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기업을 은퇴 했는데 가난할까?


왜 대기업을 은퇴 했는데 가난할까?

노후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왜 노후준비가 안 되었을까?

착각을 하기 때문이다.

무슨 착각인가?

은퇴준비가 되어있다는 착각이다.

은퇴를 하면 당장 돈 나올 구멍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은퇴준비가 되어 있다는 착각이다.

예를 들면 나가면 자영업을 해도 잘 해.

대기업에서 이렇게 관리를 잘 했는데 떡볶이 집이라도 하면 못할까?

커피숖 프랜차이즈쯤이야 뭐 대충 차려도 사람 많이 오는 것 아니야?

그럼 이들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요즘 의대를 가려고 강남에서는 이과로 80%가 넘는 학생이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왜 그런가 봤더니 의대 정원이 늘어서란다.

의대정원은 얼마전까지 의학전문대학원 체제에 있다가 의대로 옮겨왔다.

이유는 대학 졸업하고 가니 말을 안 듣는다는 것도 있고 하이브리드에 대한 거부감일 수도 있다.

한때는 서울대 물리학과, 컴퓨터공학과 아니 연고대의 공대보다도 밀리던 의대도 전국의대 정원을 죄다 채우고 서울대 공대를 가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왜 의대를 가려할까?

의대와 공대를 보자.

의대와 공대는 기술을 배우는 학문이다.

그런데 그 기술이 좀 다르다.

공대에서 배우는 기술은 집단 안에서만 발현되는 기술이다.

기업, 연구소, 학계 등 기술을 배우기는 하지만 발명가가 아닌 다음에야 그 기술을 써먹을 수 없다.

그러니 기업을 나오면 아무 쓸모없는 것이 그 기술이다.

나와서 개인적으로 반도체 만들 수 없지 않나?

그러니 그 기술은 명퇴 당하면 어디 쓸데가 없다.

의대는 어떠한가?

의대는 대학병원을 나오더라도 자영업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리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격증이 있다.

만약 자기 밥그릇이라도 건드릴라치면 이익집단이 가만 놔두지 않는다.

자격증에 도전하는 자 법적으로 걸어서 콩밥이라도 먹인다.

그러나 그 기술이라는 것도 한국을 벗어나면 쓸모 없어진다.

물론 시험을 봐서 합격을 하면 되겟지만 한국에서 의사경력을 인정해주는 나라는 거의 없다.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의사라고 여기서 의사할 수 없다.

그래서 북한에서 넘어온 의사 출신 탈북자는 한국에서 자격증이 인정되지 않아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이익집단의 풀(Pool)을 좁혀야 하기 때문이다.

많아지면 돈을 못 버니까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한번 의사면 죽을 때까지 의사다.

이것이 법률적으로 특정한 자에게만 귀속하며 타인에게는 양도되지 않는 속성인 일신전속의 권리를 가진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기술이 있다.

용접, 미용과 같은 기술이다.

이러한 기술은 의사와 같이 일신전속되는 기술이다.

그러나 이 기술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이다.

왜냐하면 자격증이 있기는 하지만 잘 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지 이 기술을 쓰다가 사람이 죽거나 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외에서도 이익집단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기술을 가진 사람이 없어서 이민을 받을 때 이런 기술이 있다면 1순위로 들어갈 수 있다.

호주로 이민을 가고 싶은가?

용접이나 미용을 배워라.

이 기술로 들어온 사람 의무적으로 재직해야 하는 시간만 채우면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예전에 아메리칸 드림 꿈꿀 때 일부러 이런 기술 배워서 미국으로 이민 가지 않았나?

평생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이다.

그렇다면 대기업을 다니는 사람들은 이러한 기술의 차이를 모른다.

자신이 화학분야 최고의 기술을 가지 있다고 해도 공장에 있을 때 얘기지 나와서는 자신이 공장을 짓지 않는 한 아무 쓸데 없는 기술이다.

게다가 그 기술이란 것도 한 분야에 정통한 것 아닌가?

관리쪽도 마찬가지다.

회계, 총무, 영업 등 자영업을 할 때 응용은 가능하겟지만 이런 기술이 자신을 먹여 살려줄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물론 그럴 수도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영업을 하면 잘 할거란 착각을 하고 대기업에 안주하면서 '나가면 잘 될 거야' '나가면 밥은 먹고 살거야.' 라는 근거없는 자신감만 충만해 있다.

그러다 은퇴를 한다.

은퇴를 하면 문제가 생긴다.

아무리 이력서를 넣어도 오라는 데가 없다.

대기업을 다니다 퇴직을 했는데 심지어 임원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갈데가 없다는 것을 그제서야 느낀다.

자신의 기술이 일신전속의 기술이 아닌 집단 속에서나 발현되는 기술임을 그제서야 깨닫는다.

기업이라는 조직속에 톱니바퀴처럼 맞물렸을 때나 쓸모있고 지금은 아무 쓸모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좌절한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률 1위 , 노인 자살률 1위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5/22/0200000000AKR20150522006800081.HTML

왜 이런 지표가 나왔는가?

은퇴준비를 못해서 돈이 없다.

그런데 돈이 없다고 자살까지 하는가?

그렇다.

자살까지 한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지 소비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 소비사회란 무엇인가?

프라하의 학생, 1930년작 영화이다.

장 보드리야르는 이 영화로 이미지 소비사회를 설명한다.

이 영화에서 학생은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신분에 괴로워 한다.

어느날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만나나 그녀는 부자이다.

그런데 그것을 본 악마가 나타나 악마는 학생에게 산더미만큼의 돈을 줄 것이다.

그러니 거울 속의 네 모습을 나에게 넘겨라.

그러마라고 하자 악마는 거울에 비친 학생의 모습을 말아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 후 학생은 어디를 가나 악마가 준 돈으로 성공한다.

그러나 악마가 풀어놓은 분신으로 인해 혼란을 겪는다.

자신은 그대로 있지만 그 분신이 자신의 행세를 한다.

악마가 자신과 똑같은 분신을 만들어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 시키고 급기야 사람까지 죽인다.

학생은 자신의 방을 따라 들어온 분신이 거울에 비추는 순간 총을 쏴서 그 분신을 죽인다.

그러나 그 분신은 자신이었고 학생도 죽었다.

장보드리야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신은 곧 자신이다.

학생은 공부를 한다.

왜 공부를 할까?

명문대라는 대학에 들어가려고 공부를 한다.

명문대라는 대학은 그 자신이 아니다.

그러나 명문대라는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자신은 그 분신이 된다.

"나 이대나온 여자야" 라는 말이 바로 그것을 설명한다.

이 외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이미지 소비를 위해 분신을 내세운다.

돈이 많다는 것은 명품백을 들고 다님으로써 남에게 과시한다.

남자는 외제차를 끌고 다님으로써 남에게 자신의 분신을 소비한다.

대기업에 다니면 무엇을할까?

골프도 치고 친구들도 만나면서 자신의 분신을 소비한다.

골프 칠 정도로 돈을 많이 번다.

친구들에게 술값을 내줄 정도로 돈을 많이 번다.

이렇게 자신의 이미지를 남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분신은 허울뿐이다.

억대 연봉을 받아도 남는 돈이 거의 없는 상태다.

아이에게 왜 사교육을 시키는가?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명문대를 들어가야 자신의 위신이 서지 않는가?

이러한 것도 이미지 소비다.

그러나 아이의 교육은 부모가 직접 시키는 것이지 사교육이 시키는 것이 아니다.

정말 아이를 생각한다면 주말에 골프를 칠 시간에 집에서 아이와 같이 인강을 듣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그러면서 가장 소중한 돈을 이미지 소비에 전부 써 버린다.

그리고 대기업에 다니면서 계속된 분신을 위한 소비를 한다.

그리고 그 분신이 영원할거라 생각한다.

그러다 대기업을 명퇴하거나 은퇴를 하면 알게 된다.

자신은 허울속에 살았고 나와서는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실에 좌절한다.

은퇴 후 현실을 부정하며 이미지 소비를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자영업을 하는 것이다.

크게 간지나는 커피숖을 차린다.

은퇴했을 때 퇴직금과 자신이 평생 모은 돈을 전부 털어 넣어 커피숖을 차린다.

그리고 한방에 말아 드신다.

자신은 대기업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데 은퇴하면 창업은 해야지 하며 프랜차이즈 커피숖을 차린다.

그러나 주변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커피숖이 6개나 생긴 것은 커피숖을 차리고 난 다음에야 자각한다.

디플레이션 시대에 준비없이 자영업을 하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디플레이션은 공급이 넘쳐서 생긴 것인데 자영업을 한다는 것은 공급을 더 늘리는 것 아닌가?

자영업을 하지 않는다면 다음으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저축을 하고 노인택배, 택시운전, 경비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현명한 선택이다.

이미지 소비를 하지 않고 노동으로 돈을 버니 말이다.

그러나 은퇴후의 노동은 힘이 든다.

저축도 마찬가지로 힘들다.

왜냐하면 디플레이션 시대에 수요가 없는 것인데 수요가 없는 상황에서 저축을 통해 더 공급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축에 이자가 거의 붙지 않는다.

그래서 더 힘들다.

만약 은퇴 후 사업에 실패하거나 은퇴를 했는데 돈이 없는 빈곤층 노인이 된다면 어떻게 되는가?

자살을 선택한다.

자신의 분신을 죽이듯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자신의 분신이 자신인데 자신의 분신이 대기업을 다닐 때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아니라 반지하의 방에서 쓸쓸히 폐지나 모으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은퇴를 했는데도 돈이 없으면 차라리 동남아를 가라.

한달에 100만 원이면 생활비로 충분하다.

노후 파산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http://cafe.daum.net/jordan777/Bm2o/422

현대 사회는 이미지 소비의 사회다.

이미지는 분신이고 분신이 죽으면 자신도 죽는다.

그러나 이미지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다.

이미지가 생산을 한다면 모를까 소비는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된다.

이미지가 생산을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연예인이다.

연예인은 화장을 함으로써 자신을 상품으로 만들어 판다.

그러나 일반인은 화장을 함으로써 자신을 가린다.

일반인이 하는 활동은 생산활동이 아닌 소비활동이고 연예인은 화장을 함으로써 생산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

그리고 그 돈으로 쌓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쓸데없이 돈 쓰지 말고 그 돈으로 우량주식을 사고 토지를 사자.

그러지 않으면 분신을 위한 소비만 하다가 은퇴를 맞게 되고 은퇴 후 거울에 비친 화장을 지운 자신의 맨 얼굴을 대하는 순간 자살하게 되는 것이다.

항상 말하지만 재산은 증식하는 것이다.

증식할 수 있는 재산은 주택이나 상가가 아니다.

주택과 상가는 소비하는 자산이다.

그것이 강남의 주택과 상가라면 생산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재건축이 가능하니까

그러나 대부분의 주택은 재건축이 가능하지 않다.

그러니 소비재이다.

소비재는 감가상각된다.

지금 월세가 나오고 있어도 언젠가는 그 자산이 쓸모없어져 빚이 된다.

반면에 토지와 주식은 쌓이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레버리지를 이용하지 않고 토지와 주식을 살 수 있고 모을 수 있다.

왜냐하면 단위가 작기 때문이다.

그리고 100배 이상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것을 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상식선에서 사면 된다.

이미지 소비를 하지 않고 은퇴할 때까지 토지와 주식을 모으면 은퇴준비는 끝이다.

은퇴 후 내가 맞닥 뜨릴 세상은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분신을 지운 세상이다.

그 세상에 맞서려면 돈이 제일 중요하다.

JD 부자연구소
소장 조던
http://cafe.daum.net/jordan777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창의력과 암기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