마드가 일베와 같은가 다른가, 다르다면 왜 다른가, 워마드를 여성주의 운동의 맥락에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워마드가 한국사회에 남기는 과제는 무엇인가, 오케이. 다 할 수 있다. 실제로 <김현정의 뉴스쇼>가 7월 12일 아침에 이현재 교수와 진행한 인터뷰가 이런 맥락이었다. 필요한 얘기고 더 많이 나와야 하는 이야기라고보지만 이것도 한번씩은 다 나왔던 얘기다. 그리고 워마드처럼 폭발력이 있는 이슈에서는 어지간히 구성과 취재에 공을 들여 많은 이야기를 담지 않는 한, 하루치 결과물이 청취자/독자들에게 판단의 준거가 되기 어렵다. (진보 보수를 떠나 온 언론이 팩트체크를 해댔던 난민혐오 문제도 비슷했다) 어쨌든 여성주의를 고민하는 언론인들은 이 방식을 가장 많이 택할 것이고 이미 내보낸/기획 중인 곳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엔 시간이 상당히 필요하다. 


7월 12일 <김현정의 뉴스쇼> 이현재 교수 인터뷰

 
4) 천주교의 입장을 다루는 것은 그나마 something new에 가까웠고 <김현정의 뉴스쇼>도 이 방식을 택했다. 천주교 주교회의가 법적 처벌을 운운할 게 아니라 
'괴롭지만 시대적 아픔의 표출이라고 본다'는 이야기를 했다면 와우 이것이야말로 홀리함 아닌가하며 감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입장이었다면 이 방송이 전파를 탔을지 의문이다) 나는 신실한 종교인들이 성체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이해한다. 자기가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성체를 신성시하는 가톨릭 신도들의 신념을 존중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좋은 사회라고도 믿는다. 하지만 천주교 주교회의 인터뷰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톨릭 내부의 역사적+동시대적 여성혐오만 찾아내고 확인하게 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https://www.facebook.com/nayoung.nga/posts/795712264152349


뭐 길게 돌아왔는데, 워마드는 기사든 방송이든 기획 특집 수준의 분량을 할애하지 않으면 다루기 어려운 아이템이다. 아니면 아예 이런 일이 있었다네요 수준의 단신으로 처리하거나(그래서 우린 브리핑 코너에서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지옥문이 열렸는데 이건 다음 기회에..).
 
나는 이제 수습을 막 뗀 초짜 언론인이다.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면 미디어오늘에서 왜 워마드 안 다루냐고 쪼는 한겨레/경향의 기자들은 나보다 훨씬 깊은 고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게 무슨 삼성 비판 기사 어디 썼네 안썼네 하는 것도 아니고(그건 누가 봐도 기사감인데 눈치게임 하는 게 뻔하지 않나) 미디어비평지 기자가 워마드가 단순 스트레이트를 쏟아내야할 수준의 '기사감'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글을 쓰고 며칠 뒤, 정확히는 7월 20일에 한국일보가 워마드 기획기사를 냈다. 단순히 혐오를 전시/전파하거나 분노의 손가락질을 유도하며 휘발성 있게 클릭질 장사하지 않는 방식은 기획/취재가 참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그 어려운 걸 짠!하고 내놓음. 이것도 어떤 기준에선 완벽하진 않을 수 있지만 당사자 취재부터 조금씩 결이 다른 전문가들의 인터뷰까지 많은 고민과 노력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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