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진짜 사나이' 특집
"박명수 외 6인은"
"등 6명은!!"
기분 좋으려고 보는 예능에 불쾌한 호통이 끼어든다. 지랄도 이런 지랄이 없다. 7월 1일 방영된 <무한도전> '진짜 사나이' 특집 얘기다. 이미 촬영 당시 기사가 떴고 지난주에 예고가 나왔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무한도전>에서 군대를 다룬 게 처음도 아니다. 다만 과거 '실미도 특집'에서 했던 것처럼 완전 꽁트식으로 가거나, '특전사 특집'처럼 엄한 분위기의 맛만 보여주고 개그에 치중했던 것과 달리 이번 '진짜 사나이' 특집은 군대의 지랄맞음을 그대로 소환한다. 2010년대 프라임타임 최악의 예능 일밤 <진짜 사나이>의 방식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진짜 사나이>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일요일 저녁 프라임타임에 편성됐다. 막바지에 10%를 겨우 넘기는 시청률로 고전하다 종영했지만(시즌3 준비한다던데 제발 하지마) 전성기엔 20% 시청률을 훌쩍 넘기기도 했다. <복면가왕>과 더불어 소위 '예능 메카' MBC의 일요일밤을 책임져온 대표 프로그램이었다. <무한도전>에서 <진짜 사나이>를 한번 가져올 것이라는 복선은 진작 깔려있었다. 다만 이번 '진짜 사나이' 특집을 기획할 때는 프로그램을 패러디한다는 기존 <무한도전>의 문법과 별개로, 두 프로그램의 서사에 존재하는 유사성도 고려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무한도전>은 한국에서 '성장 서사'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이다. <무한도전>의 장기프로젝트가 없었다면 <남자의 자격>이나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1> 같은 성장 서사 중심 프로그램들의 제작은 한참 뒤에나 이뤄졌을지 모른다. <진짜 사나이> 역시 까다로운 조건에 내던져진 사람들이 부적응 상태의 훈련병, 즉 한없이 낮은 존재에서 출발해 고군분투와 절망 속에 싹트는 동지애를 통해 일정 수준의 과업을 달성하는, 일종의 성장 서사를 담고 있다. 기본 제식도 제대로 못하는 '철딱서니 훈련병'이 '모범적인 분대장'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진짜 사나이>도 마치 <무한도전>의 장기프로젝트나 <남자의 자격>,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1>처럼 나름의 감동과 의미가 있는 프로그램처럼 보인다. 일반인이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연습을 해서 대학조정 선수들과 대결하고, 몇 개월을 준비해 스펙터클한 레슬링 쇼를 선보이고, 공식 댄스스포츠 대회에 출전하고, 불협화음을 내는 오합지졸이었다가 훌륭한 하모니를 선보이는 합창단으로 거듭나고, 아무나 따기 어려운 대형면허를 취득하고, 나이와 배경을 초월해 걸그룹이 되어 멋진 무대를 펼치기 위해 정말정말정말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은 시청자들의 감동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아무리 연예인이어도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니라면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다. 이 '평범한 사람들'이 노력을 통해 준전문가 수준의 능력치를 성취하는 것이 결국 성장 서사를 담은 예능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반면에 <진짜 사나이>는 출발점을 '일반인의 평범한 수준'으로 잡지 않는다. 군대라는 반인권적 공간에 출연자를 내던짐으로써 '부적응자', '무개념'이라는 딱지를 붙여 가치를 하락시켜 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출연자들이 점점 군대생활에 적응하는 것을 과연 가치의 상승으로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출연자들에게는 잊지못할, 생경한 경험이니만큼 각자의 성장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제시되는 프로그램의 성장 서사를 완성하는 결과가 "군대에 잘 적응했습니다"라니, 이건 아무런 부가가치도 없고 한국처럼 후진적인 조직문화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 오히려 지양해야 하는 방향 아닌가.
게다가 <진짜 사나이>가 보편적으로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감동이라기보단 "개념 없는 누군가를 비난하며 느끼는 가학적 쾌감"이다. 대부분의 군필남성들은 본인들도 비슷한 환경에서 굉장히 고통스러운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훈련병 역할을 하는 출연자들이 아니라 그/녀들을 평가하고 괴롭히는 조교/간부의 위치에 자신들을 대입한다. 출연자 중 누군가의 실수로 단체기합을 받는다면 그 실수한 사람의 두려움과 미안함에 집중하기보단 "아, 완전 빡치겠다"라며 다른 사람들의 분노에 감정이입하고, 자기가 훈련 받을 때 저런 새끼가 있었다며 어쩌고로 이어지는 썰을 풀기 시작한다. 비난의 대상이 여성인 경우 한남들은 더욱 신이 난다. 역시 여자들은 안된다든가, 남자들에 비해 기준이 낮다든가를 웅얼대며 비난의 가학적 쾌감을 충분히 즐긴 뒤 "방송이라 군대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며 내가 더 고생해쪄라는 불행 경쟁을 시작한다. 이런 점에서 <진짜 사나이>는 프로그램 자체도 나쁘지만 그 결과로 등장하는 반응까지 나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방송 제작에 종사하는 분들이 프로그램 제작의 논리를 설명할 때, 장르와 방송사를 가리지 않고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항상 대중의 결핍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걸 누군가는 '결핍'으로 표현하고 누군가는 '니즈'로 표현하고 누군가는 '욕망'으로 표현한다. 각 개념마다 미묘하게 결이 다르긴 하지만 큰 맥락에서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이해했다. 결국 방송 프로그램이란 '다수의 시청자'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채워주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방송 프로그램을 평가함에 있어 그 프로그램이 어떤 결핍에 호소하고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도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진짜 사나이>가 호소하는 결핍은 한심하기 그지없다. 제작진은 단지 감동적인 성장의 서사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변할 수 있겠지만 그걸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군대라는 배경을 선택한 순간, 이들이 타깃으로 삼는 '결핍'은 명백하다. 군대는 한국 남성들의 보편적 결핍, 그들이 안고 있는 '억울함'의 기원이다. 그 억울함의 원인은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군필 남성들은 쉽사리 그 분노를 여성, 장애인, 그리고 '나의 군생활을 힘들게 만들었던 어떤 개념없는 누군가'에게 돌린다. 이들의 한심한 분풀이를 타깃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진짜 사나이>는 상당히 질이 나쁜 프로그램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수컷의 방을 사수하라> 같은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이 프로그램이 노리는 결핍도 단순하다. 생활 공간에 대한 자율성이 없다는 불만, 그걸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제멋대로 인테리어를 해놓고 그 뒤에 찾아올 가정불화, 그 공간을 '함께 쓰고 있는' 다른 가족들에 대한 배려는 없다. 가족 구성원끼리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고 설득하는 문명화된 과정을 거칠 용기도 지성도 없는 '동물성'을 추켜세우는 방식이다. 누군가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고통이나 부담을 지우는 후질대로 후진 방식이 한국식 나쁜 예능을 만들어내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핵심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독하고 가학적인 방식을 택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런데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때 꼭 그렇게 저열한 욕망을 타깃으로 할 필요는 없다. 예컨대 요즘 방송만 하면 화제가 되는 tvN <알.쓸.신.잡>에 대한 평가는
교양이 유통되는 방식의 변화를 기대/우려하는 인문학 연구자들
나영석식 예능의 변주를 다루는 TV 평론가들
중년남성 중심 프로그램의 한계를 지적하는 페미니즘 진영
의 분석이 이리저리 결합되어 있는 양상이다. 이런 평가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이후, 즉 완성된 결과물을 바탕으로 나온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타깃으로 삼았던 욕망은 <지.대.넓.얕>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책을 직접 읽고 교양을 쌓긴 귀찮지만,
어쨌든 똑똑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다.
아는 척 하고 싶다.
라는 굉장히 보편적인 욕망. 이 정도면 훌륭하다. 실제로 나는 방영 이후 <알.쓸.신.잡>에 나왔던 얘기들을 술자리에서 반복하는 사람들을 몇 차례 만나봤다. 1화 방영직후 중년남성 일색이라는 비판과 더불어 "술자리에서 떠드는 예능의 문제가 있다"는 평도 섞여있었는데 한국 사회 술자리의 수준이 저 정도가 된다면 사실 굉장히 바람직한 것 아닌가?(from 김선영 평론가 <잉여싸롱 와일드> 71화)
다른 길은 충분히 가능하다. <무한도전> 역시 매번 다른 스타일로, 시청자들의 다양한 욕망을 자극하며 발전해온 프로그램이다. 시청자가 원하니까 이런 걸 만든다는 식으로 회피하는 방송 제작자들은 어쩌면 무능을 고백하는 것 아닐까. 공급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좋은 수요'를 창출하는 프로그램을 더욱 많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