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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한국, 하위 10% 중산층 진입까지 5세대

OECD "한국, 하위 10% 중산층 진입까지 5세대 걸려"


'깨진 사회적 엘리베이터?: 어떻게 사회이동을 촉진하나' 보고서

한국의 소득 하위 10% 계층이 평균 소득 계층으로 진입하기까지 5세대가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내놓은 ‘깨진 사회적 엘리베이터?: 어떻게 사회이동을 촉진하나’ 보고서에서 이 같이 밝혔다.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임명된  윤종원 전 주OECD 대사는 대사 이임에 앞서 지난달 30일 이 보고서 내용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하위 소득층이 평균 소득층으로 진입하는 데 걸리는 세대수(5세대)는 OECD 평균(4.5세대)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계산하면 소득 최하위층이 중간층으로 진입하는 데 150년이 걸리는 셈이다. 한국과 같은 나라로는  영국·미국·이탈리아 등이 있었다.

하위 소득층이 평균 소득층으로 진입하는 데 소요되는 세대수가 한국보다 적은 나라로는 덴마크(2세대),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3세대), 스페인·캐나다·일본·네덜란드(4세대) 등이 있었다.

한국보다 평균 소득층 진입이 오래 걸리는 곳은 프랑스·독일·칠레·아르헨티나(6세대), 헝가리(7세대) 등이 있었다. OECD 비회원국인 중국과 인도도 7세대가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한국의 교육 이동성은 OECD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고등교육을 받은 부모의 자녀 중 71%(OECD 평균 63%)가 고등교육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중학교 이하 교육을 받은 부모의 자녀 중 4분의 1가량이 고등교육을 받았다. 이는 OECD 평균(13%)의 두 배가량이다. 

반면 직업 이동성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한국은 블루칼라(육체노동) 자녀 중 40%가 육체노동자가 됐고, 네 명 중 한 명만 관리직(화이트칼라)이 됐다. 관리직은 자녀 두 명 중 한 명이 관리직이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OECD는  한국의 직업 이동성이 낮은 이유 중 하나로 청년과 여성이 고용시장에서 직면하는 어려움을 지목했다. OECD 회원국 중 한국의  청년(15∼29) 고용률은 평균 이하이고, 청년 니트족 비율도 평균을 상회했다. 니트(NEET·neither in  employment nor in education or training)족은 일자리가 없으면서 교육이나 훈련도 받지 않는 청년을  뜻하는 신조어다.

윤종원 수석은 페이스북에서 “OECD는 사회이동이 원활하려면 균등기회 제공을 위한 조기교육, 건강에  대한 공공투자, 일과 가정의 균형, 실직자의 취업지원과 연계된 실업급여 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며 “우리나라에 대해선  청년·여성의 노동시장참여 강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사회보험·직업훈련 확대를 권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원본보기▲랜달 존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경제 담당관이 지난달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OECD 정책 권고가 담긴 한국경제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랜달 존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경제 담당관이 지난달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OECD 정책 권고가 담긴 한국경제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세종=김지영 기자 jye@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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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636902#csidxc1ececeb8099c608d856838a987aeaf 


헤겔의 정신 현상학 이라는 책에서 자기의식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식을 갖는다.

그것을 예로 든 것이 유명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이야기다.


인간은 사회를 형성하는데 이 사회를 지탱해 나가는 중요한 요소는 인정욕구라는 것이다.

인정욕구에서 어떻게 주인과 노예가 나올까?

어떤 두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한 사람은 주인이 되고 다른 한 사람은 노예가 된다.

왜 그럴까?

일단 둘은 서로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욕망을 지닌다.

인정 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인이 되는 자는 생명을 초월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눈에 뵈는 것이 없는 자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으니 타인의 인정을 획득하고,  주인이 된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는 생명에 집착한 결과, 주인의  허락을 받아 사물로 안주하고 노예가 된다. 


사실 임금노동자와 자본가도 마찬가지 아닌가?

자본가는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기업을 일으켜 사장이 되고 임금노동자는 실패를 두려워 해 사장의 노예인 임금노동자가 된다.

그리고 52시간 일하게 하니 더 일해야 내가 돈을 더 버니 더 일하게 해 달라고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돈이 모자르니 그 외 시간에는 알바라도 뛰어야 한다는 것이 이러한 것과 맞닿아 있지 않는가?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 자신의 죽음을 불사한 노력과 관계없이 부모의 부가 대물림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가난한 것에 대해 부모 탓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내가 자식임과 동시에 그 부모이기 때문이다.


JD 부자연구소
소장 조던(김장섭)http://cafe.daum.net/jordan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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