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그리는 계획, 로드맵
얼마 전에 지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J여서 계획이 틀어지는 게 너무 싫다. 그래서 계획을 안 세운다.'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는 말이다. 계획은 어디까지나 계획이지, 규칙이자 법이 아니기 때문에 잘 지켜지기가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연초에 세운 계획을 연말에 돌아보면, 지킨 것보다 못 지킨 것들이 더 많았던 경험이 모두 한 두 번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웬만큼 지킬 수 있을 것들을 한 두 가지만 계획해보기도 하는데, 사실 이건 계획이라기보다는 그저 나와의 최소한의 약속 같은 것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계획마저도 없으면 삶을 살아가는데 너무 근시안적인 태도로 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계획이 없이 일하면 오늘내일의 단기적인 문제만 해결하고, 장기적인 준비를 할 수 없다. 하지만 또 계획만 세우다가 항상 지키지 못하는 계획에 나도 팀도 모두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경험도 적잖게 했었다. 둘 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좋은 면이 더 큰 쪽을 택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계획을 세우려고 하는 편이다.
한 달은 너무 짧고, 1년은 너무 긴 기간이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계획의 기본 단위는 분기가 되었다. 사실 일을 해보면 3개월 정도의 기간은 돼야 계획이란 걸 세우는데 의미가 있긴 하다. 이때 세우는 계획은 거의 방향성에 가깝다. 일종의 로드맵을 짜는 것이다. 이 로드맵은 예정된, 혹은 생각해 볼 수 있는 미래 태스크들의 합으로 이뤄지기도 하는데, 각각의 태스크들을 모두 하겠다기보다는, 이런 태스크를 하면 이 분기에 우리 제품은 이런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라는 어떤 길목을 그리는 것에 가깝다. 보통 타임라인으로 이어지는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 태스크가 이어진 그 막대기가 마치 길을 의미하는 느낌도 든다.
이 태스크들을 다 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고, 대부분은 몇 가지는 빠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분기의 말에 뒤를 돌아봤을 때, 어느 정도 길은 맞게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으로 성공했다고 본다. 또 반대로 결국 다른 길을 오게 됐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왜 그랬는지 어디서부터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됐는지를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그것도 큰 의미는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일을 하다 보면 이 로드맵을 그리지 못하고 갈 때도 있는데, 이젠 좀 더 잘 챙기고 잘 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