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빚은 혼란…정신적 화해 못하면 비극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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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1905~1997)이 말한 것처럼 인간은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존재의 의미’를 찾을 때 살맛이 난다.
자신의 삶을 지속하는 가치란 무엇인가?
내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 될 것이다.
그것을 통해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것이 존재의 의미다.
즉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없다면 그것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없다는 말과 같다.
그 얘기는 내가 살아 숨쉰다는 느낌이 없다는 얘기와도 같다.
살아 있되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없는 것 즉 좀비와도 같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연애를 했을 때
흥분되는 감정이 있다면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실연을 했을 때
모든 것을 잃었음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살아있으면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면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삶을 가치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찾고 찾았다면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을 통해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어떤 이는 남을 도와줄 때 그런 느낌이 들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배움을 통해 그런 느낌이 들 수도 있고 어떤 이는 가족과의 사랑을 통해 그런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그것은 자신이 찾는 것이다.
가장 중요다하고 생각하는 것을 통해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말이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 가시적인 공간과 비가시적인 시간을 차지하면서 이 조그만 육체를 충족하고 정신을 만족시키다가 결국에는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 생존하는 것인가?
이것이 인생의 의미는 아니리라.
우리가 스스로를 존경하고 그럼으로써 타인도 그렇게 여기는 마음은, 우리 인생을 작동시키기 위한 에너지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가 개인으로서 개성을 지닌, 가치 있는 존재임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강물에 떠다니는 부초와 같다.
그냥 하루를 살아 내는 것이다.
아이아스는 그가 당연히 받아야 하는 명예가 실추됐다고 믿었다. 아킬레우스의 무구가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의 결정으로 그 야비한 오디세우스에게 돌아간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아이아스는 어떤 것을 인생의 의미로 살았는가?
그는 자신의 가치를 남들의 평가와 존경에서 찾았다.
그런데 명예가 실추된 아이아스는 어떤 선택을 하는가?
아이아스는 불운에서 벗어날 가망이 없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이 수치라고 생각한다. 그는 “고귀한 사람이라면 명예롭게 살거나, 명예롭게 죽어야 한다”(479~480행)고 말한다.
명예가 실추된 유명인이 자살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삶의 의미인데 삶의 의미가 땅에 떨어졌을 때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극단적인 자살이다.
그러나 인생의 의미를 남에게서 찾을 필요가 없다.
남의 평가와 존경에 기대어 자신을 찾는 것은 어리석다.
그들이 나의 소중함을 알아줄 수 없을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삶의 의미는 남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찾는 것이다.
그러면 인생에 있어서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JD 부자연구소
소장 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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