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떠난 후,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제야 막내 삼촌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야기를 꺼냈다.
이틀 전쯤 밤에 화장실을 다녀오시다 넘어진 것 같다고.
공교롭게도 요양보호사가 휴가를 갔었기 때문에 그 주 내내 할아버지가 혼자 생활하셨단다.
심하게 넘어진 건 아니니 멍이 든 타박상 정도일 거고 주말이 지나면 월요일 아침에 병원에 모셔가겠다고.
아침까진 부축해서 벽 짚고 설 수 있었는데 자식들 와 있으니 영감이 어리광하는 거라며 "아버지 어서 일어나 걸어보이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볍게 말하는 막내 삼촌 이야기와는 다르게 할아버지의 얼굴은 점점 고통스럽게 변했다.
움직일 때마다 급기야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시기도 했다.
모두가 곁에 서서 살피니 한쪽 엉덩이가 제 기능을 못하는 듯 보였다. 스스로 서기는커녕 손만 갖다 대도 괴로워하고 억지로 일으켜 세워 보니 다리가 빠진 것처럼 덜렁거렸다.
별 일 아니니 월요일에 동네 정형외과에 모셔가 보겠다는 막내 삼촌과 심각한 얼굴로 당장 구급차를 부르라는 아빠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허공에서 날카롭게 부딪혔다.
착잡하게 가라앉은 집안에서는 삼삼오오 모여 저마다 할아버지의 낙상 부상 정도를 가늠하며 수군대고 있었다.
당장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부터 가봤자 소용없다는 소리,
병원 가봤자 수술하라할텐테 저 나이에 무슨 수술이겠냐는 소리.
진작 요양원에 모셨어야 했다는 소리..
막내 삼촌 부부가 왜 곧바로 알리지 않았느냐는 소리 등..
막내 삼촌부부가 같은 대문을 공유하는 바로 옆 집에 살고 있었지만 맞벌이 부부였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깨어 있는 시간에 마주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학생이었던 사촌동생들도 굳이 현관문을 열어 할아버지 상태를 살피지는 않았을 테니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아프셨던 걸까?
불현듯 어쩌면 할아버지가 아픈 기색을 일부러 숨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범은 막내 삼촌이고..
노인은 내색한 적 없지만 양로원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종종 티브이 뉴스에서 학대받는 양로원 노인들이 나오곤 했으니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더 섬뜩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평생을 끼고 산 막내 삼촌이 가끔 농담 삼아 "아버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리 힘 안 빠지게 운동도 열심히 하고 대소변 잘 가려야 요양원 안 끌려갑니데이" 하며 반 협박을 해서 매일 아침저녁 마당 한 바퀴를 같이 돈다 했다는 말도 기억이 났다.
막내 삼촌은 장난기가 있었지만 누구보다 할아버지와 가까웠던 것 같다.
형님들과 다르게 아침저녁으로 늘 안부를 물으면서 할아버지 귀도 잡아당기고 어깨도 주무르는 등의 스킨십을 쉽게 했다.
할아버지는 안면근육도 마비상태였기 때문에 식사를 흘리거나 침을 흘리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그럴 때마다 막내 삼촌은 호들갑을 떨면서 "아이고 아버지 춤(침의 경상도 방언) 춤 닦으소 아이고 흐른다 흐른다" 하며 아무렇지 않게 슥슥 수건으로 닦아내곤 했다.
우리 엄마가 아빠랑 연애할 때 가장 강렬했던 장면이 시아버지 다리 사이에 앉아서 과자 먹던 어린 막내 시동생이었다 했었다.
유독 할머니 할아버지 품을 못 벗어나서 신혼살림 차린 지 1년 만에 다시 본가로 돌아와 살고 있었으니 할머니 사후에 할아버지를 가장 지근거리에서 살피는 아들은 막내 삼촌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말투나 철 없이 보이는 장난스러운 스킨십이 장남인 아빠에게 곱게 보였을 리 없다. 막내는 매사에 장난스러워 걱정이라 했다. 막상 아빠는 할아버지가 엄했던 기억밖에 없으니 할아버지와 항상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아마 막내 삼촌이 제일 두려웠을 것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 다음으로 제일 많이 울었던 사람이 막내 삼촌이었으니까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실까 봐 얼마나 무서웠을까.
진심으로 할아버지를 집에서 모시고 싶었을 것이고 누구보다도 요양병원에 모시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노인이 걷지 못하고 일단 자리보전했다 하면 저로서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았겠지. 한창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이였고 할아버지의 거처에 대한 결정은 형님들, 특히 큰 형님 권한이 제일 컸으니까.
그랬으니 할아버지가 다친 것에 대해서 자책감도 있었을 테고 김장만 아니었으면 조용히 할아버지를 모시고 단골 정형외과에 진찰을 받으러 갔을 것이다. 어떻게든 할아버지가 집에 계실 수 있도록 재활치료를 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나중에 할아버지를 집에서 모시겠다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으니까.
어쨌든 할아버지의 고통스러운 표정만큼 다리가 덜렁거리는 것도 보통 심각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당장 할아버지를 병원에 모셔가 보기로 했다.
누군가 업어야 이동이 가능할 것 같았는데 할아버지는 일명 틀이 좋은 양반이라서 아빠나 삼촌들보다 컸기 때문에 그 누구도 선뜻 나서서 노인을 업을 수 없었다.
다 큰 손자 녀석들 몇이 있었지만 역시 할아버지보다 덩치가 큰 건 아니어서 다들 쭈뼛거리고 섰다.
사실 누가 업는다고 나섰더라도 할아버지의 통증이 워낙 심했고 소리까지 지르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119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2년 4개월 만에 집 앞으로 또 구급차가 왔고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할아버지도 역시 그 차를 타고 60년 넘게 살았던 집을 떠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