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계절이 오면 내 두 눈은 꽃을 담기 바쁘다. 코도 바쁘다 꽃의 향을 가슴 깊이 들이마시기 때문이다. 아침 이슬 머금은 들풀 들 에게도 기특하다는 생각에 미소 한방 날린다. 아침 새들의 지저귐은 청량하게 들리고 꽃을 찾아온 나비와 잠자리의 춤사위는 얼마나 좋기에 종이 한 장 나는 것보다 가볍게 보인다. 겁쟁이는 자연과 친밀감을 느끼며 호흡하며 살아간다.
이런 내가 시골 동네에 살 때는 진달래꽃 아카시아꽃 찔레 순들을 똑똑, 잘도 따 먹었다. 지금 그때를 생각하니 입에 꽃들의 향이 고인다. 꽃나무도 뚝뚝, 꺾어서 한 아름 안고 집으로 오면 주둥이가 넓고 큰 화병에 담아 며칠을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던 시절이었다. 물론 후회도 했다. 며칠 지나고 나면 보기 흉하게 꽃이 져 버렸기 때문이다.
올봄 내가 사는 영종도에도 시골서 보던 꽃들이 지천으로 피었다. 적당한 햇빛과 바람 풋향기 같은 맑은 공기가 내 영혼을 맑게 깨우던 날. 들길을 거닐던 나는 아카시아 꽃이 팝콘처럼 피어있는 그곳 벤치에 앉았다. 중년 남녀가 걸어온다 아카시아 꽃을 발견하자 여자가 달려가 꽃을 따서 두 손에 가득 담아 남자에게 환한 미소를 짓는다. 나도 따라 빙그레 희미한 미소가 핀다.
나는 몇 년 전부터 꽃을 따거나 꺾지 않는다. 괴로움이 많은 삶을 살다 보니 꽃들의 괴로움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안에는 아물지 못한 상처의 흔적들이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사람들과 마주 앉아야 하는 자리들이 종종 생긴다. 언어가 부족하고 재미있게 말할 줄 모르다 보니 말을 시작하는 도중에 썰령해질 때가 있다. 그 순간 누군가는 내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끼어들어 말을 빼앗는다. 빼앗긴 다음 말들을 목구멍으로 삼키다 보니 수치심까지 올라오곤 했다. 어떤 날은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 타이밍을 놓쳐 못하기도 했다. 살면서 당당함이 없었다. 빼앗긴 말 삼켜진 말들은 오해를 키웠고 속도 좁아 관계가 항상 틀어져 있었다. 서글픔도 많아 뒤 돌아보고 싶지 않은 청춘이기도 하다. 지금 다시 신께서 그때의 청춘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젊을 준다고 해도 나는 정중히 거절할 것이다. 겁쟁이의 젊은 날은 바람에 뒹구는 낙엽처럼 황량했고, 가을 끝 나뭇가지에 마지막 남은 잎새처럼 외롭고 슬펐다. 작은 들꽃도 키 큰 나무 꽃도 비바람 더위 눈보라 까지 다 견뎌내고 그렇게 피었다. 그 고통의 시간을 알기에 귀하고 귀하다. 자연의 풍파를 이겨낸 자부심 가득한 청초하면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꽃을 꺾지 못하는 여자가 되었다. 조심스레 만지듯 스치며 향을 맡아 볼뿐이다. 내 안에는 꽃도 꺾지 못하는 여린 심성도 있다.
벤치에서 일어나 집으로 오는 길, 금동이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나는 콧노래가 흥얼흥얼 둘 다 신이 났다. 누군가 우리를 지나쳐 앞서 걸어간다. 키가 큰 백발의 할머니가 아카시아 꽃을 가지체 꺾어 한 아름 안고 성큼성큼 걸어간다. 추억이 간지럽게 그리우신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