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링팬 설치에서 얻은 인사이트
집 천장에 실링팬을 달았다. 그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문제는 명확했다. 거실과 부엌의 온도차를 줄여보기 위함이었다. 평소에는 그리 티가 나지 않았지만, 정말 더운 여름철에는 거실에서 에어컨을 틀어도 부엌까지 냉기가 전혀 가지 않았다. 그 사이에 어떤 결계라도 있는 것처럼, 특정 지점을 넘어가면 이상하리만치 냉기가 꺾여버리는 것을 보고, 서큘레이터도 틀어보고 했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이전에도 실링팬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마트에서 판매하는 실링팬을 보고 저렴한 가격에 설치까지 대행으로 해주는 서비스가 있어 곧바로 결제를 해버렸다. 뭔가, 가망고객으로서 그 상품을 보고 의도한바 대로 넘어가버린 느낌이었다.
설치를 하는 과정은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큰 불편함이 없었다. 첫 번째 과정은 구매였는데, 구매는 일반적인 이커머스와 다르지 않았다. 두 번째는 설치일자를 조정하는 것이었다. 설치 일자는 웬만하면 맞춰 줬는데, 한 가지 아쉬움은 정확한 시간대를 미리 정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설치시간 조율이었는데 다행히 원하는 시간대에 맞출 수 있었다. 설치 전 날에 설치 기사님이 연락을 주셔서 시간을 잡았는데, 원하는 시간대에 룸이 있어서 예약할 수 있었다. 만약 원하는 시간에 안 됐더라면 또 연기해야 헀을까 싶다. 네 번째는 설치였는데, 전문성을 갖고 있는 기사님이 방문하셔서 설치를 잘해주고 가셨다. 불편한 점은 없었다. 설치 후 작동에는 당연히 이상이 없었고, 이제 더운 여름이 기다려진다. 과연 문제가 진짜 해결되었을지 궁금해진다.
여기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상품을 구매하고 설치할 때까지 절대로 박스를 뜯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해당 가정에 설치가 불가능하다면 바로 반품을 하기 위한 프로세스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이 안내를 들었을 때는 크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이런 고민 없이 설치할 수 있는 실링팬을 만들 수는 없을까에 대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그래도 사용자에게 충분히 인지되도록 2-3중으로 잘 알려준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면서 좋은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이유는 '판매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식'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실링팬이라는 카테고리는 결코 큰 시장은 아니다. 하지만 들어갈 만한 시장일 수는 있다. 이런 시장에서 상품을 판매하는데 자체 브랜드로 R&D 비용을 많이 쓰기는 힘들다. 중국에서 만들어지는 상품을 포장해서 판매하는 쪽이 당연히 ROI가 높을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정해진 상품으로 예상치 못한 다양한 주거 환경에 맞게 하려면, 직접적인 실사를 하는 수 밖에는 없다. 결국에는 유저가 결제 후에 손해 없이 반품할 수 있는 조건을 두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통해서 판매하는 입장에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잘 통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비스를 운영하다 보면, 자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못한 영역이 있다는 것을 수시로 느낀다. 어떨 때는 우리 서비스가 통제 가능한 영역 밖을 통제하고 싶을 때도 있고, 반대로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하다 보면, 가능한 영역만이라도 잘 통제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찌 보면 진리에 가까운 명제인데, 여러 가지 이유로 이걸 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작년 하반기에는 자체 통제가 어려운 이슈로 서비스를 계획대로 발전시켜나가지 못한 이슈가 있었다. 현재는 그 이슈가 없어진 상태이지만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앞으로를 대비하는 관점에서 이 경험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것 같다. 다행히 실링팬은 우리 집 거실에 잘 설치되었다. 하지만 만약 설치가 되지 않고 반품을 했다고 해도, 아쉬움은 남았겠지만, 이 브랜드를 원망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 상품의 한계를 이미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경험은 아주 당연한 것 같지만, 굉장히 많은 고민을 거쳐 나온 결과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결정도 그러할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