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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Mar 25. 2018

언시생 작문 #18

제시어: 정류장

언시생으로 썼던 마지막 작문.
프랑스였던가, 버스 정류장에 열악한 주거의 문제를 환기하는 그림이 걸려 SNS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게 50분인가 만에 현장에서 휘리릭 썼던 거라 문단별로 뚝뚝 끊기는 게 아쉽긴 하다.


제시어: 정류장


나는 정류장에 산다. 2평 남짓의 공간이 내가 잠을 자고, 삼각 김밥을 먹고, 인적성 검사 문제집을 푸는 일상을 위해 주어졌다. 이 정류장에는 302호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나는 이곳 302호에서 나를 데리고 떠나줄 버스를 기다린다.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공간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한 층에 8개, 총 세 개 층으로 이루어진 정류장의 집합소, 흡사 터미널 같은 이 공간을 우리는 고시원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기다리는 버스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내가 기다리는 버스는 대기업이다. 요즘 한창 운행 정보가 많이 뜨고 있다. 대기업 버스의 단점은 정확히 언제 버스가 올지 미리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달에는 SK라는 버스가, 며칠 전에는 롯데라는 버스가 지나갔다. 옆방의 남자는 얼마 전 7급 공무원이라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놓친 모양이다. 서로 대화는 없지만 방문 앞에 쌓여있는 문제집이 그가 타고 싶어 하는 버스를 알려준다. 누군가는 공기업이라는 버스를, 누군가는 언론사라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버스가 언제 올지도 모르지만, 버스가 온다고 해서 탈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다. 버스에 비어있는 자리는 언제나 부족하고, 버스를 꼭 타겠다며 벼르는 사람들은 언제나 넘쳐난다. 이 정도 경쟁률이면 수학적으로는 타지 못하는 게 정상이다. ‘이번에는 꼭 타고 떠날 거야.’, ‘운이 없었어. 다음에는 인적성 문제집을 두 권은 더 풀고 버스를 기다려야지.’ 정류장의 사람들은 쥐어짜내는 희망과 현실적인 절망 사이에서 의자놀이를 반복한다.


얇은 벽 너머로 옆방 남자의 중얼거림이 전해진다. 타인의 존재가 외로움을 없애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나는 고시원이라는 정류장에서 배웠다. 정류장은 군중 속의 고독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오직 떠나는 것이 목적인 공간에서 인간관계는 사치다. 다들 스마트폰을 보거나 도착 안내 전광판을 확인하는 버스 정류장의 풍경은 고시원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각자의 버스를 기다리며 각자의 의자놀이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벽을 맞대고 있다는 이유로 이웃이 되지는 않는다. 


이 정류장에는 셔틀버스도 자주 들어온다. [롯데] 번호판을 단 버스가 나를 정착지로 데려가 줄 노선버스라면, 뒤에 ‘비’자가 붙은 [롯데-비] 버스는 비정규직이라는 정류장과 고시원을 오가는 셔틀버스다. 고시원 총무에게 들어보니 맞은 편 305호의 남자는 3년째 이 정거장에 살며 지금 4번째 셔틀버스를 타고 있다. “잠깐만 참아. 견뎌야 좋은 날이 오지.” 부모님이 남긴 문자 메시지에 힘이 빠진다. 셔틀버스를 타게 되는 날도 좋은 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침대에 던져둔 스마트폰에는 정규직 취업경험이 있는 사람이 5%라는 뉴스가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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