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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Aug 01. 2018

증언을 감각하는 경험, 허스토리

마감 후 #4 - 민규동 감독 인터뷰

2018년 7월 4일 작성




7월 3일에 방송된 민규동 감독의 인터뷰는 오래토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영화를 보기 전에 원고를 구성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그때까지 나온 언론 기사를 전부 뒤져봤다. 나름의 차별점을 만들고 싶었지만 10여 개 이상의 단독 인터뷰 기사를 읽다보면 어지간해선 그런 차이가 잡히기 어렵다. 그래도 꼭 강조해서 구성에 담고 싶었던 것은 세 가지였다.


1) 과거 피해사실에 대한 회상씬이 없는 이유 + 증언의 힘

2) 각각의 서사를 가진 전쟁범죄 피해자들

3) 인터뷰 끝나고 무조건 <영원히 영원히>를 튼다. ← 중요★★★★★


▶ 인터뷰 전문: http://www.nocutnews.co.kr/news/4995156


1. 다행히 불필요한 플래시백이 없는 이유와 증언의 힘에 대해서는 기존 인터뷰에 비해 감독의 고민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길지만 자르지 않고 인용하고 싶다.


◆ 민규동> 여성의 인생을 건 용기, 그 용기를 바탕으로 한 증언의 힘을 관객들이 느껴봤으면 하는 건데 왜냐하면 증거가 없는 싸움이기 때문에 오로지 증언만으로 그 진실을 증명해야 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증언을 표현할 때 쉽사리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예전에 가장 힘들었던 어떤 폭력의 순간을 재현함으로써 그것이 피해의 가장 핵심적인 이미지인 것처럼 관객들을 데려오면서 감각적으로 반일감정의 공분을 쉽게 자아내고 실제 피해 양상은 단순한 이미지로 보여줄 수 없는 굉장히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피해양상이 있는데요. 그래서 이미지에 호소하는 것보다 증언 때의 그 눈빛과 목소리와 떨림 그 자체만으로도 사실 하나의 플래시백이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 민규동> 당시 10대 때 당했던 고통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를 저희가 호소하고 싶었던 건 아니고 그런 고통을 겪었었는데 이제 돌아와서 우리나라 사회가 손가락질과 비난 속에 수치심을 느끼고 살게 했었고 그다음에 견디고 살아온 50년의 세월의 짐이 얼마나 큰지. 그걸 이제 깨뜨리는 그 고통이, 그 용기가 얼마나 큰지를 오히려 전달해 주고 싶었기 때문에 굳이 과거의 재현 장면이 이번 영화에서는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편이었을 수도 있는데요. 


이런 고민은 연출에도 철저하게 반영되어 있다. 대개의 법정물은 양측 법률대리인의 공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속도감에 기대지만 <허스토리>의 법정은 전혀 다르다. 판사의 내려다보는 시선, 방청석에서(혹은 사회에서) 들려오는 어처구니없는 비난과 고맙지만 별 도움은 되지 않는 응원의 소음, 그 안에서 때로 위축되고 때로 폭발하고 때로 주저앉으면서 자신의 삶을 증언하는 여성의 목소리. 관객이 그 증언을 감각하는데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것은 첫째는 배우의 힘이고, 둘째는 불필요한 시선의 분산도, 서사적 재미를 위한 복잡한 구조도, 누군가에겐 카타르시스가 될 수 있는 감정의 과잉도 제거해버린 연출이다. 그렇게 증언을 감각하는 ‘경험’을 준다는 것은 <허스토리>의 중요한 성취라 할 수 있지 않을까



2. 그래서 어쩌면 누군가에게 이 영화는 재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관객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한 두 명의 캐릭터를 주인공 삼아 갈등상황에 몰아넣고 그 주인공의 감정곡선을 롤러코스터에 태우면서 쾌감을 선사하는 대개의 상업영화와 완전히 다른 문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에도 중심인물은 있지만 <허스토리는> 인물 한 명 한 명에게 각자의 서사를 충분하게 부여한다.


◆ 민규동> 새로운 관점 하나를 관객분들이 봐줬으면 했던 거는 위안부라는 단어 자체가 뭐랄까 민족의 희생양 뭔가 총체적으로 환원화된 대표적인 고통의 영역으로 그냥 상징화된 단어이다 보니까 우리가 다 안다고 생각하고 그 피해자 상해에 대해서 입체적인 관점이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민족주의적 시선으로 봐왔던 반일감정의 공분을 위해서 쓰였던 접근 말고 피해자 한 분, 한 분을 개별 여성으로 보면 그 피해자상은 회일화되지 않은 굉장히 다양한 거짓말을 할 수도 있고 숨길 수도 있고 그다음에 가해자의 위치에 섰던 사람도 있고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그러니까 기존의 위안부상과 다른 접근을 하기 위해서 여성으로 본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영화 속에서 강조하고 싶어서 



감독의 이런 의도는 영화에 충실하게 반영돼있다. 극영화로서 대중적인 ‘재미’는 떨어질 수 있을지언정 다양한 수행성을 가진 여성의 존재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가 2018년 한국사회에 유효한 이유. 영화는 그녀들과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인으로서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이 수많은, 그리고 입체적인 인물들로부터,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여성들의 존재 앞에서, 그 증언을 듣고 무엇을 느낍니까?



3. 노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데, 글로 풀어내긴 또 마땅치 않다. 이건 진짜 보면서 들어야 한다. 첫 번째 노래는 전쟁피해 생존자들이 부르는 일본 군가다. 생존자들의 과거와 현재가 뒤엉켜 감정을 빚어내는, 멜로디와 가사로 이루어지는 증언이다. 두 번째 노래는 엔딩 크레딧과 함께 나오는 자우림의 <영원히 영원히>다. 일본 군가가 증언이라면 <영원히 영원히>는 헌시(獻詩)다. 처음 원고 구성할 때부터 이 노래는 꼭 틀고 싶었다. 노래가 워낙 세서(=좋아서) 시사 인터뷰 프로그램 한복판에 브릿지로 넣기는 좀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래도 선배들한테 꼭 틀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스토리x자우림 <영원히 영원히>


여러분, 자우림의 <영원히 영원히>는 그냥 들어도 좋지만 이 영화를 보고 들으면 진짜 말도 못하게 좋습니다. 흑흑 방송에서 유일하게 아쉬웠던 게 시간문제로 <영원히 영원히>를 끝까지 못 튼 거였다. 




덧) 위에서 영화의 대중적 재미를 운운했지만 요즘은 이 ‘재미’라는 것도 기존 남성중심의 영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다르게 느끼는 건 아닐까싶다. 지난달에 <오션스8>을 보고 나와 신나면서도 하이스트 무비로서의 재미는 어쨌든 <오션스11>보다 떨어지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다가 아니 이건 단순히 ‘여성판’ <오션스11>이 아니라 여성이 중심이 됨으로써 새로운 장르문법을 던진 영화로 봐야하지 않나 하는 고민으로 이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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