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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野 "쌀 목표價 21만원 이상으로"

與野 "쌀 목표價 21만원 이상으로"


농민票 의식 석달만에 '재조정'
역대 최대폭 11.7% 인상 합의


 여야가 2018~2022년산 쌀에 적용하는 목표가격을 ‘21만원 이상’(80㎏ 기준)으로 올리기로 잠정 합의했다.  지난해 말 역대 최고가인 19만6000원으로 목표가격을 정한 뒤 농민단체 반발이 커지자 석 달여 만에 다시 올리기로 한 것이다.  직전 5년간 목표가격 대비 11.7% 인상하는 것으로, 이는 2005년 쌀 직불제도 도입 이후 가장 큰 인상폭이다. 

국회 관계자는 20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3당(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간사가 쌀 목표가격을 21만원 이상으로 정하는 데 합의했다”며 “최종 목표가격은 각 당 원내대표가 협의해 확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쌀 목표가격은 변동직불금 지급의 기준이 된다. 쌀값이 목표가격보다 낮으면 차액의 85%를 정부가 보전해 준다. 목표가격이 높을수록  농가에 대한 정부 지원이 늘어나는 구조다. 당정이 작년 11월 “쌀 목표가격을 19만6000원으로 하겠다”고 발표했으나  농민단체들은 “목표가가 너무 낮다”며 반발해왔다.




산지 쌀값이 19만2986원(지난 15일 기준)으로 역대 최고 수준인 데다 목표가격마저 높게 책정됨에 따라 쌀 과잉 생산을 부추길  것이란 우려가 있다. 쌀값이 더 오르면 농가는 좋지만 도시 영세 식당 등은 부담이 커진다. 더구나 올해 변동직불금 관련 예산은  2533억원으로 목표가격이 21만7000원을 넘으면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 정부가 농가 소득을 늘린다며 쌀값을 인위적으로 올리는 데 이어 수천억원의 국민 혈세까지 지원하는 게 옳은 것이냐는 논란도 일고 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http://news.hankyung.com/article/2019022002421







실직자 귀농에 농촌 취업자 급증…"경기침체 전조일 수도"




심층 분석
 고용 참사에도…1월 농림어업 취업자 10만명 증가 '미스터리'

고용동향 원데이터 뜯어보니

 정부 "자발적 귀농 증가"라지만 경기침체 따른 실직·은퇴자 귀농
 자영업 문 닫은 60대 귀향 늘어…대부분이 무급 가족종사자

 취업 못한 2030 귀향도 급증…집에서 농사 돕는 청년 많아져
 취업 늘었지만 농업GDP 제자리…"경기침체 알리는 나쁜 신호"




지난달 취업자 증가폭은 1만9000명에 불과했지만 농림·어업 분야 취업자는 10만7000명 급증했다. 취업자  증가폭이 9만7000명에 그친 지난해 ‘고용참사’ 통계에서도 유독 눈에 띈 건 농림·어업 분야 취업자 급증(6만2000명  증가)이었다. 산업별로 보면 농림·어업 취업자는 공공일자리 등이 많은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를 제외하면 가장 많이 늘었다.  2000년대 이후 계속 감소하며 고용을 갉아먹던 이 산업에서 취업자가 갑자기 늘어난 원인은 무엇일까. ‘통계 분식’ ‘건강보험료 부정수급자 증가’ 등 억측이 나오는데도 정부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며 말을 아껴 왔다.

하지만 이런 기현상이 도시에서 밀려난 실직자와 은퇴자들의 ‘비자발적 귀농’ 때문인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경제  전문가들의 통계 분석을 통해서다. 전원생활을 즐기려는 ‘자발적 귀농’이 아니라 도시에서 실직하거나 폐업한 뒤 낙향한 노인들이  생계를 위해 농업에 대거 뛰어들었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도시에서 쫓겨난 60대 ‘비자발적 귀농’




20일 농촌경제연구원이 통계청의 2018년 고용동향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농림·어업 취업자는 전년보다 6만1540명  증가한 116만9393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90% 이상이 농업 취업자로 추산된다. 농업 취업자 증가를 이끈 건 60대  이상(5만8797명 증가)이었다. 자영업자(2만9519명)와 함께 가족 일손을 돕는 무급 가족종사자(3만2384명)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자영농과 그 배우자가 급증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도시에서 장사를 하다 폐업한 고령의 자영업자 및 저임금 근로자들이 귀향해 농업에 뛰어든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정부 내에선 ‘자발적  귀농’ 인구가 늘어났다는 해석도 있지만 실제 귀농 인구 증가가 곧바로 취업자 증가로 이어진 사례는 드물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7년에도 귀농 인구가 4.6% 증가했지만 농사를 짓는 귀농인은 거꾸로 4.5% 감소했다.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자영농과 무급 가족종사자 급증은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는 ‘생계형 귀농’ 인구가 대부분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분석은 추경호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경남 등 농업 취업자가 급증한 지역을 담당하는 통계청 지방청에 문의해 받은 답변과도  일치한다. 통계청 지방청 관계자들은 “도시지역 실직자와 은퇴자들이 귀농하면서 자영업자와 무급 가족종사자가 증가했다”며 “특히 경남 지역에서는 조선업에 종사하던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은 뒤 특수작물 시설재배 농가와 마늘 양파 등 대체작물 재배 농가에 취업하는  사례가 급증했다”고 밝혔다.

30대 이하 취업자가 소폭  증가한 것도 취업 지연으로 일손을 돕는 청년이 늘었기 때문이란 게 통계청 지방청의 분석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농촌에선 최저임금 기준이 잘 지켜지지 않는데, 최저임금보다 낮은 금액을 받더라도 일하겠다는 청년들이 농촌으로 이동한 요인도 일부 있다”고 했다.




“경기 침체 전조일 수도”

선진국에선 자영농이 급증하는 현상을 경기 침체 전조로 해석하는 사례가 많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제가 급격하게 고꾸라진 스페인과 그리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스페인에서는 이를 지칭하는 ‘루르바니스모(rurbanismo)’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성 교수는  “경기 침체 국가에서 농어촌 취업자가 증가하는 건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같은 농림·어업 고용의 대부분이 제조업 등 일자리보다 현격하게 질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제조업은 일자리가 늘어나는 만큼 경기 활성화 효과가 있지만 농림·어업 고용은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약점이다. 1998년 농업 취업자가 급증했을 때 경기 활성화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도 비슷한 배경이다. 지난해 농림·어업 분야 취업자가 전년 대비 4.8% 늘었지만 이 분야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1.4%에 그쳤다.

한 전문가는 “정부는 농업법인 및 스마트영농이 늘고 관련 일자리가 창출되면서 농림·어업 고용이 늘었다는 설명을 내놓기도 했다”며 “하지만 그게 주된 배경이라면 취업자 증가율과 이 분야의 GDP 증가율이 비슷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통계 착시’ 묵인했나

정부가 농림·어업 분야의 취업자만 증가한 ‘진짜’ 원인을 알고 있었으면서 일부러 공개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지난해부터  농림·어업 취업자 급증 이유를 궁금해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기획재정부는 작년 1월 이후 고용지표 분석 자료에서 농림·어업 취업자  증가에 대한 설명을 담지 않았다. 작년 6월 취업자 증가폭 급감에 대해 “인구효과를 고려해야 한다”며 별도 자료까지 배포했던 걸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기재부 한 공무원은 “경남지역 통계 원자료만 들여다봐도 조선업 실직자가 대거 귀농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며 “기재부가 이 같은 원인을 알고 있었지만 굳이 발표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고용통계 착시를 일으킬 수 있는 농림·어업 취업자 증감을 뺀 새로운 고용통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급속한 고령화 등으로 농업 취업자가 급증하면서 고용통계 착시 효과가 심화하고 있다”며 “농업 부문 일자리,  공공행정, 보건복지 가사서비스 등 비영리 부문을 제외한 ‘비농업 임금근로 통계’ 지표를 따로 작성해야 제대로 된 고용 정책을 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http://news.hankyung.com/article/2019022000831







與野 "쌀 목표價 21만원 이상으로"




실직자 귀농에 농촌 취업자 급증…"경기침체 전조일 수도"




이 두 가지 기사를 놓고 함께 보자.




일단 정부에서 주는 쌀에 대한 직불금 즉 보조금을 사상최고치로 올렸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떻게 보조금을 주게 되었을까?




일단 국가가 어떻게 나오게 되었을까?


국가는 폭력을 독점한다.


즉 자력구제 금지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내가 A를 때렸다면 A는 경찰에 신고를 해야지 다시 맞 받아치면 나도 A도 처벌을 받는다는 얘기다.


그런데 만약 신고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형사처벌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A가 얻는 이득은 무엇인가?


이득은 없다.


다만 국가가 A를 대신해서 나를 처벌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옛날의 함무라비 법전에서 보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법전의 주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런 복수는 허용되지 않고 오로지 폭력의 라이센스를 받은 경찰, 검찰, 군인 등 만이 폭력이 허용되고 그 외에 폭력은 허용되지 않는다.




예전에 봉건제 시대에는 왕의 권력이 미치는 범위가 어느정도였을까?


프랑스 같은 경우 기껏해야 파리 인근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영토는?


봉건영주가 지방분권적으로 지배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바로 왕의 힘이 약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때 누구의 힘이 가장 쎘나?


바로 교황, 사제의 힘이 쎘다.


왜냐하면 그들이 곧 법이었으니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그들만이 알고 있었다.


지식을 독점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왕의 힘은 약했다.




그래서 카노사의 굴욕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카노사(카노사르)의 굴욕 혹은 카노사 사건 (독일어: Gang nach Canossar; 이탈리아어: l'umiliazione di Canossar)은 1077년 1월 28일,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가 자신을 파문한 교황 그레고리오 7세를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 북부의 카노사 성으로 가서 관용을 구한 사건을 말한다. 교회의 성직자 임명권인 서임권을 둘러싸고 분쟁하던 신성 로마 제국 황제와 교황의 대립의 정점에 있었던 사건으로 이후 기독교에 세속 권력이 굴복한 대표적인 사건으로 지칭된다. 




그런데 로마카톨릭은 면죄부를 팔고 결국 마르틴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일어난다.


이때부터 신이 두 개가 된다.


이 얘기는 무엇인가?


개신교(신교)와 로마카톨릭(구교)가 믿는 신이 두 개로 분리가 되고 각자 종교의 신념에 의해 무한 투쟁의 상태가 일어난다.




그래서 독일 농민전쟁이 일어나고 위그노 대학살이 일어난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성 바르톨로매오 축일 학살(프랑스어: Massacre de la Saint-Barthélemy, 영어: St. Bartholomew's Day massacre)은 기독교의 역사상 1572년 8월 24일(성 바르톨로메오의 축일) 부터 10월까지 있었던 로마 가톨릭교회 추종자에 의한 개신교 신도들을 학살한 사건을 가리킨다. 샤를 9세 때 어머니인 메디치 가의 카타리나가 아들을 위하여 후견 정치를 하고 있었고, 프로테스탄트들의 지도자인 나바라의 앙리와 샤를 9세의 누이와의 결혼으로 화해의 길이 바야흐로 열리려고 하였다. 그런데 카타리나와 기즈 가의 사람들은 1572년 8월 23-24일 바르톨로메오 축일 밤에 참석한 위그노파들을 살해하는 무서운 계획을 시도하기 위하여 이 기회를 이용하였다. 특히 콜리니도 희생으로 쓰러진 이 “파리의 유혈 결혼식”에 이어, 지방에서 위그노파에 대한 대량 학살이 잇달았다. 희생자의 수는 약 3만명에서 7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 사건은 세계 역사상 가장 무서운 범죄 중 하나로 낙인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때 정치적인 동기가 교회적인 동기를 능가하였다.




이후 유럽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상태로 돌입한다.


즉 유럽은 정글이 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신이 둘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한 해법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해법으로 토마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이라는 책을 통해 살아있는 신이 이 세상을 통치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는 신이 불멸의 신인데 그 불멸의 신은 이 세상에 없다.


왜냐하면 그 불멸의 신이 이렇게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상태로 갔으니 살아있는 신 즉 왕이 절대 권력을 가지고 통치를 해야 이 정글과 같은 유럽에 질서를 회복한다는 것이다.




이후 절대왕정의 시대가 열린다.


그래서 폭력은 왕 즉 국가가 독점적으로 갖게 되었다.


이후 유럽은 전쟁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간다.


중세까지만 해도 유럽내에서의 전투보다는 십자군 전쟁과 같은 해외 원정이 전쟁이었는데 이제는 왕이 전쟁을 주도하게 되어 나폴레옹과 같은 정복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전까지는 근대적인 개념의 국가도 없었는데 이후로는 왕의 권력이 미치는 곳까지가 바로 국가의 영토가 되었다.


왕은 자신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전쟁에 나선다.




그래서 유럽은 절대왕정의 시대에 그렇게 무수히 많은 전쟁을 치르게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문제는 전쟁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봉건시대까지만 해도 용병이라는 개념이 없이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등과 같은 귀족들이 왕이 부르면 와서 전투를 하던 형태에서 죽기살기로 하는 전쟁의 형태로 바뀌고 나서는 왕은 용병을 쓰기 시작한다.




용병은 금화, 은화 등만을 받았다.


그래서 돈이 많이 들었고 총과 대포를 썼다.


그래서 돈이 많이 들었다.


게다가 대포를 막을 수 있는 성벽을 쌓아야 했기 때문에 축성술도 발달했다.


때문에 돈이 많이 들었다.


게다가 전쟁이 하도 잦으니 용병을 상시로 쓸 수 있는 상비군체제로 바뀌었고 그 상비군을 먹여 살려야 하니 관료제(공무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왕은 돈을 마련해야 했는데 돈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는 자가 바로 그 당시 브르주아 였다.


부르주아도 왕과 결탁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귀족의 등쌀 때문에 장사 하기가 힘들었고 왕도 세금을 시도때도 없이 마구 올리니 왕의 권한을 제한해야 하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왕에게 직접적으로 돈을 꿔주기도 했지만 이후로는 국가의 세금를 담보로 국채를 발행하게 되었다.


그것은 영란은행( Bank of England 뱅크 오브 잉글랜드)의 시작이기도 했다.




잉글랜드 왕국은 9년 전쟁 중에 비치 해드 해전에서 프랑스에게 대패한 뒤 강력한 해군 육성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이를 위해 요구되는 기금은 120만 파운드에 달했지만 윌리엄 3세 정부가 끌어들일 수 있는 기금은 태부족이었다.


잉글랜드 정부는 기금 조성을 위해 잉글랜드 은행 지주 회사를 설립하고 주식을 발행하여 주주를 모집하였다. 이로 인해 잉글랜드 은행은 정부 산하 기관이 아닌 특허 기업으로 설립되었지만, 발권 권한을 부여받았다.[15] 은행은 정부에 금전을 제공하고 이에 상응하는 지폐를 발행하였다. 발행된 지폐는 대출업무에 사용되었다. 이를 통해 120만 파운드의 기금이 조성되었고 그 가운데 절반이 해군 육성에 사용되었다. 





즉 영란은행은 왕이 돈을 빌리는 것이 아닌 국채를 발행해 돈을 빌리고 자신은 왕의 허가를 받아 지폐를 발행할 권리를 인정 받은 것이다.

즉 발권력을 개인이 취득한 것이다.

미국의 Fed도 이와 비슷한 형태로 시작되었다.


이제는 국채의 투명성이 핵심이 된다.

국채를 왕이 발행을 해서 사치를 하면 안 되지 않는가?

그래서 국채는 의회의 승인을 받아서 예산안을 보고 예산안이 타당하면 신용을 매겨서 신용도에 따라 국채의 등급이 매겨지는 시스템으로 정착이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의회가 나라의 재정을 의결, 심의하는 것이 이 때부터 시작된 일이다.


그렇다면 왕은 전쟁을 해서 많은 영토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영토의 확보는 용병 등을 많이 쓸 수 있는 돈이 핵심이 되고 돈은 금화와 은화의 형태이다.

그러니 금과 은을 많이 확보하려면 바로 신세계로 가서 금과 은을 많이 가져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의 명을 받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 항해를 시작한 것이 그런 연유이다.


스페인은 식민지 현재의 볼리비아 지역의 포토시에서 거대한 은광을 발견하고 수 십만 톤의 은을 본국으로 들여온다.

그러나 스페인은 전쟁과 사치로 모든 은은 다 쓸려 나가버리고 물가만 치솟는다.

왜냐하면 은이 대거 유입되면 자국의 화폐가치가 올라서 수출기업이 망하고 자국의 화폐가치가 올라가니 해외의 고급 물품이 상대적으로 싸지는 효과가 있으니 수입이 자유로워져 국내의 내수기업이 망한다.

이것은 석유 수출국이 제조업이 없는 이유와 같다.

사우디에 어디 제대로 된 제조업이 있는가?


결국 이러한 은의 대거유입은 국가의 부를 증가 시키는데 아무런 영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서 유럽은 중상주의 정책을 쓴다. 


중상주의(重商主義)는 세계 경제와 무역의 총량이 불변이라는 가정 아래 자본의 공급에 의해 국가가 번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제 이론이다. 역사적으로는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 유럽의 국가들에서 채택되었던 국내 산업의 보호와 해외 식민지 건설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경제 정책들 역시 중상주의 또는 중상주의적 경제체제라 불린다. 중상주의를 경제 체제와는 별개의 것으로 파악하는 일부 학자도 있으나 대부분 중상주의를 초기 자본주의와 동일한 것으로 파악한다. 


한 마디로 중상주이란 난 수출만 하고 돈 만 따먹을 테니 수입은 관세를 최대한 매겨서 수입품이 아예 못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중상주의 그러면 꼭 자유무역과 같다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중국놈들을 보면 알 수 잇는 것이 중상주의다.


그럼 중상주의를 하면 무역이 될까?

안 된다.

서로 수출만 하려고 하니 오히려 대공황이 발생한다.

그래서 콜베르(장바티스트 콜베르(프랑스어: Jean-Baptiste Colbert, 1619년 8월 29일 ~ 1683년 10월 6일)는 프랑스의 중상주의 정치가로 루이 14세 아래에서 1665년부터 1683년까지 재무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는 새로운 자국산업 보호 조치를 취한다.


그것이 바로 오늘 얘기할 보조금이다.

일단 자국이 외국에 팔아 먹을 수 있는 상품은 수출을 한다.

대신에 외국이 경쟁이 있는 상품은 수입을 하되 관세를 매기고 자국의 상품에 보조금을 줘서 자국 상품의 질을 높인다.

그래서 국내의 산업을 키워 결국 해외에서 들어오는 상품을 대체하는 것이다.

그러면 수출해서 돈 들어오고 수입할 물건이 없으니 돈이 안 빠져 나가고 말이다.

그럼 국력신장으로 이어지고 이 국부를 가지고 전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땅을 빼앗아 더 부강한 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조금의 목적은 어떤 것인가?

바로 자국의 산업을 키워서 해외에서 들어오는 경쟁력 있는 제품의 수입대체를 하자는 것 더 나아가 수출을 통해 외화벌이 하는 것이 목적이 되겠다. 


그런데 현재의 쌀 직불금은 지금까지 우루과이 라운드 즉 WTO가 1995년 시작되고 주던 보조금의 형태로 시작되었는데 수입대체와 수출까지 가지 못했다.

그렇게 보조금으로 성공한 것은 우리나라 제조업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직불금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농민단체라는 이익집단이 정치권에 압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 할수록 이익집단이 입김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것은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는 모든 집단들이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정치권이 이익집단에 휘둘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쌀직불금을 줘서 쌀 값이 올라가면 피해를 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국민이다.

그러나 국민은 죽고사는 문제는 아니다.

단지 쌀값이 올라갔을 뿐이다.

그러나 농민의 입장에서 보면 죽고사는 문제가 된다.


요즘 직불금은 쌀만 주니 오히려 직불금이 경쟁력없는 쌀농사를 더 짓게 만들고 있다.

이유는 예를들어 특용작물이나 해외 수출 작물을 농사를 지었다가 흉년이 들거나 병충해로 작물이 말라 죽어버리면 온전히 손해는 농민이 본다.

그런데 만약 쌀농사를 짓다가 손해를 보면 나라에서 보존하는 형태다.

그래서 오히려 직불금의 가격이 올라갈수록 더 많은 쌀농사가 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 두 번째 기사를 보자 실직자 귀농에 농촌취업자가 늘어난다는 얘기다.

농촌 취업자는 현재 자영업자의 몰락과 무관치 않다.

게다가 실업률이 올라가는 현재의 통계적 상황을 정부는 싫어한다.

결국 직불금을 올려서 농가의 소득이 향상되고 실업자는 시골로 가서 농사를 지으면 먹고는 사는 구조가 이루어진다.


결국 정부와 농부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다. 


JD 부자연구소
소장 조던
http://cafe.daum.net/jordan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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