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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목적은 나

현재의 목적은 나


종교, 정치, 돈 등 우리가 숭배하는 모든 것들은 현재를 수단으로 놓고 미래를 목적으로 놓는다.

무슨 얘기인가?


예를 들어보자.

스님은 벽만을 보고 수행을 한다.

왜 이 스님은 벽을 보고 수행을 하는가?

불교에서는 윤회를 믿는다.

윤회는 돌고 도는 인생이다.

이번 생에는 운좋게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다음 생에는 동물로 태어날 수도 있다.

그런데 불교의 가르침 중 가장 큰 가르침은 성불하는 것이다.

즉 스스로 부처가 되는 것이다.

부처가 되면 무엇이 좋은가?

윤회를 하지 않는다.

즉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처가 되면 그것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왜 수행을 하나?

이번 생에서는 운좋게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다음 생에 개미로 태어나면 나는 부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 생의 모든 것을 바쳐가며 부처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도 벽을 보고 말이다.

모든 욕심을 끊고 사리사욕을 끊고 오직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을 한다.

그렇다면 이번 생은 무엇이 되나?

수단이 된다.

무엇에 수단인가?

죽은 다음에 부처가 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니 목적은 무엇인가?

부처다.

그러나 부처는 죽은다음에 그것을 알 수 있고 이룰 수 있다.

그러니 이번 생은 그냥 열심히 수행하다 가는 그런 고난의 길이 된다.


종교가 강조하는 것은 이렇게 현재를 수단으로 삼는다.


종교가 예전에 평민들을 지배했던 논리가 무엇인가?

사후세계의 강조다.

왜 사후세계를 강조하는가?

너희들이 이 세상에 평민으로 태어났지만 죽은 다음에는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참고 살아라.

그러니 이것 또한 현실을 수단을 삼고 죽은 다음이 목적이 된다.

그렇다면 이런 논리를 누가 만들어내나?

이런 논리는 종교인들이 만들어낸다.

그래야 사후세계를 위해 열심히 헌금을 하고 시주를 할 것 아닌가?


종교 대신 자본을 집어 넣어보자.

자본주의는 목적이 자본인 사회다.

자본이 목적이니 사람은 수단에 불과하다.

그리고 현실 또한 수단이고 나중이 목적이 된다.

사람들은 10억을 모으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10억을 모으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한다.

10억이 목표인데 놀 시간이 어디있나?

그렇다면 이런 10억 만들기 목표는 누가 만들어내나?

자본가들이 만들어 낸다.

자본가들이 이러한 논리를 왜 만들어냈을까?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고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왔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거대한 은광을 발견했고 원주민들을 이용하여 은을 채굴하도록 시켰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왜 일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정복자들은 일 시키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유인은 돈을 주는 것인데 돈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 즐기고 잘 수 있는데 그깟 돈을 벌기 위해 왜 일을 죽어라 해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득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을 캐내 스페인으로 가져가야 하는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을 강압적으로 은을 채굴하는데 동원했다.

그러다 원주민들이 돈의 가치를 알 무렵 정복자들은 원주민에게 10시간을 일하면 돈을 5 주었는데 이제 10시간을 일하면 10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이 밤낮으로 10시간을 일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원주민들은 일하는 시간을 5시간으로 줄이고 5의 돈을 받아갔다. 

원주민들은 돈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었다.

자본가들은 현재를 저당잡아 열심히 일하기를 요구한다.

그래야 일을 시키니까 말이다.

현재 자본가들이었다면 5시간만 일하고 5의 돈을 받아간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집에 가서 쉬라 했을 것이다.

그들은 10의 돈을 받고 10시간을 일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에 찌들은 우리들은 10시간을 일하고 10의 돈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현실을 저당잡은 자는 누구인가?

자본이 목적인 자본가들이다.

물론 우리들도 자본이 목적이다.

그리고 우리의 현재의 시간은 수단이다.


국가도 현재를 수단으로 삼고 미래를 목적으로 삼는다.

열심히 국가를 위해서 일하면 나중에는 위대한 나라의 국민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현재는 힘들지만 참고 견뎌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현재가 수단이면 목적을 이루었을 때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미래에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처럼 황당한 경우가 없다.


면벽으로 50년간 수행을 하는 스님이 언제 크게 좌절하는가?

죽기 직전이다.

죽기 직전에 왜 좌절하는가?

내가 50년 동안 수행을 했는데 죽기 직전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만약 극락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렇다면 50년을 바친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가?

무엇으로 보상을 받는가?


10억을 벌면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사람이 있다.

그래서 쓸 것 안 쓰고 먹을 것 안 먹으면서 나이 80이 되어서 겨우 10억을 모았다.

그런데 그 80이 되어서 내가 생각한 그 무엇인가가 없다면 무엇이 되는가?

여행을 가고 싶어도 관절염 때문에 어디를 못 다닌다.

아무리 맛있는 스테이크가 있어도 이가 안 좋아 씹지를 못한다.

게다가 병까지 걸렸다면 그 인생은 누가 책임지는가?


가족을 목적으로 삼는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가족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자식은 자식 부모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클 때까지만 키우면 된다.

내 노후자금으로 사교육에 올인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대학교 들어가면 "Your Life, My Life" 해야 한다.


정치, 경제, 종교 등등 현재를 수단으로 삼는 모든 것은 미래 혹은 사후를 목적으로 둔다.

그리고 현재를 희생하라 한다.

그리고 현재를 희생하면 미래에 큰 댓가가 따른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그 미래에 그 무엇도 없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무엇인가?


키스 한번 잘못해서 라는 말이 있다.

술김에 키스 한번 잘못해서 대학교 1학년 때 여자를 사귀었다.

그리고 알바도 못 뛰고 스펙도 못 쌓고 결국 6개월을 허비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피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말이다.


그러면 언제 키스를 하는가? 물었다.

키스는 스펙도 쌓고 졸업도 하고 직장도 잡고 연봉도 오른 다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키스를 잘못한 나이는 19살이고 키스가 준비된 나이는 32살이다.

그렇다면 32살에 키스를 하면 19살에 느낌을 느낄 수 있을까?

현재는 미래를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리고 종교, 정치, 경제 기타 등등 현재의 나를 억압해 미래에 무엇을 하라는 모든 것들은 물리쳐야 한다.


그래서 목적은 미래가 아닌 현재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현재가 목적인 경우는 어떤 것을 목적으로 놓아야 하는가?

10억 인가? 천국 인가? 가족, 부동산 인가?

아니다.

항상 현재의 목적은 '나'여야 한다.

그래서 죽을만큼 너무 힘들면 그만 둬야 한다.

대학교 떨어졌다고 사업 실패했다고 자살하면 안 된다.

그까짓게 왜 목표가 되어야 하는가?

내 삶의 목적은 나여야 하는데 말이다.


어차피 내가 잘 살려고 이 땅에 태어난 것 아닌가?

그리고 사후세계는 잊어버리자.

그리고 10억을 모을 수 있다면 좋지만 모을 수 없다면 애들이 클 때까지만이라고 기한을 정해 두자.

그리고 현재 좋은 삶을 매일 살아가는 것이 존재의 이유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인생은 Action이지 Product가 아니라고 했다.


JD 부자연구소
소장 조던
http://cafe.daum.net/jordan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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