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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일 대표, 고영 창업해 전자부품 검사장비 세계 1

고광일 대표, 고영 창업해 전자부품 검사장비 세계 1위로 풀다


2019 위기를 기회로 - 창업 기업인의 꿈과 도전
(5) 고광일 고영테크놀러지 대표

 대기업에서 번번이 일본에 밟힌 '엔지니어의 恨'

3D 전자부품 검사장비 11년째 세계 1위 비결
 일본 넘어라 - 대기업보다 두발짝 앞선 기술로 승부
 관료주의 타파 - 성과 안따지고 연구원에 무제한 권한
 위기 정면돌파 - 금융위기때 R&D 대규모 투자


  



고광일 고영테크놀러지 대표가 뇌수술 보조로봇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글로벌 투자 분석업체 CLSA가 선정한 세계 10대 로봇회사. 삼성 LG HP 출신들이 모여드는 중소기업. 4년 전부터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한 회사.’


위기, 그리고 낙관주의



      



고광일 고영테크놀러지 대표가 뇌수술 보조로봇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발(發) 금융위기가 터졌다. 이듬해까지 여파가 이어졌다. 

고영



회사로 돌아온 그는 임원들을 불러 모았다. “우리는 지금 투자한다. 사람을 왕창 뽑고, 연구개발 더 해라. 생산은 더 투자 안 해도 되니까.”



연구원들은 따로 불렀다. “그동안 일하느라 하고 싶은 연구 못했지? 이제 여유가 좀 생겼으니 마음껏 하고 싶은 연구들 해. 어차피 이런  상황은 오래 안 가니 그때까지 여유를 즐기라고.” 직원들은 대표의 말을 따랐다. 밀린 연구, 하고 싶었던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2010년부터 세계 경제는 회복됐다. 2010년 

고영

고영



로봇에 꽂힌 공학도, 일본을 넘어



고 대표가 로봇이라는 꿈을 찾아 떠난 것은 1980년대 초다. 고 대표는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국책 연구원에 입사했다. 월급도  많고, 업무 강도도 세지 않았다. 다른 날처럼 한가한 어느날 오후 신문을 넘기고 있었다.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로봇  연구원 모집’이라는 금성사(현 LG전자) 광고였다.



그는 그날 원서를 내고 LG로 옮겼다. “처음 가니 로봇이 뭔지 세미나만 했던 것 같아요. 누구도 로봇을 알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답답했던 그는 미국으로 유학갔다. 피츠버그 공대에서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LG에서 성과도 냈다. 패미콤이라는 로봇 컨트롤러를 개발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늘 답답한 게 있었다.



기업가정신 하면 파괴적 혁신과 세상에 없는 제품을 통해 사람의 삶이나 시장을 변화시키는 것 등을 떠올린다. 한국에는 여기에 따라붙는 게 한 가지 더 있다. ‘극일’(克日)이다. 산업의 시작도, 경쟁도, 패배도 모두 일본을 통해 맛봤기 때문이다. 고 대표도 그랬다.  그는 “엔지니어들이 갖고 있는 한이 생겼다”고 했다.



직원들과 몇 년간 밤을 새우다시피 연구해 신제품을 개발하는 일은 일상이었다. ‘이제는 됐다’ 할 정도, 즉 일제와 경쟁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법칙처럼 일본 기업들은 곧장 한 단계 앞선 제품을 내놨다. 미리 정보를 입수해 LG 제품을 올드 모델로  만들어버리는 전략을 썼다. 판판이 당했다.



전쟁을 가로막는 관료주의



일본을 넘어서지 못한 채 고 대표는 회사를 옮겨야 했다. 외환위기가 오자 돈을 못 버는 부서가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 사표를 냈다.  선택지는 대우중공업 삼성테크윈 미래산업 등이었다. “함께 움직이기로 약속한 ‘동지’들에게 물었더니 ‘대기업은 질렸다, 싫다’고  하더라. 그래서 미래산업을 택했다”고 했다.



질릴  만했다. 연구원들을 먹여살리려면 프로젝트를 따와야 했다. 이를 위해 사업부장 비위를 맞추고, 기획이사 연구소장 사장을 줄줄이  설득했다. 그는 “1년에 두 달은 그짓 하고 돌아다녀야 애들 먹여살릴 수 있었다”고 했다. 설득하는 사이 일본 기업들은 앞선  제품을 시장에 내놨다. 관료주의가 엔지니어들을 막아선 셈이다.



이때 정문술 미래산업 회장을 만났다. 정 회장은 설움받은 얘기를 듣더니 “당신이 오면 나는 돈 안 따진다. 연구소 차려줄 테니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해봐라”고 했다.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정 회장은 약속을 지켰다. 무제한의 권한을 받고 연구개발을 했다. 그러나  2001년 정 회장이 경영을 포기하자 고 대표는 또다시 미아 신세가 됐다. 2002년 초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안 되면 내가 한다, 창업 그리고 해외로



미래산업을 나온 고 대표는 창업을 결정했다. “다른 회사에서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내가 직접 회사를 차려 하는 수밖에 없다.”


고영을 설립했다. 직원은 2명이었다. 어떤 제품을 만들지는 결정하지 않았다. 상품을 연구개발하는 실험실에서 기획하는 게 문제라고 판단했다. 고객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는 과정에서 아이템을 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영업사원부터 뽑았다. 고 대표는 영업 담당자와 6개월을  돌아다니며 LG 삼성 등 대기업 사람들을 만났다. 이렇게 3차원 측정장비 개발에 성공했다. ‘3차원 납도포검사장비.’  인쇄회로기판(PCB)에 납이 제대로 도포됐는지 검사하는 장비다. 세계 최초의 3차원 검사장비였다.


하지만 파는 게 문제였다. 국내에선 몇 대 팔았지만 해외시장은 쉽지 않았다. 고 대표는 “아예 세계적인 업체에 납품하는 전략을 세웠다”고 했다. 독일 전시회로 나갔다. 여기서 지멘스를 만났다. 몇 달간 테스트한 뒤 세계  1위에 오르자 경쟁 업체를 따돌리는 전략을 썼다. 3차원 납도포검사장비에 대한 추격이 이어지자 ‘3차원 부품실장  검사장비(AOI)’를 선보였다. 고 대표는 “3차원 전자부품 검사장비 분야에서 11년 연속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약력  

△1957년생
△1980년 서울대 전기공학과 졸업
△1982년 서울대 대학원 제어계측공학 석사
△1989년 미국 피츠버그대 공학박사(로봇공학)
△1981~1983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1983~1985년 LG전자 중앙연구소
△1989~1997년 LG산전 연구소 산업기계연구실장
△1997~2002년 미래산업 연구소장(전무)
△2002년~현 고영테크놀러지 대표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김기만 기자 

nhk@hankyung.com



http://news.hankyung.com/article/2019010700871







신문기사는 이것보다 훨씬 길게 나왔는데 중간에 다 잘렸다.




잘린 기사중 2008년도 금융위기 당시에 대해 얘기한 것이 있다.


금융위기 당시 매출이 급감했다.


그래서 업계사람들을 만나봤더니 다 구조조정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을 만나고 와서 고사장은 오히려 직원들에게 못해본 연구를 할 기화라 말하고 연구비를 더 지원해주면서 하고싶은 연구를 하라고 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데 이런 위기가 지속될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1년 반만에 위기가 끝나고 매출이 10배가 늘었고 이때 연구한 것이 도움이 되어 지금의 고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11년 연속 세계 1위 아니겠는가?




그렇다.


지금 어려운 시기다.


주식이 떨어지고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시기다.


그러나 이 시기가 지나면 오르는 평화의 시기가 온다.




나스닥 연간분석을 해보면 39년동안 주로 6년만 집중적으로 떨어졌고 나머지 33년 정도 80% 정도는 많이 오르거나 보합수준이었다.


그리고 많이 떨어지면 최소 5년에서 10년은 오른다.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식이 떨어지면 떠났다가 주식이 꼭대기를 치면 그제서야 돌아와 다시 꼭대기에 샀다 다시 추락하면 떠나는 일을 반복한다.




메뉴얼을 철저히 지키고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평생 주식을 모아간다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참에 주식이건 지식이건 하고싶은 공부를 최대한 늘려서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고영을 설립했다. 직원은 2명이었다. 어떤 제품을 만들지는 결정하지 않았다. 상품을 연구개발하는 실험실에서 기획하는 게 문제라고 판단했다. 고객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는 과정에서 아이템을 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영업사원부터 뽑았다. 고 대표는 영업 담당자와 6개월을  돌아다니며 LG 삼성 등 대기업 사람들을 만났다. 이렇게 3차원 측정장비 개발에 성공했다. ‘3차원 납도포검사장비.’ 인쇄회로기판(PCB)에 납이 제대로 도포됐는지 검사하는 장비다. 세계 최초의 3차원 검사장비였다.




기사 중간에 나온 것이다.


고영을 설립하고 이 고사장이 한 일을 보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이 잘 하는 것을 하지 않았다.


즉 영업사원을 뽑고 설문조사를 해서 남들이 원하는 것을 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이 잘 하는 것은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으니 그것으로 밀어부치는 일을 한다.


그러나 이런 사업은 꼭 실패한다.


왜냐하면 남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니 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번 실패하고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바로 남들이 원하는 상품을 생각했더니 그제서야 성공하더라 이런 얘기를 한다.




소비자의 후생도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는 내가 잘 하는 것을 할 때 높아진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나를 만족시키는데 끝나지만 내가 잘 하는 것은 남까지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주식투자도 마찬가지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주식투자를 미인선발대회와 같다고 했다.




왜냐하면 미인은 투표자 자신이 가장 미인이라고 생각하는 여인이 아니라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미인이라고 생각하는 여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체로 투표자의 평균 선호에 가장 가까운 여인이 미인으로 최종 선발되게 된다. 결국 이는 투자자 개인이 생각하기에 이익을 낼 것 같은 종목이 아니라 시장 주도주나 인기주에 투자하라는 말과 같다. 



자본주의는 남의 생각이 중요하다.


내 생각은 필요없다.


그런데 항상 주식투자를 할 때 남의 생각은 보지 않고 나의 생각만을 밀어 붙이고 내가 좋아하는 종목만을 산다.


그러다 주가가 떨어지면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 물타기를 하거나 존버를 택한다.


그래서는 백번 싸워 백번 질 수밖에 없다.


남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주가가 오르면 좋은 것 떨어지면 나쁜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된다.


떨어지는 것에서 반성이 있어야 발전이 있다.


내 고집만 세우면 발전은 없고 고집으로 투자를 할 뿐이다.


뭣도 모르면서 배우는 것 하나 없이 말이다.





JD 부자연구소
소장 조던
http://cafe.daum.net/jordan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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