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E 팍팍 밀어준 中정부… LGD는 규제·떼법에 사업

BOE 팍팍 밀어준 中정부… LGD는 규제·떼법에 사업 차질


성장의 축 기업이 흔들린다
추락하는 제조업 경쟁력

BOE에 보조금 1조4000억원
2009년 등 4개 연도 실적
정부 보조금에 적자흑자로
공장 설립때도 90% 이상 지원

LGD 옥죄는 규제 법안
한때 해외 합작사 설립 못해
파주공장 건설 때도 발목 잡혀

OLED 사업전략 차질도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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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제조업체들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고비용·저효율 노동시장과 과도한 정부 규제, 늘어나는 대외 악재가 기업을 옥죄고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회사를 제외한 국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541곳 중 263곳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이 뒷걸음질 쳤다. /한경 DB

LG디스플레이는 1999년 필립스와 합작해 LCD(액정표시장치)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중국 BOE의 기술력은 전자 손목시계에 들어가는 액정을 만드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기회는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현대그룹 구조조정으로 현대전자의 LCD 사업부문이던 하이디스가 2002년 분리돼 매물로 나왔다. 이 회사를 사들인 BOE는 핵심 기술 4300여 건을 넘겨받은 뒤 하이디스를 부도처리했다. 디스플레이업계 관계자는 “하이디스 출신 한국인 기술자들은 이후 BOE 기술력의 핵심이 됐다”며 “하이디스 인수가 아니었다면 BOE의 LG디스플레이 추격은 5~10년 늦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전폭 지원, 한국은 규제

BOE는 곧바로 중국 ‘디스플레이 굴기’의 핵심이 됐다. 중국 정부의 지원은 화끈했다. 재무제표에 기록된 중국 정부의 보조금만 2001년 이후 17년간 84억4300만위안(약 1조4400억원)에 달했다. 정상적이라면 영업손실을 냈을 2009년과 2011년, 2012년, 2016년 실적이 모두 대규모 정부 지원에 힘입어 흑자로 전환됐다. 보조금 지원 항목은 대출 이자 상환, 전기·수도료까지 10여 가지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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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E 공장 건립 과정에 중국 정부가 각종 방식으로 지원한 자금은 훨씬 많다. 올해 초부터 10세대 LCD 패널을 세계 최초로 생산하고 있는 BOE 허페이 공장이 대표적이다. 이 공장을 짓는 데 투자된 460억위안(약 7조8000억원) 중 BOE 자체 자금은 30억위안(약 5100억원)으로 6.5%에 불과하다. 허페이시 산하 공기업이 210억위안, 공공투자펀드가 60억위안을 쏟아부었다. 나머지 160억위안은 은행 대출로 충당했다. 국영은행 중심인 중국 금융 시스템에서 정부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한 대출 규모다. 허페이시는 BOE의 지분을 일부 넘겨받는 방식으로 공장 설비 보조금 지원을 금지한 세계무역기구(WTO) 규약을 우회했다.

BOE가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동안 LG디스플레이는 국내 규제에 발목이 잡혔다. 지주회사의 손자회사는 100% 자회사만 세울 수 있도록 한 공정거래법 규정이 문제였다. (주)LG의 손자회사인 LG디스플레이는 해외 합작 생산법인 설립이 원천 봉쇄됐다. 2011년 관련 규정이 사라지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해외 생산 인프라를 확장할 수 있었다. 각종 ‘떼법’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2016년 차세대 먹거리인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 생산을 위해 경기 파주 공장 건설에 나섰을 때는 레미콘트럭 기사들이 운송료 인상을 요구하며 오후 5시 이후 운행을 중단했다.

中에 세계 1위 내준 LGD… 이게 한국 제조업 현주소


◆시장 전략 실패도 이유

후발업체의 추격에 맞서 새로운 시장을 열거나 생산비를 낮추는 전략을 실행하는 데 실패한 점도 역전을 허용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LCD 기술력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LG디스플레이는 2013년부터 TV용 OLED를 생산하며 돌파구를 찾았다. 하지만 해당 시장이 성숙되지 않으면서 LG디스플레이는 지금도 관련 사업에서 수익을 못내고 있다. 2008년 일찌감치 스마트폰용 OLED 사업에 뛰어든 삼성디스플레이와 대비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중국 기업들과의 기술 격차를 멀찍이 벌리며 관련 시장의 97%를 점유하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도 비슷한 전략 수립 실패를 겪었다. 2015년부터 중국 현지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붐이 일었지만, 현지에서 통할 만한 중소형 SUV 모델을 제때 내놓지 못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소형 SUV 전략 모델을 서둘러 내놓기 시작했다.
가격도 매력적이지 않았다. 중국에서 파는 싼타페 가격은 2.0 터보 기준으로 23만9800~28만9800위안(약 4048만~4892만원)이다. 비슷한 차급인 현지 완성차업체 광저우자동차의 GS8 2.0 터보(7인승) 모델 가격은 16만3800~25만9800위안(2765만~4386만원) 정도다. 저가 모델 기준으로 1000만원 넘게 차이가 난다. 업계 관계자는 “브랜드 이미지가 우월한 수입차와 가격 경쟁력이 뛰어난 중국 현지 업체 사이에 끼어 한국 완성차회사들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노경목/장창민 기자 autonomy@hankyung.com
http://news.hankyung.com/article/2018051614901

그래서 한국정부가 못 때리는 것 미국이 대신 때려주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반도체를 빼고 모든 품목은 중국에게 다 따라 잡혔다.

그러니 앞으로 세계시장에서 살아갈 길이 험난해진다.


수출을 못하면 어떻게 될까?


일본이 그런 적이 있었다.

일본은 스페인이 남미에서 포토시 은광으로 수십만톤의 은을 캘 때 일본에서도 은광으로 떼돈을 벌었다.

그래서 은광산으로 포루투갈에서 조총도 수입하고 중국의 선진문물인 다도에 필요한 차와 도자기 그리고 비단을 사서 입었다.

그런데 은광산을 100년간 캐니 더 이상 캘 은광산이 없었다.

그런데 생활수준은 낮추기 쉽지 않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중국을 쳐들어가서 중국에서 차와 도자기 비단을 빼앗아 오자는 것이었다.

결국 일어난 것이 임진왜란이었고 임진왜란을 통해 명나라를 정복하지는 못했지만 무역을 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얻어왔다.

그것은 조선의 도공이었다.

조선의 도공으로부터 도자기를 만들어 유럽에 수출을 했다.

그래서 일본의 도자기가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 그렇게 많이 팔렸다고 한다.

일본의 도자기는 한국의 조선백자와 달랐다.

화려한 색과 실용성 그리고 주문자 생산방식 말이다.

심지어 도자기로 사람도 만들고 동물도 만들었다.

그래서 유럽에서 난 은으로 중국의 비단과 차도 수입했으나 자국에서 키워보자고 해서 비단과 차를 키웠고 조선말엽쯤 되면 조선에서는 더 이상 수입할 것이 없었다고 한다.

인삼을 빼고는 말이다.

그래서 조선과는 교역도 할 것이 없었다.

이에 반해 조선은 도자기의 도공을 쥐잡듯이 잡아 착취했다.

나라에 진상하는 것 뿐 아니라 고을 수령부터 아관까지 도자기를 만들어내라 도공으로부터 독촉했다.

임금도 거의 받지 못했고 생활은 어려웠다.

수출과 수입도 중국에 조공무역 정도만이 겨우 하는 정도였고 백성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일본은 이러한 경제를 바탕으로 중국의 유학과 조선의 유학을 받아들여 300년간 이어진 태평시대를 구가했다.

여기서 할일없이 노는 계층이 바로 사무라이다.

사무라이는 전쟁이 일어나야 자신들이 공도 세우고 승진도 할텐데 할 일이 없으니 집에서 책이나 읽었다.

그래서 배운 유학이 조선을 압도했다.

흑선을 타고 미국의 페리가 왔을 때 개항을 먼저 한 일본은 서양의 문물을 먼저 받아들였는데 그 토대는 유학으로 다져진 지식에 기반한다.

그러나 조선은 유학으로 다져진 지식을 바탕으로 쇄국을 했고 결국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후발국인 일본에 따라잡힌 조선의 신세가 현재의 중국과 한국이 아닌가 싶다.

잘 하자.

잘 못하면 국민들이 고통 받는다.

그리고 후손들 볼 면목이 없다.

아마도 후손들이 두고두고 욕하는 조선말의 사대부가 되지 않아야 할텐데 말이다.


JD 부자연구소
소장 조던
http://cafe.daum.net/jordan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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