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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May 18. 2017

법인 서울대, 민낯을 드러내다 #1

학내 물대포까지 등장한 서울대 시흥캠퍼스 갈등

2017년 5월 17일. 오늘의 교육 38호.


글 순서

1. 학내 물대포까지 등장한 서울대 시흥캠퍼스 갈등

2. 서울대는 비정규직 백화점

3. 대학의 존립 근거는 무엇인가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되고, 장미대선이 치러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취임 1주일도 되지 않아 역사 국정교과서를 폐기하고, 세월호 참사에서 숨진 기간제 교사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의 순직 인정을 지시했다.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고 대통령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사안부터 우선적으로 처리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하지만 본게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굵직한 정책일수록 사회적 논의 과정과 국회입법 등 거쳐야 할 절차가 많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의 윤곽이 분명하게 드러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성미 급한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대한 논란을 다루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문재인 대통령 국공립대 개혁안에 서울대생 반대서명>이라는 기사다. 이 기사는 일부 서울대생들이 온라인상에 문재인 정부가 국공립대 공동학위제를 시행하는 것에 반대하는 자보를 내걸고,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에서 국공립대 공동학위제를 공약한 것은 아니지만, 올해 1월 발간한 책에서 국공립대 공동 입학․학위제를 언급했기 때문에 반대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공립대 공동학위제 관련 서울대 총학생회의 대응 상황 (출처: 서울대 총학생회 페이스북)


국공립대 공동학위제, 혹은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정책의 의미나 실효성, 이에 대한 서울대생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와 별개로 이 기사가 흥미로운 이유는 서울대가 더 이상 예전 같은 국립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2012년부터 법인화되어 현재 법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다만 법인이라고 해도 ‘국립대학법인’이기 때문에 꼭 사립대학처럼 운영되지는 않는다. 법인화되기 전과 마찬가지로 국정감사도 받고, 정부로부터 약 4,500억원(2016년)에 달하는 지원금을 받고 있다. 법인화 전과 비교할 때 완전히 달라진 것은 교수와 직원들의 지위(공무원 → 사립학교 교직원) 정도이다. 


때문에 서울대는 매년 국정감사에서 이럴 거면 왜 법인화 했냐, 교직원 인건비 올리려고 했냐는 식의 지적을 받아왔다. 법인이 된 만큼 교육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율적으로 대학을 잘 운영하는 모델을 만든다거나, 획기적인 수익사업을 벌여 재정자립을 달성한다거나 하는 성과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서울대는 작년부터 화끈하게 법인의 민낯을 드러내기로 작정한 듯하다. 



학내 물대포까지 등장한 시흥캠퍼스 갈등


2017년 3월 11일 새벽. 토요일이었지만 서울대학교 행정관 건물 앞은 200여명의 직원들로 북적였다. 학생들이 총회를 통해 시흥캠퍼스 설립에 반대하기로 결정하고, 행정관을 점거한 지 153일째 되는 날이었다. 8시 30분 전후로 직원들은 강제로 행정관 진입을 시도했고, 마찰 끝에 두 명의 학생이 기절해 구급차에 실려 가기까지 했다. 오후 4시 경에는 행정관 건물 1층에서 농성하던 학생들이 로비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소화기를 분사하자, 직원들이 소화전을 끌고 와 학생들에게 물을 뿌리기도 했다. 이 과정은 ‘서울대 물대포 진압’이라는 키워드로 SNS 상에 전파됐으며, 여러 언론에서 기사화되었다. 


소화전을 동원해 학생들에게 물을 뿌리는 서울대 본부 직원 (출처: 서울대저널)


서울대학교에서는 2011년에도 행정관 점거투쟁이 있었다. 법인화 반대를 구호로 내걸고 진행된 점거는 <총장실 프리덤>을 비롯해 수많은 패러디물을 만들어냈고, 점거의 동력을 모아 ‘본부스탁’이라는 콘서트까지 치르며 큰 화제가 되었다. 그 당시 행정관을 점거한 기간이 27일이었다. 이번에는 153일이다. 학생들은 행정관에서 겨울방학을 났지만 사회적으로는 전혀 이슈가 되지 못했다. 2016년 10월말부터 2017년 3월까지, 한국사회의 시선은 광화문과 청와대, 헌법재판소에 쏠려있었다. 다만 정세를 탓하기에는 시흥캠퍼스라는 이슈가 가지는 파급력이 6년 전의 ‘국립대 법인화’에 비해 약하기도 했다. 서울대가 이미 서울시 관악구의 관악 캠퍼스, 종로구의 연건 캠퍼스는 물론 수원과 평창에도 캠퍼스를 가지고 있고, 다른 여러 대학들도 제2캠퍼스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평창캠퍼스를 다룬 한국대학신문 기사


주목받지 못하는 투쟁임에도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시흥캠퍼스 설립을 반대하는 이유는 세 가지이다. 먼저 대학의 상업화다. 이미 민자투자방식(BTL)의 기숙사를 비롯해, 대형 프랜차이즈의 상업시설이 캠퍼스를 가득 메우고 있다. 2015년 기준 서울 소재 48개 대학교 450개 입점업체 중 상당수가 대기업이나 대형 프랜차이즈의 상업시설임이 밝혀지기도 했다. 서울대학교에도 BTL 기숙사는 물론, 아워홈, CU, 파파이스, 뚜레쥬르, GS25, 롯데리아 등 다양한 프랜차이즈가 입점해있다. 학생들은 시흥캠퍼스를 짓게 되면 운영비 충당과 수익 창출을 위해 캠퍼스 상업화가 더욱 가속화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2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문건이 공개되어 파문이 일었다. 문건에 따르면, 서울대는 시흥캠퍼스 운용비용 조달을 위해 고소득 노인 대상 실버타운, 헬스케어 센터 및 건강검진센터, 복합 체육시설, 호텔, 레스토랑 등의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서울대 본부가 시흥캠퍼스 추진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연구시설 확충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대 점거본부가 공개한 시흥캠퍼스 사업모델 관련 문건 (출처: 민중의 소리)


두 번째 이유는 시흥캠퍼스가 수도권 신도시의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흥캠퍼스가 들어설 부지로 선정된 배곧신도시는 17개 공동주택에 2만1천여 세대가 입주할 예정이다. 한 아파트는 분양광고에 ‘유학가자 서울대 신도시’, ‘좋겠다 서울신도시 엄마들’ 등의 문구를 삽입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서울대 제2캠퍼스를 내세워 부동산 수요를 끌어올리는 것은 투기의 조장이며, 비윤리적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학생들이 시흥캠퍼스 설립을 반대하는 마지막 이유는 결정과정에서 대학본부가 구성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는 점, 즉 학내 의사결정의 비민주성이다. 서울대가 제2캠퍼스를 추진하기 시작한 건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러 우여곡절과 학생들의 강경한 반대 끝에 2014년 성낙인 총장 취임 이후 논의가 중단되는 듯했으나, 2016년 8월 갑작스레 대학 본부와 시흥시가 ‘서울대 시흥캠퍼스 조성을 위한 실시협약’을 체결했다. 그 과정에서 본부와 시흥시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논의절차를 거쳤는지 등에 대한 정보는 학내 구성원들에게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다. 


법인화 이전에도 서울대 본부가 다른 대학들에 비해 특별히 민주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인화 이후 서울대의 의사결정구조가 더욱 권위적으로 변한 것은 사실이다. 이사회가 최고의결기구로 자리매김하면서 과거 최고의결기구였던 평의원회는 심의 기구로 역할이 축소됐다. 2014년 성낙인 현 총장이 선출된 과정을 보면 이사회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평교수와 교직원 등으로 구성된 총장추천위원회가 1위 후보자로 올린 것은 오세정 교수였다. 그런데 이사회에서 공동 2위 후보였던 성낙인 교수를 총장으로 선임해버렸다. 이 사실은 박근혜 게이트가 불거질 당시 청와대의 대학 총장 인선 개입 논란 의혹의 근거로 여러 언론에서 보도되기도 했다. 이렇게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는 이사진의 절반 이상이 외부 인사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정작 학내 구성원들은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배제됐다. 더욱 황당한 것은 이사를 뽑는 방식이다. 이사진이 임기를 다해 차기 이사를 뽑을 때는 이사 후보 초빙 위원회를 구성하는데, 총 7명 중에 5명이 총장을 포함한 기존 이사들이다. “자기복제식 구조”, “민주주의와는 전혀 무관한 구조”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서울대 이사회의 자기복제식 구조 (출처: 뉴스타파)


이렇게 시흥캠퍼스를 둘러싼 갈등으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법인 서울대가 공익보다 이윤을 추구하고, 비민주적으로 대학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서울대 구성원들 중에 이윤추구와 권위주의에 고통 받고 있는 것은 학생들뿐만이 아니다.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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