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께서는 오랜 기간 직이 없어서 내 등록금을 지불하지 못했다. 날 위한 등록금은 없었지만 골프연습장의 사장 딸의 대학 등록금을 위해 돈을 빌려주었다. 체면이 살아야 했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본인의 미래를 위해 없는 돈을 긁어모아 대학원에 다녔다. 두 번 망한 사업 준비를 하다가 세 번 망했다. 세 번 망하고 나서 정신병에 걸렸다. 정신 병동에서 치료를 마치고 나와서 폐암에 걸렸다. 반년이 흐르고 죽었다.
아버님은 사업 준비와 학업, 유흥비로 사용한 카드 값을 자주 지불하지 못했다. 아버님의 요청과 협박에 눈감지 못해 가족들 몰래 값을 매웠다. 밀리는 월세와 대책 없는 남편을 지켜보는 어머님의 심신이 뒤틀렸다. 오랜 가난과 채무가 가족들을 조금씩 고장 냈다. 배에 기름이 끼면 인간은 품위와 명예를 추구한다. 오랜 굶주림과 공포가 육을 흔들면 영은 육을 떠나 이기심과 이타심의 균형을 영원히 잃는다. 태산 같던 부모의 허무한 뭉개짐을 보며 가족 같은 것은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새벽에 누나가 깨웠다. 아버님의 얼굴을 봤는데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르겠다. 감정의 분류가 무의미한 표정을 짓고 알몸으로 거실에서 칼춤을 추고 있다. 젊은 시절 그의 논리에는 빈틈이 없었다. 눈빛이 맑고 선명해 말과 행동이 정갈했다. 그의 날 선 실력과 태도에 경외감을 가졌다. 영원히 녹슬지 않을 것 같았지만 시간이 모든 것을 꺾었다. 영원히 지속할 것 같은 지루한 궁박을 견디지 못한 어느 밤 나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구석구석 질타했다.
출동한 구급 대원들이 겁에 질려 있었다. 정신 병동에 끌려온 그의 손끝에서 초조한 담배가 탄다. 겁먹은 짐승의 눈으로 담배를 폈다. 손끝에 담배가 티고 내 마음도 탄다. 그를 진단한 의사가 할 말을 잃고 겁에 질려 있었다. 가여웠다. 다음날 출근해서 아버지가 마음에 병이 나서 연차를 쓰고 돌보러 가고 싶다고 말했다. 직장 상사들이 겁을 먹었다. 가여웠다. 학원 원장들이 화를 냈다. 가여웠다. 학부모들이 난처해했다. 다 가여웠다.
정신병동에 입원시키기 위한 가족들의 동의서에 서명하지 못하고 아버님을 집으로 모셔왔다. 섣불리 입원을 했다간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닐지 겁이 났다. 다음날 출근 후 휴가를 내어 아버님과 시간을 보냈다. 동네 카페에 차를 마시러 갔다. 불안정한 어조로 앞뒤가 안 맞는 말을 뱉는 손님을 보고 주변의 손님들이 속삭였다. 카페의 주인은 난처해하며 나가주길 바랐다. 아버님을 모시고 나와 집 근처를 짧게 걷고 집에 들어갔다. 평생 손을 잡거나 몸이 닿거나 눈을 마주한 적이 없었는데 한 명이 미치고 나서야 팔짱을 꼈다. 늘 죽이고 싶었는데 당분간 살리고 싶었다. 그의 변신을 보고 분노와 공포는 둘 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며칠간 병세가 깊어 병동으로 끌려가 갇혔다. 창 너머로 보이는 침대에 팔다리가 속박된 그를 보는 나는 창 너머 이쪽에서 몸이 굳었다. 병원에 갇힌 아비를 돌볼 틈 없게 빠르게 일감을 넘기는 사람들의 성숙한 냉정함에 놀랐다.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방법을 정확히 모르는 정신과 의사들의 무지, 무능한 아비를 소외시킨 아들의 멸시, 돌아서는 애인, 술자리 안주 거리로 씹는 친구들을 보며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지 경계가 흐려 보이지 않았다.
정상과 비정상 사이 병리적 기준을 잡고 판단함은 의사의 고유권한이다. 동일인에 대해 여러 의사의 판단이 갈릴 수밖에 없지만 고도로 훈련된 사람들의 의견에 의지해야 한다. 특정 분야에 경험과 공부가 쌓일수록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완벽한 판단 기준 따위는 없다는 걸 알아서 판단이 더욱더 조심스럽다.
특정인이 자신이 이해하는 세상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비정상으로 재단하는 일이 많다. 우리는 생각하기에 따라 모두 비정상이기도 하고 모두 정상이기도 하다. 증상이 가볍거나 무거운 정도의 차이일 뿐 대부분의 인간은 크고 작은 정신 질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특정 계기들을 통해 병리적 수준으로 증상이 증폭-발현되었거나 아직 발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콤플렉스 구조를 갖는다. 이상적으로 완벽한 개인이나 가족이나 조직 혹은 국가는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 없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숙성시킨 방식이 인격의 성숙도를 결정한다.
자신이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타인이 갖고 있을 때 그 사람을 유난히 미워하는 일이 있다. 자신 안에 그 모습이 있음을 모르거나 무의식적으로는 알지만 모르는 척 스스로를 속인다. 심리학에서 투사라고 부른다. 자신의 편협한 경험이나 신념체계에 갇혀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불쾌감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낯선 종류의 사람에 대한 공포감을 이겨내려 그를 비정상으로 여기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스스로 우월감에 빠져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을 구사해 상대를 비정상으로 쉽사리 규정하는 일을 조심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정신세계가 건조해진다.
온몸에 암이 번진 그는 오랜만에 면도를 하고 옷을 챙겨 입고 사람들을 만났다. 딸의 결혼 전 상견례 자리였다. 마지막 기력을 끌어 모아 자리를 지켰다. 상견례를 치르고 상대의 부모를 배웅하며 그는 인사를 건넸다. “우리 딸이 나이는 찼는데 제가 제대로 가르치질 못해서 많이 부족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그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자신을 물리고 낮춰 겸손한 자세로 말을 하는 것을 처음 봤다. 그날 저녁 오랜만에 멀끔한 차림의 그를 보고 나는 그의 영정사진으로 삼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엄마가 방 안에서 조용히 울었다.
그는 죽어가며 수개월간 여러 번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돈을 벌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능력이 있는데도 노력하지 않는 나태하고 비겁한 모습에 그를 원망하고 멸시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는 일에 너무 오래 인생을 허비했다. 시간은 모든 것을 지운다. 시간이 많이 흘러 슬픔도 미움도 그리움도 없다. 나는 시간이 가장 무섭다.
죽기 며칠 전 컨디션이 제법 좋았던 그는 양꼬치를 먹고 싶어 했다. 시간이 빠듯해 주말에 양꼬치를 대접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주말이 오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의 저승길에 양꼬치를 올리지 못했다. 그의 죽음에 내가 거들 것이 없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저승의 객이었다. 건축 의지와 힘의 논리로 자아의 형성과 세의 확장을 원하던 그는 죽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해체 의지와 허무 의지에 찌든 나는 내 삶을 주고 싶었다.
장례식에선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법리적, 윤리적 판단을 떠나 양심 상 내가 그를 사지로 몰고 간 것 같아서 슬퍼할 자격이 없었고 슬프지도 않았다. 다만 그의 인생이 가여웠다. 아버님의 화장을 치른 날은 내 생일이었다. 친구들을 불러 모아 삼 년 만에 생일 파티를 했다. 짐을 벗고 마시는 맥주가 가벼웠다.
상을 치르며 다짐을 세 개 했다. 남편을 잃은 미망인에게 대들지 않겠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아버님 몫까지 두 배로 행복하겠다. 행복하겠다는 의지를 버려야 행복하더라. 성장하지 않고 사회의 도구가 되지 않겠다. 있지도 않은 적을 상상하며 악을 쓰고 있더라. 애써 멈춰있는 일에는 에너지가 많이 든다. 힘을 빼고 흐름을 타고 전진하는 일이 최적의 경로다. 오는 기회를 서둘러 거절할 필요도 몸을 관통하는 대지의 욕망을 애써 막을 필요도 없고 틀어막을 수도 없다. 염세에 빠져서 자기 파괴를 일삼고 타인을 자아로 느껴 세계파괴의 길로 들어가 봐야 자연과 화합할 수 없어 명을 단축할 뿐이다. 물론 필연은 우연의 가면을 쓰고 온다.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산다.
매년 생일엔 생과 사가 겹쳐서 다가온다. 나는 살아서 생일 축하를 받고 그는 죽어서 없다. 기일을 기억하지 못할 아들을 배려해 생일 이틀 전에 떠나진 않았겠지만 날짜를 기억하기 쉬워서 다행이다. 생일인 오늘, 나는 9시간 숙면 후 쾌변을 하고, 따듯한 물에 목욕을 한 뒤, 어머님께서 차려놓고 나가신 매운탕을 삼일 굶은 거지처럼 해치우고, 나를 위한 건지 아닌 건지 아름다운 볕을 쐬며, 상쾌한 생수를 입에 머금은 채, 음악을 들으며, 출근했다. 그는 먼지가 되어 이승을 떠돌고 있다. 아직도 미련이 남아 저승에 가지 못했을 것 만 같다.
아버지가 미치고 나서 며칠 후 거실 한편에서 노트를 발견했다. 내가 비난한 내용들에 대해 반론하는 메모가 적혔다. 곳곳에 내용이 끊기고 글씨가 엉켰다. 반박할 수 없음을 알고 미쳤다. 나는 아직 미치지 못했고 일정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