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소비는 줄이고 가치의 소비를 늘리자.
주식에 왜 투자해야 하는가?
현재의 자본주의는 주주자본주의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주자본주의에서 최고의 유한계급은 누구인가?
최고의 유한계급은 기업가이다.
유한계급에대한 정의를 먼저 내리고 주주자본중의에 대해 알아보자.
유한계급은 과시소비로 유명한 베블런이란 학자가 유한계급론이란 책을 쓰면서 언급했다.
유한계급은 현재 나타는 것이 아니고 원시시대부터 존재했던 개념이다.
유한 계급(有閑階級) 이란 사회의 생산적 활동에는 관계하지 않고, 소유한 자산으로 비생산적 소비 활동만 하는 계층. 유한층을 말한다. 즉 놀고 먹는 한량과 같은 존재다.
원시시대때 나타난 유한계급이란 어떤 것인가?
사냥꾼이다.
왜 사냥꾼인가?
원시시대는 수렵과 채집이 있었다.
채집은 여성이 주로 담당했고 수렵은 남성이 담당했다.
채집은 예측 가능한 것이고 수렵은 예측 불가능한 것이다.
예측 가능한 과일, 농사 등은 부동체라고 생각했고 예측 불가능한 폭풍, 사나운 동물, 홍수 등은 활동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부동체보다 활동체가 예측가능성이 떨어지기에 용맹성과 지략이 뛰어나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더 명예로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부동체를 다루는 채집은 여성이며 하찮은 일이라 생각했고 활동체를 다루는 사냥꾼은 남성이며 명예로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활동체를 다루는 용맹스러운 남성이 유한계급이 되었다.
남성 사냥꾼은 노동을 면제 받고 유한계급으로 살았고 남녀간 차별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는 풍토가 원시시대부터 있었다.
그리고 사냥꾼은 농사를 짓는 시대로 넘어오면서 잉여생산물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니 전쟁을 통해 노예와 재화를 강탈하는 약탈적 본능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그대로 중세시대까지 넘어오게 된다.
농사를 짓는 농노는 쉽고 하찮은 일을 하는 존재로 비천한 신분이 되었다.
그리고 전쟁을 담당하는 기사인 활동체를 다루는 봉건영주는 명예로운 신분이 되었다.
그 봉건영주가 유한계급이 되었다.
유한계급에 가장 중요한 특성은 시간이 주체할 수 없이 많다는 것이다.
봉건영주이며 기사인 유한계급은 원시시대의 사냥꾼이 하던 약탈도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부족한 재물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재물(노예, 귀금속, 토지 등)을 빼앗아 오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군 전쟁의 이면은 성지를 되찾기 위한 전쟁이 아닌 전쟁으로 더 많은 노예와 귀금속을 차지하기 위한 약탈 전쟁인 것이다.
이러다 안정적인 사유재산 즉 농토를 통해 생산활동이 이루어지는시기로 접어들게 된다.
이미 충분한 노예와 토지를 있는데 더 많은 약탈은 필요없어진다.
그래서 약탈을 통해 명예로운 일을 확인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럼 이들은 무엇으로 명예를 확인하는가?
내가 더 많은 부를 축적했다는 '금력과시경쟁시대'로 접어든다.
금력과시경쟁에 있어서 두 가지가 나타나는데 '과시 소비'와 '과시 여가'이다.
과시소비를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 연회이다.
연회(무도회)를 열어야 자신의 부를 과시할 것 아닌가?
그래서 연회는 자신의 부가 얼마나 더 많은지에 대해 촛점을 맞춘다.
연회는 열시간 이상 지속된다.
시간이 길수록 더 많은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은 맛보다는 희귀하고 진귀한 것이 더 대접받는데 이것은 구하기 힘드니 값이 비싸지는 것이고 비싼 것은 자신의 부를 과시할 수 있는 수단이다.
예를 들면 새의 혀로 만든 요리, 철갑상어 등등 이다.
그리고 연회에서는 예의범절이 중요해진다.
가끔 영화를 보면 수 많은 포크와 나이프, 스푼이 길게 세팅되어 늘어져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것은 에티켓이란 이름으로 엄청난 시간을 들여서 배워야 한다.
예를 들면 샐러드 써는 나이프 스테이크 써는 나이프, 스프를 먹는 스푼, 디저트를 먹는 스푼이 따로 있었다.
여기서 이들이 노린 것은 무엇인가?
나는 돈도 많지만 시간도 무지 많아서 이런 예의범절을 다 배울 시간이 있을 뿐더러 식사를 이렇게 길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소비라는 것이다.
아무 쓸데 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것으로는 사교댄스, 수백가지의 라벨을 외워야 하는 와인 등등 이다.
여기서 여성도 남성의 과시소비를 보여주는 대리인으로서의 역할도 한다.
여성의 미모 빼고는 노동능력을 상실한 여성을 선호하는데 마르고 하얀 피부에 명품의상을 걸치고 그녀가 하는 일은 몇 시간씩 식사를 하며 의상과 악세사리를 고르고 쇼핑하고 집안 분위기를 바꾸는 여성이다.
왜 이런 여성을 유한계급인 귀족이 고를까?
자신의 부인인 여성도 일을 전혀 안 하며 화려한 옷을 입고 값비싼 귀금속을 걸치고 음악감상만을 하며 살아도 될만큼 나는 부자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과시소비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그럼 현재는 어떤 이가 유한계급일까?
지금의 유한계급은 돈이 많은 기업인이다.
기업인의 부인은 미모만 갖췄지 집안 일은 전혀 관심도 없고 할줄도 모르며 쇼핑이나 하고 몸매관리나 하면서 엄청난 소비를 통해 남편의 부를 과시하는 그런 역할을 한다.
요즘 기업인은 주로 여성 연예인에게 그런 역할을 맡기는 것 같다.
현재 이러한 여성도 남편을 따라 사교모임에 나가고 예의범절과 교양, 값비싼 명품의상과 백을 들고 남편의 재력과 교양을 대신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여자가 문제일까? 아니면 그런 소비를 부추기는 남자가 문제일까?
남자가 문제이지만 사실 이들은 큰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과소비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돈이 1조원이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시계를 2억짜리를 차고 3억짜리 마이바흐를 몰고 다니면 그는 과소비를 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가 되긴해도 과소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한계급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을 한번 해보자.
예전에 원시시대나 중세시대에는 그들의 복장만 보더라도 그들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가 보였지 않았는가?
그런데 지금은 옷 입은 것으로만 보일 수 있는가? 에 대한 문제가 있다.
알 수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열 받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2억짜리 시계를 차고 3억짜리 차를 몰고 다니며 내가 이만큼 부자야 라고 외치는 중인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소비는 과시적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는 되어도 과소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시적 소비의 특성은 무엇인가?
실용성은 전혀 없고 예전에 과시적 소비의 요리처럼 실용성이 있으면 안 된다.
구하기 어려운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값비싼 것이어야 한다.
구하기 어려운 것은 한정판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그리고 값비싼 것은 실용적인 10만 원짜리 백과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5000만 원짜리 백을 생각해보면 된다.
그들은 값이 비쌈으로서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것이어야 더 과시적소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가 봐도 낭비스러우면 낭비스러울수록 좋다.
그런데 문제는 과시적 소비가 아닌 그를 따르는 중산층에서의 흉내내기(emulation) 소비를 통한 과소비가 문제가 된다.
emulation란 말은 흉내내기란 말도 되고 경쟁한다는 말도 된다.
사실 emulation이란 말은 에뮬레이션이라고 해서 게임을 돌리는 프로그램을 뜻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여기서 emulation은 흉내내기 소비로 쓰인다.
그럼 흉내내기 소비를 통한 과소비가 왜 문제가 되는가?
명품백은 누가 많이 사는가?
과시적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를 하는 전체인구의 2%에 해당하는 유한계급이 많이 산다.
그런데 그 밑에 돈은 좀 버는 중산층이 더 많이 산다는 것이다.
그들은 왜 그런 명품을 사는가?
그들은 상류층 여성을 따라잡고 싶어하는 중산층 여성의 허영심 때문일까?
그런 부분도 있지만 사실은 그것보다 더 큰 부분이 있다.
그럼 그 남편은 어떤 사람들일까?
5000만 원짜리 백을 사주는 남편은 말이다.
자신이 유한계급(몇 조원대의 기업군을 거느린 재벌2세)도 아니면서 말이다.
남편은 과시적 여가를 즐길 여유가 없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귀족의 지근거리에서 집사를 하면서 과시적소비와 과시적 여가를 함께 했다면 지금 현대 사회에서는 과시적 소비는 가능한데 과시적 여가는 불가능한 전문직이 그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의사, 변호사 등의 전문직 말이다.
그럼 이런 전문직은 돈은 많이 벌지만 여가를 즐길수 없고 과시적 소비를 할 수는 있다.
그러니 중세의 귀족처럼 자신의 부인에게 가사일도 시키지 않고 과시적 소비를 시킴으로서 자신은 이만큼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라는 것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들이 중산층 중에 최상위 중산층이다.
중산층도 여러가지 아닌가?
그 중산층이 전체 인구의 30%는 될 것이고 이 중산층이 이런 흉내내기 소비에 동참한다.
그 밑은 어떨까?
돈도 못 벌면서 명품을 사는 사람이 있을테고 1년을 모아야 그 백 하나 사는 사람도 그런 소비에 집착한다.
그러므로서 중산층은 유한계급(슈퍼리치)의 소비를 따라잡으려는 흉내내기 소비가 시작된다.
이 중산층은 그럼 흉내내기 소비를 통해서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가?
남들과 차별화이다.
인간은 똑같은 것이다.
내가 유한계급(슈퍼리치)는 아니지만 나도 저렇게 소비할 수 있고 그렇게 되고 싶다는 열망을 보여주는 소비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남자는 차로 여자는 명품백으로 드러나고 그들은 사는 동네로 사람을 차별하기도 한다.
강남도 여러 강남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압구정은 신사동을 무시하고 신사동은 대치동을 무시하고 대치동은 개포동을 무시하고 개포동은 역삼동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그럼 강남은 비강남을 무시하고 서울은 수도권을 무시하고 수도권은 지방을 무시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럼 이런 것은 무엇이 안 좋은가?
사회의 양극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 소비를 하는 자신이 제일 문제다.
한번 이런 흉내내기 소비에 빠져버리면 모든 노동의 명품백을 사는데 전부 소비한다.
무슨 말인가?
모든 돈을 벌어서 쓸데 없는 물건을 사는데 전부 써버리고 정작 자신은 결국 껍데기만 남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돈을 가지고 좀 더 자신의 역량을 발전시키는 일에 썼다면 더 좋았을 것을 쓸데없는 소비로 인생을 낭비한다는 뜻도 된다.
이러한 흉내내기 소비에 빠져들면 다른사람과의 경쟁에 신경 쓰느라 노후도 신경을 쓸 수 없다.
이런 흉내내기 소비의 형태는 어떤 것으로 나타날까?
사는 곳(자신의 아파트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몇 백의 월세를 내고서라도 그곳에 살아야 한다.),
명품백,
자동차,
대학 진학(자식도 그런 남에게 보여주는 소비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것들이 이런 흉내내기 소비의 연장선상이다.
그들은 1000개의 계층이 있는데 595번째에서 594번째의 계층으로 가기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그곳에 있는 그들은 모른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지금 내가 사는 명품백과 고급차가 얼마나 헛지랄인지 말이다.
그것을 깨는 예가 있다.
'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를 쓴 닐 부어맨 얘기다.
그는 브랜드에 중독 되었다
오늘 만원버스에서 우연히 정말 예쁜 여자를 보았다
내게 줄리엣이 없었다면 과감하게 한 번 작업을 벌였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고 맙소사 이게 웬 끔찍한 일! 푸마를 신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 푸마라는 브랜드는 우아하고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찾는 브랜드이지만
이 운동화를 신은 사람들은 절대 모험을 할 만한 용기도 없고 그럴만한 재주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이던 여자의 매력은 온데간데없이 다 사라져버렸다
이랬던 그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브랜드 제품을 광장에 모아놓고 불태운다.
그리고 브랜드 중독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리고 어떤 것을 느꼈는가?
과도한 쇼핑으로 빚이 늘어나는 반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시간을 가질 수 없다
우리는 더 단순한 형태의 삶으로 하향 이동해야 한다
소비를 줄이면 자연스레 노동에 투여되는 시간도 감소할 것이다
그렇게 획득된 시간적 여유를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활용할 수 있다
상품 소비가 우리를 안락하게 만들어 주는 것으로 착각할지 모르겠으나 소비는 우리의 삶을 복잡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러한 흉내내기 소비로부터의 탈출을 해야 한다.
과시적소비를 하는 사람은 문제가 없다.
그것을 흉내내는 사람이 문제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글을 읽어도 절대 흉내내기 소비의 리그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만약 빠져나온다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자신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소비를 해야 한다.
그러면 돈이 없어도 부자인 사람이 되고 이러하지 않으면 부자도 가난한 사람이 된다.
예를 들면 인문학을 공부하며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일 말이다.
여행을 가는 것도 좋다.
다만 일주일에 7개국을 도는 여행은 절대 아니다.
몇 달에 걸쳐 휴식을 취하면서 한 곳에 머물며 독서나 자신을 되돌아 보는 것은 좋다.
직장을 다 때려치우고 세계일주를 해도 좋다.
친구들이나 직장동료들과의 술모임은 피하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도 좋다.
아이가 공부를 하고 싶다면 과외를 붙이고 학원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TV를 없애고 아이와 함께 공부를 하는 것도 좋다.
자신이 아주 좋아하는 일을 찾아 조금씩 배워보는 것도 좋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보고 싶다며 글을 쓰자.
외국어를 배우고 싶다면 외국어를 배우고 공부를 해보고 싶다면 공부를 하자.
내 친구중에 좋은 대학나와 좋은 직장을 다녔던 친구들이 꽤 있다.
그런데 그 친구들 현재 명퇴 당하고 노는데 그들의 생할이 별로 좋지 않다.
회사 다닐 때 가족들과 해외여행 다니고 골프치고 좋은 차 몰고 다녔다.
만나면 술집에서 백만 원이 넘도록 술도 퍼마셨다.
그 많던 연봉 전부 그런 쓸데 없는 곳에 다 때려 넣었다.
이런 과소비 구조로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
고비용 구조이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항상 돈이 모자른다.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한계급은 누구인가?
기업인이다.
왜 유한계급인가?
그들은 투자를 통해 기업을 세우고 공장을 지었고 많은 사람들을 고용해 고용촉진을 하지 않는가?
맞다.
그러나 시스템이 돌아가기 시작하고 창업주 아래로 2대, 3대 내려오면 그들은 유한계급이 된다.
그렇다면 돈 버는 얘기를 해보자.
우리는 그 유한계급이 노리는 시장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
유한계급은 원시시대 때부터 내려온 그들의 DNA를 간직하고 있다.
약탈본능이다.
약탈본능은 언제 발현되는가?
기업인이 기업을 세웠다.
그리고 물건을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소비자가 산다.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서는 더 큰 공장을 세우고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해서 더 많은 물건을 생산해야 한다.
그럼 언젠가는 너무 공급이 늘어나므로 소비자가 사지 못하는 때가 온다.
그렇다면 기업가들은 어떤 일을 하는가?
그러려면 공장의 인부들을 잘라야 하고 물건의 생산을 감소 시켜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 기업이 생산하는 물품을 줄이자 다른 기업에서 이 때다 하고 더 많은 물건을 생산해 낸다.
그렇다면 이 기업은 저가의 출혈경쟁을 눈물을 머금고 해야 한다.
그럼 물건을 줄이기 이전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독과점 형태로 시장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독과점 형태는 기술력이건 자본이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경쟁자를 물리치고 시장을 독점하는 것이다.
기업의 인수합병도 좋고 치킨게임도 좋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기업을 죽이거나 인수합병 해서 내 기업이 물건을 줄이더라도 이윤이 나도록 만들어야 한다.
물건을 꼭 줄이지 않아도 된다.
다른 방법은 가격을 올리는 방법이 있다.
하나의 단가당 가격이 올라가면 가격이 올라간다.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신상품을 광고를 통해 내보내서 사람들로 하여금 사도록 만든다.
소위 말하는 브랜드 제품으로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일이다.
여기에 빠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흉내내기 소비에 빠진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그런 허영을 선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써 독점으로 인한 이득을 모두 취할 수 있다.
이런 기업을 골라 투자하자.
물론 흉내내기 소비에 빠지지 않고 그 흉내내기 소비를 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파악해서 그 곳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기업을 볼 때 독점인지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는지 앞으로 시장이 늘어날 것인지에 대한 파악을 당연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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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그런 기업을 고르는데 있어서 유리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기업은 그런면에서 별로다.
왜냐하면 기업이 돈을 번다.
그리고 그 기업을 통해 돈을 버는 이는 재벌이라 불리우는 유한계급이다.
그러니 기업의 주식을 사서 배당이나 주가의 상승을 통해 기업주와 이익을 공유하면 부자가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부분 기업주는 그런 생각이 없다.
대기업의 대주주는 외국인이지 기업주가 아니다.
조그마한 지분으로 기업을 지배한다.
그럼 어떤 일이 안 좋은가?
배당을 많이 안 준다.
무슨 얘기인가?
주주의 이득은 주식의 상승도 있지만 배당도 많아야 한다.
그러나 기업주는 현재 자신의 지분이 적기 때문에 배당을 많이 해봐야 자신에게 돌아오는 배당금이 얼마 안 된다.
그러니 배당을 아예 안 한다.
그리고 그가 기업을 지배하며 접대비(한끼에 1000만 원짜리 점심식사도 있다.)를 쓰고 몇 억원씩 하는 법인 차를 개인적으로 굴리고 자신의 기업 지배 골프장과 휴양지에서 휴식을 즐기면 되는데 뭐하러 배당을 많이 하나?
그리고 번 돈을 전부 사내 유보금으로 쌓아 놓는다.
그래서 주주자본주의가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요즘은 바뀌고 있기는 하지만 이왕이면 주주자본주의가 잘 된 해외에 주식 투자를 하는 것이 더 낫다.
결론이다.
욕망의 소비에 빠져들지 말자.
소비자의 욕망을 잘 이용하는 독과점 기업에 투자하자.
번 돈을 가지고 내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가치의 소비를 늘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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