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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May 07. 2017

동네북이 된 교육부

19대 대선 교육부 축소·폐지론의 이면


이제 이틀 후면 19대 대선 레이스가 종료된다. 주요 후보 5명이 정치에 입문하기 전의 배경을 살펴보면 인권 변호사(문재인), 공안검사(홍준표), 벤처기업인/교수(안철수), 경제 연구원(유승민), 노동운동가(심상정)로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다. 그런데 배경이나 정당과 관계없이 다섯 명의 대선 후보 모두가 비슷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공약이 있다. 바로 교육부 기능 축소이다.


출처: 한국대학신문


현 정부 조직도 상에 ‘부’로 편제되어 있는 조직은 총 17개이다. 이 중 폐지론이 언급되는 것은 교육부와 여성가족부, 두 부서이다. 여성가족부는 2001년(김대중 정부) 여성부로 설립되어 여성가족부(노무현 정부), 여성부(이명박 정부), 다시 여성가족부(이명박 정부)로 개편되며 역할과 기능을 달리해왔다.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기도 하고, 여성가족부에 대한 (기능 조정이 아닌 전면)폐지론은 대개 反페미니즘 정서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지하게 다룰만한 쟁점이 아니다.


반면 교육부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동시에 설립된 문교부가 그 기원이다. 문교부는 1990년 교육부(노태우 정부), 2001년 교육인적자원부(김대중 정부, 장관이 부총리 겸직),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이명박 정부, 부총리 폐지), 2013년 교육부(박근혜 정부, 2014년부터 장관이 부총리 겸직)로 부서 명칭과 정부 내 위상이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무려 70년간 유지된 조직이다. 그만큼 교육부가 담당하고 있는 기능은 국가 운영에 핵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대선주자들이 교육부의 기능을 축소하겠다고 뜻을 모은 이유는 무엇일까?



못해도 너무 못했던 박근혜의 교육부


기존에도 교육부 폐지나 축소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차기 대선주자들이 뜻을 모을 정도로 대세는 아니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 유난히 ‘두드러지는 방식’으로 실패하는 교육정책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역사교과서 국정화이다. 박근혜 정부는 일선 학교현장을 비롯해 사회 전반에서 반대 움직임이 일었음에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했다. 명분도, 제대로 된 의견수렴 과정도 없는 정책이었지만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는 탄핵 국면 직전까지 꿋꿋하게 국정화를 밀어붙였다. 대학 정책도 망가졌다. 교육부는 정부의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운영하는 대학에는 지원금을 몰아주고(각종 재정지원사업), 그렇지 않은 대학에는 대학구조개혁(정원 감축, 국가장학금 제한 등)이라는 채찍을 휘두르며 대학의 불만을 키웠다. 그 과정에서 이화여대처럼 지원금을 몰아서 받는 대학이 나오고, 지방·군소 대학들에 대한 차별 논란이 불거지는 등 상당한 잡음이 발생했다. 누리과정 예산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무상보육을 중앙정부에서 책임지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정작 누리과정 제도를 시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요예산을 각 시도교육청에 떠넘기며 지자체와 학부모들의 원성을 샀다. 여기에 지난해 여름 터져 나온 교육부 고위 관료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까지,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는 도무지 곱게 보아줄 만한 구석이 없었다.


정작 공약은 안 지키고.. (출처: 세계일보)


다만 한 정부에서 해당 분야의 정책이 실패했다고 해서 항상 담당 부처를 없애거나 기능을 대폭 축소하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음 정권이 들어선 후에 바로잡으면 될 일이다. 이전 정부의 실책에 대해 책임질 사람들은 있겠지만 교육부가 없어져야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실패했다고 해서 국토교통부와 환경부를 없애자는 주장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교육부 폐지론, 혹은 기능 축소론에는 교육부에 대한 보다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갈대 같은 교육정책


교육부 기능 축소론의 주요 근거 중 하나는 정권마다 교육정책이 널을 뛴다는 것이다. 5년 단위로 교육정책의 기조가 바뀌다 보니 장기적인 방향성은 없고, 교육현장의 혼란을 초래한다는 점이 지적된다. 언제나처럼 이번 대선에서도 모든 후보가 주요 교육공약으로 꼽은 대학입시 제도를 예로 들어보자.                     


내용 출처: EBS <교육대토론> 2017 대선 교육공약 집중점검 ‘대학입시’편


지난 20년간 네 번의 정부를 거치며 대학입시 정책은 크게 바뀌었다. 모든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 시절 발생한 문제를 근거로 새로운 정책을 꺼내 들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수능의 병폐를 잡겠다며 내신과 논술의 비중을 높이니 죽음의 트라이앵글이 생겨나고, 점수가 아니라 실력을 보겠다며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고 나니 컨설팅 사교육이 등장했다. 그 와중에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007년 22.2만 원에서 2015년 24.4만 원으로 증가했다. 이렇게 대학의 서열화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입시 제도만 바꾸면 불안을 먹고 자라는 사교육 시장만 키우게 된다. 불확실성을 높일수록 교육현장의 혼란은 가중된다. 정치권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지만 정권 입장에서는 5년 안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정책을 선호하다 보니 매번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오죽하면 이번 대선에서 “가장 적은 홍준표 교육공약이 차라리 낫다”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이렇게 널을 뛰는 교육정책을 막아보자는 시도로 등장한 것이 바로 장기적 교육정책을 기획하는 정부 ‘교육위원회’의 신설이다. 안철수 후보의 경우 아예 교육부를 폐지하고,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장기적 교육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자고 주장한다. 국가교육위원회의 합의사항에 정치권 모두가 동의하면 정권이 바뀌더라도 교육정책이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후보들도 이름만 조금 다를 뿐, 비슷한 역할을 하는 위원회를 제안하고 있다.


출처: 노동과 세계


이와 관련해 흔히 교육 강국으로 꼽는 핀란드의 사례를 보자. 핀란드는 교사 중심의 교육개혁이 자리 잡은 대표적 국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교사가 중심이 되었다는 점보다 놀라운 사실은 이 개혁을 이끈 에르끼 아호가 1973년부터 1991년까지 약 20년간 국가교육청장으로 재직했다는 것이다. 교사 중심의 교육개혁이라는 방향성에 대한 합의는 1960년대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한국으로 치면 노태우-김영삼 정부 시절 도출된 교육개혁의 방향성을 바탕으로, 이후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는 동안 한 명의 교육부 장관이 흔들림 없이 개혁을 추진했다는 뜻이다. (핀란드에도 정부 직제상 교육부 장관이 별도로 존재하지만 국가교육청장이 교육현장에 대한 집행력은 더 강하다)



교육개혁은 정치·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고 해서 금융실명제나 김영란법처럼 ‘오늘부터 바뀐다 땡!’이라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학교현장의 변화는 매우 더디다. 대통령-교육부-교육청-학교장-교사에 이르기까지 견고한 관료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으며, 기존의 체제가 나름의 합리성을 가지고 운영되기 때문에 정책 하나가 자리를 잡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주요 후보들이 모두 장기적 교육개혁을 다루는 교육위원회를 공약으로 내세운 것은 꼭 지금의 교육부가 거대한 악이기 때문이 아니라, 교육현장의 변화 속도를 고려한 현실적인 판단이라고 볼 수 있다.



교육부 축소론이 말하지 않는 것


한 가지 큰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는 서른 개의 작은 거짓말이 필요해. 그래서 핵심 이외에는 전부 진실을 말하는 게 가장 간단한 방법이야


<약 서른 개의 거짓말>이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대사다. 문제의 핵심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누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보다 무엇을 말하지 않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교육부 축소·폐지론이 주로 지적하는 것은 장기적 교육기획의 부재와 교육부의 비대한 권력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먼저 교육감 직선제이다. 교육감 직선제는 2006년 도입되어 2010년 지방선거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직선제로 선출된 교육감들은 교육부의 지침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지역의 상황과 자신의 교육철학에 따라 정책을 펼쳐갔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간 치러진 두 차례의 지방선거에서 많은 부분 정권과 뜻을 달리하는 진보 교육감들이 상당수 당선되며 교육부와 지역별 교육청 사이의 갈등이 잦았다. 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누리과정, 전교조 탄압 등 사회적인 갈등을 빚어가며 추진한 정책들에 대해 대부분의 진보 교육감들이 반발했다.

2014년 교육감 선거 결과 (출처: 오마이뉴스)


교육감 직선제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제도이다. 교육부와 지역별 교육청 사이에 분명한 권한 조정이 필요하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1) 중장기적 교육을 기획하는 위원회, 2) 중앙행정부서로서의 교육부(혹은 안철수 후보의 교육지원처), 3) 지역별 교육청의 관계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이에 대한 답을 내놓은 후보는 문재인 후보(초중고 교육은 교육청 이관), 홍준표 후보(직선제 폐지) 밖에 없다. 애써 교육위원회를 만들어 10년짜리 계획을 세웠는데 정작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시도의 교육감이 그 방향을 거부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과정을 거쳐 합의를 도출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이 없다면 교육위원회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그리고 보다 중요한 문제는 교육위원회가 과연 정부 눈치를 보지 않고 장기적 교육개혁을 기획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현재 논의되는 교육위원회의 상은 크게 네 가지이다.

내용 출처: 한국대학신문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72703)


실제 교육위원회가 어떤 형태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불명확하다. 문재인 후보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 심상정 후보는 대통령 직속기구, 다른 세 후보는 정부기구의 형태를 제시하고 있다. 다만 현재 존재하는 유사한 기구를 보면 과연 교육위원회가 정부와 국회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통령 자문기구, 예컨대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사실상 정부부처에 가깝다. 법적으로 행정집행권한이 없을 뿐, 대통령의 사람들로 구성된다. 정권이 바뀌면 위원 구성도 바뀌기 마련이다. 합의제 행정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는 더하다. 정부와 국회에서 위원을 추천하지만 의결구조상 정부 여당 추천 인사들의 의지대로 결정이 내려진다. (합의제 집행기관은 유사 기구 사례가 없으니 논외로 치고) 마지막 독립적 국가기구는 그나마 전문성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이명박 대통령이 현병철 위원장을 임명한 뒤 인권침해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현 이성호 위원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어떤 형태가 되든 정권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기구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교육 정책의 기획과 집행을 분리하자는 공약을 내놓은 대선후보들이 정작 민선 교육감과의 관계, 교육위원회의 독립성/자율성 보장 방법을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 디테일한 부분이어서 굳이 대선을 치르는 단계에서 언급할 필요를 못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육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부처들 사이의 권한이 명확하게 조정되지 않는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잡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교육위원회가 내놓은 정책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는커녕 당장 교육위원회 구성부터 정치권과 시민사회, 전문가 집단이 갈라져 갈등을 빚을 확률이 높다.



교육부 기능 축소론의 이면에는 이렇게 교육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다양한 ‘권력관계’가 숨어있다. 사실 그동안 비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교육부가 아니다. 교육부를 쥐고 흔들었던 건 청와대, 즉 대통령이다. 금융 및 대학분야의 컨설팅을 오랫동안 해온 컨설턴트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기재부나 국토부, 그리고 산자부 프로젝트를 해보면 그 부처만의 논리라는 게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그게 없다. 그저 VIP의 의지가 있을 뿐이다.” 교육부 공무원들이 유난히 영혼이 없어서일까? 그보다는 역대 대통령들이 교육 정책에 대해 매우 강한 통제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그 통제의 의지를 '발전적으로' 승화해 정책에 반영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교육위원회의 역할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하고 싶은 정책을, 교육부 대신 관철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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