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잘못 타고난 겁쟁이

by 금동이

파란 하늘에 구름들은 한지를 풀어놓은 것 같아 붓에 먹물을 묻혀 글을 쓰고 싶어 진다. 간간이 물들기 시작한 단풍과 갈대의 은발 머리채도 보며 가을 길을 걷는다. 군데군데 지렁이가 세상 구경 나왔다가 강한 햇볕에 몸이 말라죽어 있는 게 보인다. 구운 오징어 다리 같기도 하고 굽은 녹슨 철사 같기도 하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시골 소녀는 자연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좋아했지만 뱀 지렁이 이런 종류는 싫어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징그러워 몸에 털이 섰다. 지금은 햇볕에 지렁이가 나와 꿈틀거리며 기어가는 모습을 보면 나뭇가지를 주워 지렁이를 풀밭에 옮겨준다.

청춘이라 할 수 있는 20대부터는 자연을 잊어버리고 살았다. 도시에서 생활하다 보니 콘크리트 건물만 보고 콘크리트 길만 걸었다. 버티기 힘든 회사 생활과 서운하기만 한 인간관계는 추운 겨울 발이 시리듯 눈이 시려 눈물이 자주 났다. 젊음이 버거워 자연을 못 보고 살았던 것 같다. 나이를 먹고 보니 어릴 때 보았던 자연도 좋았지만 지금 자연이 더 좋아지고 짝사랑까지 한다. 이런 내가 가끔씩 사랑에 모순되는 일을 저질러 문제다.

자연을 귀히 여기면서도 내 속엔 모순된 본능이 꽁꽁 숨어있어 자연에 위해를 가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봄나물이 날 때쯤이면 쑥을 뜯고 고사리도 꺾고 취나물 엄나무 잎 손이 바쁘다. 같이 간 사람들보다 더 많이 나물을 한다. 나물뿐만 아니다 바다에 나가 조개도 잡아오고 소라도 잡고 작은 게도 잡는다. 조개 소라를 잡는 날이면 생물에 대한 배려는 냄비에 물이 펄펄 끓을 때 재빨리 넣어 숨을 끊어 주는 것이다. 가을이 되면 영종도 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망둥이 낚시도 가끔 한다. 미끼는 갯지렁이다. 남편이 지렁이를 잘라 낚싯바늘에 끼워 주면 나는 최대한 멀리 바다에 던진다. 망둥이가 미끼를 툭툭, 치는 입질이 낚싯대를 잡고 있는 손에 느껴지면 긴장감과 희열이 뒤섞여 흥분 상태가 된다. 힘껏 낚아채 들어 올리면 한 마리가 올라올 때도 있고 두 마리가 올라올 때도 있고 미끼만 따 먹고 갈 때도 있다. 가을에는 요놈들이 크기도 제법 커지고 살도 올라 무 넣고 간장 양념을 해서 조림을 하면 살이 부드러운 게 밥반찬으로 좋다. 작은놈들은 머리와 내장만 제거하고 튀김가루를 입혀 기름에 튀기면 딸도 잘 먹는다. 물론 망둥이 손질은 남편이 한다.

모순된 삶을 사는 나를 보면서 가끔은 자신이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이런 네가 자연을 그토록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니?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눈빛이 흔들릴 것이다. 악이 있어서 해치는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사랑하지만. 안타깝지만. 나의 즐거움이라 앞으로 안 하겠다는 약속은 할 수 없다 자연 놀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원시 시대에 태어났다면 생존을 위해 남들보다 사냥도 잘하고 물고기도 잘 잡고 나물도 잘하는 썩 능력 있는 여장부가 되지 않았을까?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나는 시대를 잘못 태어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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