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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스스로 노예가 되었나?

우리는 왜 스스로 노예가 되었나?


예전에 미스유니버스 선발대회를 할 때 사회자가 최후의 두 명 후보자를 남겨놓고 물어보는 말이 있다.

미스 유니버스가 되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말이다.

그러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 이 한 몸 다 바쳐 세계 평화에 기여 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평화의 시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지구는 유래없는 세계평화의 시대를 이어오고 있다.

무슨 소리냐?

베트남전, 걸프전,코소보 등등 얼마나 많은 전쟁이 있었는데 무슨 세계평화냐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

예전에는 영토가 정해지지 않았었다.

영토는 계속 바뀌었다.

끊임없이 옆나라를 침공했고 그 나라의 주민을 노예로 만들고 그 나라 땅을 자신의 땅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왜 그렇게 되었나?

이유는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전의 시대는 농업의 시대다.

농업의 시대는 토지가 생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왜냐하면 토지에서만 생산물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지는 한계가 있었다.

잉여생산물 즉 남아도는 생산물을 생산할 수 없었다.

노동을 해서 토지에서 쌀을 생산하면 먹고 사는 정도다.

그러니 생산하는 농노나 소작농은 자신의 땅에서 토지를 경작해서 쌀을 생산한다 하더라도 거의 모든 생산물은 세금이나 소작료라는 명목으로 다 빼앗겼다.

그렇다면 그 때 당시 부자란 어떤 사람일까?

더 많은 것을 빼앗아야 하는 것이다.

제일 부자는 누구였을까?

왕이었다.

왕은 그래서 더 많은 잉여생산물을 차지하려고 정복전쟁에 나섰다.

왜냐하면 왕은 정복전쟁을 통해 더 많은 노예와 더 많은 농토를 확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쟁은 수시로 일어났고 전쟁으로 인해 백성이 죽어나가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기면 더 많은 노예를 확보할 수 있었고 더 많은 농토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복전쟁에 나선 이유는 생산물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식량뿐 아니라 모든 것이 모자랐던 시대였다.

옷도 모자랐기 때문에 목화가 없던 북유럽은 여름 옷을 입고 얼어 죽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세이의 법칙이 나온 것 아닌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

이것은 만들면 만드는대로 팔린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나 산업혁명을 통해 모든 것이 바뀌었다.

잉여생산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물레를 돌려서 하루에 옷을 5벌 밖에 못 만들던 수공업자의 시대에서 방적기, 방직기를 통해 5만 벌을 만드는 혁명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니 옷이 남아돌 수밖에 없었다.

산업혁명이 최초로 일어났던 영국에서는 옷이 남아도니옷을 팔아먹어야 하는 소비해줘야 할 곳이 필요했다.

그곳이 바로 식민지다.

식민지는 두 가지 용도에서 필요 했다.


첫 째 원료 공급지

주로 1차 산업이 될 것이다.

식민지에서 쌀 등을 생산하여 제국에 제공한다.

고무, 사탕수수, 차 등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를 삼고 토지조사를 하고 식량수탈을 한 것은 제국이 식민지에서 농업생산물을 제공받기 위한 것이었다.


둘 째 제조물의 소비지

 제국은 그렇다면 식민지에게 아무것도 안 주었을까?

그렇지 않다.

제국은 제조업을 통해 나온 옷감을 식민지의 쌀과 바꾼다.

제국은 어차피 옷감이 남아돈다.

그러니 제국 안에서 옷감이 남아도는 것이 쌓이면 과잉생산으로 인해 공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남아도는 옷감을 식민지에 팔아야 한다.

그리고 제국이 필요한 쌀, 면화, 차, 향신료 등 제조업으로 할 수 없는 생산물을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국의 공황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영국의 옷감을 인도에 강제로 팔았을까?

아니었다.

오히려 영국배가 들어가면 옷을 사려고 인도에서는 줄을 서서 받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공업으로 만든 것보다 기계로 짠 것이 더 촘촘했고 품질도 좋았으며 가격도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도는 무엇이 안 좋았을까?

인도의 가내수공업은 전부 파산했다.

왜냐하면 영국의 싼 옷감이 대량으로 유통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디의 사진을 보면 항상 물레 돌리는 사진이 나온다.

그것은 조선의 물산장려운동(국내 물건을 소비하자는 운동)의 원조가 된다.

그러나 간디의 이 운동은 실패로 끝난다.


그렇다면 서로 윈윈이 아닌가?

인도는 싼 모직물을 얻어서 좋고 영국은 그런 모직물을 팔고 인도의 차, 향신료, 식량 등을 받아서 좋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영국의 모직물은 사람이 만들지 않고 기계가 만들지 않았나?

그러나 인도의 식량은 모두 사람의 힘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항상 부는 영국으로 이전될 수밖에 없었다.

기계가 만든 싼 대량의 모직물을 전부 식민지에 팔아먹은 제국은 엄청난 부자가 되었고 인도를 비롯한 영국의 식민지는 모직물을 받고 그들의 노동력을 통해 얻어낸 농업생산물을 전부 영국에 이전해줌으로써 가난하게 되었다.


그래서 20세기 초까지 이어진 대규모의 식민지 쟁탈전은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루투갈, 네덜란드 등을 거쳐 독일과 러시아 그리고 미국, 일본 등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식민지의 역할은 모제국(母帝國)의 물품만을 살 것을 강요 받았기 때문에 이것이 충돌한 것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전쟁으로 인한 충돌이다.

그것이 가장 크게 충돌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고 가장 핵심적인 나라는 기존의 제국인 영국과 새로운 신흥공업국 독일이었다.

식민지 전쟁에 뒤늦게 뛰어든 독일은 영국과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결국 강력한 제조업의 힘으로 현재의 자유무역에 가장 수혜를 받은 나라가 된 것이다.


그런데 왜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평화가 왔는가?

세계의 패러다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첫째 : 강력한 핵무기의 등장

일본을 항복하게 만들었던 핵무기는 전쟁을 하게 되면 인류멸망의 길이 될 것이라는 공포를 주었다.

그 후 소련과 미국의 군비경쟁으로 핵무기가 더 늘어나자 세계는 더 큰 공포가 되었다.

 그래서 세계대전은 일어날 수 없었다.


둘째 : 영토전쟁에서 경제전쟁

영토를 많이 확보해야 하는 영토전쟁 그리고 제조업 혁명으로 일어난 식민지 전쟁을 거쳐 식민지는 모두 해방되었고 세계는 자유무역이 일어나게 되었다.

잘 생각해보면 식민지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식민지의 확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세계가 모두 자유무역을 하게 되면 세계는 모두 제국이 될 수도 있고 식민지도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즉 생산성 향상이 많이 일어나 엄청난 부가가치를 일으키는 제조업 강국, 서비스업의 강국이 되면 제국이 될 수 있고 식민지 시절처럼 제조업 강국이 만든 자동차, 아이폰, TV 등을 쓰면서 농업 생산물인 커피, 면화 등이나 제조업에 필요한 고무, 석유 등을 공급하는 나라는 식민지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식민지를 만들 필요가 없어진 것이고 과학을 발전시켜 좋은 제품은 만드는 나라는 제조업 강국이 되어 세계적인 부자가 되고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나라는 거지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 제조업은 바이오와 IT로 더 많은 생산성 향상을 일으키는 나라가 더 부자가 되는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니 지금의 세계평화는 제조업 강국(제국)과 원료공급지와 소비지인(식민지)의 이해관계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주인(제국)은 굳이 소(식민지)를 잡아 먹을 이유가 없다.

그냥 소를 키우면 된다.

그들이 노예처럼 일해 제국에 안정적인 원료 공급과 소비를 해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세계평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 국지전이 일어나고 있는 곳은 주로 중동지역인데 중동지역은 특이하게도 영토에서 나는 석유가 지금 기계에 시대에 꼭 필요한 식량이 나기 때문이다.

즉 석유는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라 20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모든 기계들(항공기, 자동차, 선박, 기계 장치 등등)의 식량이 된다.

이것이 있어야 모든 기계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기계가 석유가 없다면 그냥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강제적인 힘을 동원해서라도 미국과 같은 강대국은 석유(기계의 식량)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니 이라크전, 걸프전, 코소보 사태 등등의 국지전은 미국의 이익에 반대되는 곳에 집중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스스로 노예가 되었을까?

그것은 우리가 자본주의 시대를 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대는 딱 두가지 계급밖에 없다.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말이다.

그렇다면 자본가 계급은 무엇인가?

생산수단인 기업을 지배한 계급이다.

그들은 기업을 지배하기 위해 주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을 주주라 부른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은 임금을 받고 소비를 한다.


이것에 대해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은 독립을 하고 식민지 국가에서 자본주의 국가로서 변신을 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것이 남북전쟁이다.

남북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노예해방전쟁이라고 하는데 진정 노예해방전쟁인가?

아니다.

미쳤는가?

왜 자국의 국민들이 흑인노예 때문에 치고 받고 하는가?

그것도 치열하게 수십만의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말이다.

이것은 철저한 경제전쟁이다.

남북전쟁이 일어나던 시절 미국은 남쪽은 농업 기반의 체제였고 북쪽은 제조업 기반의 체제였다.

그런데 노예는 남쪽에만 있었다.

왜 그랬을까?

농업에는 노예가 최적화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모든 농업생산물인 옥수수, 면화 등은 키워주는 것이 따로 있다.

땅에 심으면 저절로 자란다.

그러니 사람이 할 일이 없다.

그러나 수확을 하고 씨를 뿌리고 잡초를 제거하는 일을 사람이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일을 모두 기계가 한다.

그런데 이런 기계의 일은 모두 노예가 하기에 적합하다.

노예의 입장에서 바라보자.

노예는 일을 더 하거나 덜 하거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우리에 갇힌 농장에서 식량을 축내는 일밖에 없다.

그러니 일을 더 열심히 할 유인이 없다.

그러니 밥은 최대한 많이 먹고 최대한 많이 쉬는 것이 남는 장사다.

어차피 농업이란 생산성 향상은 필요없는 것이다.

그냥 태양빛을 잘 받으면 농산물은 잘 자란다.

그러니 주인은 노예를 일하지 않고 노는 것을 잘 감시하고 도망가지 못하게만 하면 된다.

그래서 농업은 노예가 하는 일이다.


그러나 제조업은 다르다.

임금노동자가 있어야 한다.

제조업은 생산성 향상이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다른 기업을 이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는 죽어라 더 작은 면적에 더 많은 회로를 넣으려고 노력한다.

그렇지 않으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죽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임금노동자는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자유인이 필요한 것이다.

그에 대한 유인은 돈이다.

돈을 더 줘서 그들이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것이 제조업의 핵심이다.

그런데 여기에 노예를 집어 넣으면 물건은 잘 나르겠지만 그들은 더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그러니 제조업에서는 쓸데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노예는 소비하지 않는다.

그냥 주인의 채찍을 피해서 쉬고 더 많이 먹는 것만이 그들의 존재의 이유다.

그러나 임금노동자는 다르다.

그들은 일을 열심히 하고 돈을 벌어서 소비를 해야 한다.

소비를 해야 제조업 공장이 잘 돌아가고 다시 고용이 되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임금노동자는 생산의 주체인 동시에 소비의 주체이다.


미국의 대통령 링컨은 이점을 간파하고 노예가 도시로 더 많이 몰려와 자유인이 되어야 하며 그래야 자동차 공장에서 더 열심히 일하고 소비해야 한다는 논리에서 노예 해방을 주장한 것이다.

괜히 남부의 농장주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북부의 입장을 대변하고 앞으로 미국이 패러다임의 전환 시기(제국주의에서 자유무역으로 변경되어야 하는 새로운 시기)에서 꼭 필요한 일을 한 것이다.사실 미국은 식민지가 필리핀을 빼고는 없었기 때문에 식민지를 더 많이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제조업으로 자유무역을 해서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임금노동자의 정의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임금을 받고 생산하며 그 임금으로 소비를 하는 주체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제국과 식민지와의 관계와 같다.

제국은 주주이며 식민지는 임금노동자이다.

임금노동자는 임금노동으로 번 돈을 가지고 죽어라 일을 하며 그것으로 또 다시 소비에 몰두함으로써 그는 영원한 노예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든다.

그러한 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묘히 포장 되어 있고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기에 스스로 행하고 있지만 그것이 어떤 행동인지 스스로 모른다.


사람들은 돈을 추구하도록 교육을 받고 자란다.

돈이 소중하다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늙어서 고생한다.

굶어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그 돈을 가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쇄뇌를 받는다.

그러니 돈을 벌기 위해서 스스로 야근을 자처한다.

새벽에도 일을 한다.

돈을 적게 벌고 일을 적게 할 수 있는데도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데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능력을 개발해서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것이다.

더 좋은 학력, 스펙, 학벌, 기술 등을 연마하여 더 많은 임금을 받는다.

다른 하나는 더 많이 일하는 것이다.

같은 능력과 같은 학력일 때 더 많이 일하면 더 많이 벌 수 있고 더 많이 일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을 하면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돈에 대한 집착은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다음으로 돈을 벌어서 소비를 하는데 쓴다.

자본가들은 임금노동자가 훨씬 많은 일을 통해 더 많은 물건과 새로운 물건 더 창조적인 물건을 만들어내어야 하며 그들이 다시 소비주체가 되어서 더 많은 소비를 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광고라는 것을 개발 했고 쇼핑을 편리하게 만들었다.

즉 광고를 통해 욕망을 자극하도록 만든다.

주로 나를 강조한다.

너는 소중하니까, 인생은 한번뿐인니까, 너는 주체적이니까 와 같은 말들이다.

너는 소중하니까 헌 것을 쓰지말고 새로운 것을 써라. 더 최신폰을 써야 하고 더 최신의 차를 타야 한다.

일생의 결혼은 한번 뿐이니까 더 크고 화려하게 해야 한다.

너는 주체적이니까 이 정도는 소비할만 해 줘야지 등등이다.

그리고 유행을 만들어 내서 마치 그것을 사지 않으면 유행에 뒤떨어지고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요즘의 패딩열풍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것은 물건을 팔아먹기 위한 허구다.

물건을 사기 전까지는 굉장한 소유욕을 느끼지만 막상 사고 나면 한 달 아니 일주일이면 그 욕망은 사라지고 그렇게 열망했던 옷이 옷장 구석에 쳐 박혀 있는 것을 보게된다.


즉 임금노동자의 쓰임은 죽어라 돈을 벌게 만들고 그 돈을 쓰게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그것을 잘 하게 하는 것이 기업의 역할이고 기업이 그 역할을 못하면 그 기업은 존립의 가치가 없으며 그 기업의 CEO는 퇴출된다.

그래서 더 이러한 일을 잘 하는 CEO(머슴)을 써서 기업이 수익을 내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주주는 제국이며 그러한 안전한 기업의 주식을 사서 배당이 나오도록 파이프라인을 짜는 것이 좋은 주주가 할 역할이다.

미친듯이 소비를 하는 것은 주주의 역할이 아니다.

특히 자신의 벌이보다 더 많은 소비를 하는 것은 노예로 가는 지름길이다.


우리는 대부분 임금노동자이다.

그러나 평생을 임금노동자로 살면서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서 쓰임을 당하다 죽는 삶은 노예로서 살아간다.

그러나 노예로 살려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주주로서의 삶이다.

노예와 주인의 가장 큰 차이는 이것이다.


내가 일을 하고 싶을 때 일을 하면 주인이며 내가 일을 하기 싫어도 일을 하면 노예이다.

앞으로 노예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주인으로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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