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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동이 Jan 23. 2021

운동은 겁쟁이를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오래된 자전거를 타고 흥얼흥얼 거리며 페달을 밟는다. 탁구장으로 가는 중이다. 과일가게를 지나 카페가 점점 가까워진다. 커피 향이 진하다. 들숨으로 깊이 향을 들이켠다. 기분이 커피 한 모금 같이 부드러워지고 커피 향 네 나는 가을은 색이 짙어진다. 탁구 끝나고 집으로 갈 때 테이크아웃하는 곳이다.

  탁구는 남편이 권해서 하게 되었다. 결혼하기 전부터 목이 뻗뻗하고 유난히 피곤했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자 심한 일 자목 진단이 내려졌다. 물리치료 몇 번 받고 귀찮아서 병원을 가지 않은 게 큰 병을 키웠다. 십 년 전 목이 불편하고 잠을 자는 것도 불편해서 엑스레이를 다시 찍었다. 엑스레이를 자세히 보던 의사는 큰일이 난 거처럼  CT도 찍고 MRI도 찍어야 된다고 서둘렀다. 결과는 6군데 목디스크가 줄줄이 있었고 목 인대가 석회화되어 대못만 한 석회질이 생겨 있었다. 의사는 수술을 권했다. 문제는 수술 중에 목은 신경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라  신경을 잘못 건드리면 전신마비가 올 수도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처음으로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과 전신마비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나는 두려웠다. 세상 살면서 못되게 한 죄는 있어도 좋은 일 한 착한 기억이 별로 없었다. 지옥 가면 어떡하지! 나는 왜? 이렇게 밖에 인생을 살지 못했지.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결국 내 결정으로 수술을 미뤘다. 너무 겁을 먹은 나는 몇 년을 불편해도 참으며 지냈다. 팔 저림도 자주 있었다. 한약도 먹고 침도 맞고 했다. 팔 저림은 효과가 있었지만 손 저림은 여전했다.

  아파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봐 왔던 남편은 나를 데리고 집에서 가까운 탁구장으로 갔다. 20년 정도 탁구를 친 그는 처음부터 잘 가르쳐 주었다. 몇 주되니 제법 잘 치게 되고 재미도 있었다. 내가 탁구장에 어느 정도 적응한 것으로 판단한 그는 자기가 원래 다니던 곳으로 갔다. 겁쟁이 본능이 발동했다. 탁구는 남자든 여자든 상대가 있어야 한다. 긴장과 어색함을 많이 느끼는 나는 잘 모르는 사람과 마주 보고 탁구 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탁구를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집에서 나가기 전 고민이 많았다. 손 저림이 점차 나아지고 있는데 안 다닐 수도 없었다. 주민센터 탁구장에서 회비를 걷고 마지막 정리까지 하던 총무가 취업이 되어 나올 수 없게 됐다. 대부분 어르신들이라 코치가 나한테 총무를 맡겼다. 간식도 가져가야 하고 마지막 정리도 해야 하는 나는 책임감으로 꾸준히 나갔다. 탁구는 불편해도 조금씩 시간을 늘려 치다 보니 견딜 만했다. 총무는 일 년 하고 그만두었다. 지금은 사설 탁구장에 다니고 있다. 탁구 라켓에 공이 맞을 때 나는 딱딱, 소리는 스트레스 해소가 되었고 점점 손 저림 증상이 없어지더니 목도 덜 불편했다. 6년째 꾸준히 해 오고 있는 운동이다. 불편한 증상도 호전되었고 일자목도 좋아졌다. 수술도 안 하고 지금 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탁구는 건강뿐만 아니라 조급증이 있던 나를 안정감을 찾게 해 주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계기도 되었다. 손해 보기 싫어 이기적이었던 내가 긍정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탁구장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이 탁구를 잘 못 친다는 미안함 때문에 자동 기계에서 나오는 공만 혼자 치다 가곤 한다. 그런 그들에게 말을 걸고 탁구도 같이 치자고 권한다. 초보자가 라켓으로 치기 좋게 공을 한자리에 계속 일정한 속도로 보내준다. 그럼 그들은 실력이 늘며 즐거워한다. 나는 점점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초보자가 실력이 늘 때 내 기쁨은 크다. 탁구는 순발력과 집중력도 좋게 해 준다. 힘도 좋아지고 용기도 생기고 자존감도 올라간다. 아파서 시작한 운동은 나에게 커다란 선물 꾸러미였다. 이런 내가 겁쟁이로 너무 오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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