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내가 많아서 다행이야

by 금동이

겁쟁이는 다중 인격체의 집합소다.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 난 건지도 모른다. 말에도 일관성이 없어 딸에게 무시당하며 살고 있는 나다. 답답한 엄마를 둔 딸에게는 미안하지만 엄마도 그런 엄마가 될 수밖에 없는 어린 시절과 청춘이 있었다고 말해주고 이해를 구하고 싶다. 딸이 좀 더 커서 엄마를 이해하고 싶어 할 때쯤.

말을 논리적으로 못 하는 나는 화를 버럭 낼 때가 가끔 있다. 말 못 하는 아이가 울고 떼를 쓰듯 무조건 화부터 내는 것이다. 말로 이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남편이나 딸이 뭐 때문에 이렇게 화를 내는데 물어보면 기억력이 3초 정도 되는 나는 들은 얘기와 비슷한 엉뚱한 소리를 한다. 그러면 그들은 ‘그런 말이 아니었잖아, 왜 그렇게 까지 생각했어! 라며 이런 뜻으로 말한 거라며 설명을 해준다. 그러면 나는 내가 다중 인격체만 여럿 있지 다 단세포인 아메바. 박테리아 정도가 아닐까 걱정도 된다.

나는 음주 가무가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부부 모임이 있을 때 가끔씩 노래방을 가곤 하는데 나는 괴롭다. 음치 중 음치요, 술 한 잔만 마셔도 멍게처럼 빨개진다. 심장은 쿵쾅거리고 빨개진 얼굴은 맥박이 얼굴로 옮겨 갔는지 화끈화끈. 벌떡 벌떡 뛴다. 이런 내가 젊은 시절 크게 용기를 낸 사건이 있다. 용인 민속촌에서 저녁에 노래자랑이 열렸는데 남편이 노래 신청해볼까 하더니 내 이름을 써낸 것이다. 도깨비에 홀린 듯 무대로 올라갔고 노래방만 가면 부르던 박 길라의 ‘나무와 새’를 불렀다. 이 노래 하나만은 자신이 있었다. 박수가 쏟아졌다. 등수 안에는 못 들었지만 참가 상품으로 민속촌 자유이용권을 다섯 장을 받았다. 이렇게 소심하고 두려움 많은 내가 여러 관중 앞에서 노래를 하다니 역시 다중이다.

6년 정도 탁구를 쳤다. 다른 데는 승부욕이 없는데 탁구는 다르다. 목숨 걸고 치는 사람처럼 눈에 힘을 주어 몰입하고 거칠게 공을 쳐서 상대편에게 보낸다. 탁구장에서 내 모습은 과장이 있다. 힘 있는 척 잘하는 척 사람들과 친밀감 있는 척 말 잘하는 척 척 쟁이다. 그런 나를 사람들은 힘이 좋고 성격 좋고 용감해서 뭐든지 잘하는 사람으로 오해하고 있다. 운전을 못한다고 하니까, “○ ○○이가 운전을 못한다는 게 말이 돼! 거짓말이지” 한다. 내가 소심한 성격이라고 쑥스러운 듯 얘기하면 “정말이야 ” 도대체 사람들은 믿지를 않는다. 이것도 다중이 때문이다. 이런 난데도 내 안에는 버럭 이도 있고 대중 앞에서 노래 부를 용기도 있었고 탁구 초보자에게는 공을 잘 칠 수 있게 보내는 배려도 있었다.

지난해에 길 위의 인문학 수업을 받을 때 나는 사냥꾼에게 쫓기는 어린 사슴 같이 불안했다. 책도 많이 읽은 사람도 아니었고, 도서관에서 한 달에 한번, 시 수업을 1년 정도 들은 게 전부였다.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똑똑한 사람들과 강의를 들으니 기가 팍, 죽어 소금에 잘 절여진 배추 같이 어깨는 점점 구부러지고 시선은 불안감에 밑바닥을 헤맸다. 시골에서 상업고만 졸업한 나는 공부도 못하는 편이어서 문법도 모르고 단락을 나눌 줄도 모른다. 지금 청춘 에세이를 쓰면서도 맞는지 틀리는지 감이 안 잡힌다. 그저 내 얘기를 쓰고 있을 뿐이다. 다중이 에게 묻고 싶다 ‘너 글쓰기도 가능해?’ 그럼 내 무의식은 어떻게 대답해 줄까? 궁금하다. 겁쟁이는 다중이를 데리고 사는 재미가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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