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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ak Jul 25. 2024

"패왕별희" 천카이거, 1993

"Farewell My Concubine" Chen Kaige, 1993

2024년 5월 7일, 패왕별희를 처음 봤다. 감사하게도 한국에서는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을 장국영의 기일인 4월 1일마다 재개봉하고 있었고, 덕분에 극장에서 패왕과 우희를 집중력있게 만날 수 있었다.


이전에 소개한 왕가위의 "해피투게더"에서 장국영을 처음 만나고 그가 출연한 작품이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왠걸, 패왕별희의 붉고 새하얀 화장을 한 포스터 속 주인공이 장국영이었다니. 난 중국 영화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너무 유명했던 패왕별희 포스터가 나에겐 꽤나 무섭게 다가왔었기 때문에 이 나이먹도록 들춰보지도 않은 -모두에게 유명하지만 나에겐 유명하지 않은- 그런 영화가 바로 패왕별희였다.

약 3시간에 달하는 긴 분량에 지레 겁먹고 커피와 팝콘으로 만반의 준비를 한 뒤 극장에 들어갔으나 너무나 무색하게도, 왠만한 빠른 호흡의 영화보다 더 흡입력이 있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엉덩이가 아플 새도 없이 그들의 인생이 무섭게 흘러갔다. 난 어느새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내가 감정이 격해진 포인트를 어떤 장면이라고 정확하게 말할 순 없지만, 청데이가 경극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였던 것 같다. 경극은 청데이의 삶을 통해서만 존재했다. 중일전쟁-국공내전-공산당 집권-문화대혁명이라는 시대적 대혼란 속에서도 청데이는 경극을 지키기 위해 죽는 순간에도 분칠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

청데이의 경극사랑의 시작은 우희를 받아들이면서부터였다.  얼해기의 사범에 나오는 곡의 가사 "난 본래 사내아이로서 계집아이로 태어난 것도 아닌 것이..."를 "난 본래 계집아이로서 사내아이도 아닌 것이..."로 처음 제대로 읊는 장면은 잠시 그의 영혼이 사라진 듯 공허하다. 아마 그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우희를 받아들이는 것 뿐이라는 걸 자각한 듯 하다. 이후 시작된 그의 노래는 연기가 아닌 우희 그 자체였다. 눈에선 눈물 한줄기, 입에선 피 한줄기를 흘리며 열연을 펼친 그 장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경극이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하려는 낌새가 생긴 단샤오러우에게 울고 불며 "나와 일생을 노래하자, 일분 일초라도 부족하면 일생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대사에서도 청데이의 경극을 향한 사랑이 아주 잘 느껴졌다. 그는 단순히 단샤오러우를 연모한 마음을 넘어 경극을 할 수 있다면 관객이 일본인이든, 중국인이든, 홍위병이든 상관없이 노래와 몸짓을 선보였다.

단샤오러우의 말 그대로 청데이는 경극에 미친놈일 수 밖에 없었다. 비운의 스타 청데이가 겪은 산전수전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기 때문이다. 매춘부의 배에서 태어나 신체가 잘리는 고통을 겪은 것도 모자라 학대로 시작해 강간으로 끝맺게 된 어린 시절, 유일하게 기댈 곳이었던 사랑하는 이는 내가 아닌 다른 이와 연인을 맺었고, 그 고통을 잊기 위해 시작한 아편은 몸을 상하게 했으며, 그런 와중에도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러운 희생을 여러번하니 꽃다운 시절은 어느새 저물 때가 된 기구한 인생. 게다가 내 손으로 거둔 제자는 내 자리를 거침없이 빼앗으니 더욱 더 경극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겠다. 본인이 입은 무대의상을 다 태우고도 우희의 옷만큼은 남겨둔 청데이의 마음은 죽을 날 입을 수의를 남겨둔 것과 같은 마음과 같지 않았을까. 청데이에게 경극은 자신이자, 자식이고, 엄마이자 사랑하는 이였다.

문득, 난 연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되짚어본다. '난 왜 연기를 시작했지?, 난 연기보다 어떤 걸 더 사랑하지? 나 인생에서 연기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구나, 그저 내 인생을 빛나게 해줄 수단일 뿐이구나, 나도 일생에 걸쳐 연기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다, 나에게도 학대 수준의 고강도 훈련과 인간의 도리를 알려주는 스승이 있다면 연기를 사랑하는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별의 별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요즘 연태기(연기+권태기)를 보내면서 반성보단 약간 서러운 감정이 올라온다. 나에게도 저런 환경이 주어졌다면 내 속은 문드러질 지언정 최고의 배우가 되지 않았을까?하는. 이런 못난 생각이나 하는 나는 탕후루를 입에 우겨넣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패왕별희는 몇번이고 평생에 걸쳐 꺼내먹어야겠다. 단 한번의 감상으로 소중해졌다. 두번, 세번, 네번, 열번째 꺼내 먹어봤을 때 나의 시선은 얼마나 더 깊어져있을지 기대된다. 청데이의 마음을 닮을 수 있도록 자발적인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아무튼 2024년 5월 9일 새벽, 패왕별희를 단 한번 본 나는 달콤한 과일사탕을 입에 우겨넣고 절망의 눈물을 흘리는 샤오라이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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