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겁쟁이를 안아 주기로 했다

by 금동이

이해하는 능력도 공감하는 능력도 힘든 나는 인생이 참 길게 느껴지곤 했다. 심리 서적도 읽어보고 따라 해보기도 했다. 원숭이처럼 흉내만 낼뿐 변화가 없다. 답답한 마음에 타로 점을 봤다 ‘인간관계 언제 좋아지나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카드를 몇 장 뽑았다. 대답은 “답이 없다”라고 나왔다. 답이 없다면 이건 내가 지금 관계가 바닥이라는 신호다!라고 생각했다. 바닥은 올라갈 일만 남은 것이다. 원인을 찾아 내 안의 세계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어린 시절 나는 항상 겁에 질려 있었다. 시골 외딴집에 살던 나는 언제나 혼자서 집을 지키는 시간이 많았다. 어렸던 나에게 때때로 찾아오는 불청객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며칠에 한 번씩 거지가 찾아와 쌀을 달라고 했고, 문둥병 아저씨는 알약을 강매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쌀을 반 바가지를 내어 주거나, 어른이 없다며 돈이 없다고 말했다. 낮에는 반갑지 않은 그들이 나를 괴롭혔다면, 밤에는 천장에 사는 쥐들의 찍찍 괴성이 나를 힘들게 했다. 잠든 사이에 발가락이나 손가락을 물까 봐 이불을 머리끝까지 꼭 덥고 잤다. 그뿐이 아니었다. 뒷산에서는 늑대가 애기 우는 소리를 내며 밤마다 울었다. 나를 지켜야 하는 건 나 자신뿐이었다. 아버지는 타지에서 고기 배를 타시는 일로 집에는 6개월에 한 번 정도 오시고, 엄마는 장사를 나가셔서 늦은 저녁때쯤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겁쟁이로 자란 것은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어린 시절과 청춘을 겁쟁이로 보낸 나는 여러 가지 증세가 있다. 사람을 대할 때 긴장하는 습관이다. 긴장과 불안지수가 높으니 당연히 불편함이 덤으로 온다. 집중력과 이해력도 떨어진다. 경청이 중요한 덕목임을 아나 긴장도가 높다 보니 주위를 더 신경 쓰게 되고 띄엄띄엄 듣다 보니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회사 생활도 어려웠다. 참을성까지 없던 나는, 여름에는 더워서 그만두고 겨울이면 추워서 그만두고 일이 힘들어도 사람 관계가 힘들어도 그만 두곤 했다. 몇 개월 버티기 들어간 직장 생활은 늘 토끼처럼 짧았다.

놀라기도 잘한다. 학교에서 과학실험을 하던 날 불이 붙은 알코올병이 넘어져 살짝 불이 난 적이 있었다. 나는 불이야 소리치고 교실 밖 복도로 날아가듯 뛰쳐나왔다. 다른 한 아이가 내 뒤를 따라 나왔다. 그리고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창문으로 보니 작은 불은 꺼져 있었고 몇몇 아이들과 선생님이 정리를 하고 있었다. 100M 달리기가 23초인 느림보가 작은 불 하나에 빛의 속도로 달려 나온 것이다. 그리고 처음 시골집에 전기선이 설치되던 날 유리 전구에 불이 들어왔을 때 겁이 많은 나는 뜨거운 전구가 터질까 봐 멀찌감치 있곤 했다. 가스 렌인지를 처음 사용한 날 무서워서 몇 번을 돌리고서야 성공했다. 압력 밥솥을 처음 사용하던 날도 잊을 수가 없다. 밥이 끓기 시작하자 뚜껑 위에 있는 추 가 뱅글뱅글 돌아가면서 칙칙 거리며 딸랑딸랑 소리를 내는데 금방이라도 폭탄처럼 터질 것 같아 부엌을 뛰쳐나왔다. 그 요란한 소리는, 경적을 크게 울리며 내 옆을 바로 지나가는 커다랗고 길고 긴 기차 소리 같았다. 놀래서 정신까지 혼미한 날이었다.

겁쟁이가 된 이유를 알고 나니, 내 어린 시절. 청춘이 안쓰럽다. ‘이제 괜찮아 정말 괜찮아’ 작은 아이의 엉덩이를 두 팔로 껴안고 안정된 가슴에 오래도록 품어 주고 싶은 날이다. 겁쟁이 아이가 미소를 지을 때까지 안아주고 싶다. 이런 겁쟁이 에게도 또 다른 내가 발견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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