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를 다룬 두 번째 다큐 <공동정범>
기록용으로, 페이스북에서 복붙하고 살짝 첨언
지금 나에게 용산은 아이맥스 영화를 보러 가는 곳이다. 용산 이마트는 수입맥주의 성지고, 용산역 건너편에는 서울 넘버원 돈까스집인 북천도 있다. 그래서 지금, 용산에 간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2009년의 용산은 오롯이 고통과 좌절의 공간이었다.
용산참사를 다룬 두 번째 다큐인 <공동정범>을 봤다. 몇 년 전 개봉한 <두 개의 문>은 용산참사라는 사건을 탐사하는 기록이자 고발이기 때문에 마치 <그알>이나 <PD수첩>을 보는 느낌이 난다. 어렵지 않다. 반면에 <공동정범>은 그 사건으로 인한, 국가권력에 의한 상흔을 간직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얼핏 이야기라고 하면 쉬워보이지만 쉽지 않다. 철거민들의 경험과 고민은 대개의 사람들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야기는 무겁다. 용산참사로 가족을, 동지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도 사법적으로 '당신들이 죽였다'는 낙인을 받은 사람들 앞에서 이해니 공감이니 하는 말이 무슨 소용인가. 카메라는 '나 때문에 그들이 죽었을까?' 스스로 되묻고 괴로워하는 이들의 얼굴을 때로는 정면에서, 때로는 저 멀리서 비춘다. 그 시선과 음성을 따라가다보면 머리가 아프고, 마음도 아프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공동정범>은 좋은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싶다.
그들 마음 속 상흔은 조금씩 달라도, 손에는 모두 같은 상처가 있다
전작인 <두 개의 문>과 <공동정범>은 이어져있다. <두 개의 문>이 건조한 기록의 형식을 택했기 때문에, 그리고 사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없었던 시대적 상황 때문에 품고 있던 한계를 <공동정범>은 마음껏 풀어낸다. 결과적으로 같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당사자의 목소리로 사건의 비극성을 증언한다는 건 제3자가 남긴 기록과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을 가진다. 동시에 그 비극의 배경에 국가권력의 남용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두 개의 문>은 <공동정범>을 보완한다. 결국 전작과 후속작이라기 보다는 애초에 두 다큐를 한 세트로 봐야한다.
주말 오후 4시 40분에 신촌에서 봤는데, 관객이 15명도 안됐다. 아무래도 독립영화이고, 무거운 소재다보니 많은 관객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시간 여유가 있는 분들은 꼭 극장에서 보셨으면 좋겠다. <두 개의 문>과 달리 <공동정범>은 큰 화면과 입체적인 사운드가 감상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덧. 이야기의 전개와 큰 관계 없었지만, 내가 울컥했던 첫 포인트는 팔목에 보이는 노란 팔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