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쉐리단, 나의 왼발, 1989

Jim Sheridan, My Left Foot, 1989

by 조사막


짐 쉐리단의 “나의 왼발"을 보고 나니 나의 왼손에 대해 말하고 싶어졌다.

나는 우리 할아버지도 인정한 "왼손잡이"였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주변 모든 사람들이 오른손으로 밥을 먹고 가위질을 하고 펜을 잡을 때 나는 고집스럽게 왼손을 썼다.

우리 할아버지도 어릴 땐 왼손잡이셨고 보수적인 한국문화 특성상 회초리로 맞아가며 오른손잡이로 고쳤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 할아버지는 가위질만큼은 왼손으로 하셨고 나는 그 모습이 유독 좋았다.

나의 왼손 자랑을 좀 하자면, 그림을 그리는 데에 아주 탁월했다. 왼손으로 그린 그림은 항상 나에게 칭찬과 상을 쥐어주었다. 왼손은 나의 자부심이었다. 오른손잡이들 사이에서 굳건히 왼손을 "잘"쓰는 나는 특별하다는 생각도 꽤 자주 했다. 그렇게 나는 평생 왼손을 편애하며 살았다. 결혼반지를 껴야할 왼손 약지가 점점 굵어지는 게 안타까워서 손을 씻거나 핸드크림을 바를 땐 조금 더 정성을 기울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지난 몇 년간은 그림과 소원해지면서 왼손의 소중함도 점점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따금 내가 왼손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되돌아볼 때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 때의 내가 퍽이나 귀엽고 사랑스럽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왼손이 내게 특별한 추억들을 주었다면, 크리스티 브라운에겐 왼발이 그러했다. 크리스티의 왼발은 인간으로서의 가능성을 증명하도록 도운 고마운 신체부위였고, 삶의 전반적인 면에서 유일무이하게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었다.


내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조금 놀라웠던 것은, 마을의 모든 이가 그에게 호의적이었다는 점이었다. 크리스티를 놀리거나 얕잡아보거나 불쌍히 여기는 사건이 적어도 하나 쯤은 있어야 말이 되는데, 현실성이 떨어지는 마을 사람들과 형제자매들의 바른 태도가 내내 낯설게 느껴졌다. 어머니의 놀라운 가르침이 비춰진 것도 아니었고 납득될 만한 설득의 여지가 있지도 않았다. '그의 형제자매가 다른 집에 비해 유독 많아서 건들일 생생각을 못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존중의 문화가 내겐 지속적으로 신선했다. 형제들의 축구경기에서도 크리스티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동등했다. 그를 불리한 신체조건을 배려하기 위해 공을 살살 차지도 않았다. 오히려 경기의 빠른 진행을 위해 그를 옮겼고 부축해주는 것은 반칙이라며 그가 왼발로만 승부를 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이런 행동은 사실 ‘당연한’ 것임에도 내가 놀랍게 여기고 있었다 것이 참 부끄러웠다.

적어도 영화 속에서 뇌성마비는 크리스티가 가진 고유한 특징일 뿐이었다. 마치 내가 왼손을 쓰는 것이 남들에겐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이런 점에서 짐 쉐리단 감독이 관객에게 보여주길 원한 것은 오직 크리스티브라운의 일대기인 것으로 보인다. 장애를 극복한, 장애를 딛고 일어난- 등의 수식어는 배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크리스티 브라운의 청년 시절은 그의 형제자매와 다를 바 없이 인생의 고뇌와 사랑의 아픔, 내일의 희망이 난무했다. 다행히라고 해야할지, 그는 1인분을 거뜬히 해낼 수 있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도 꾸리게 된다.

이렇듯 그가 한 명의 평범한 사람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기질과 특성을 이해하고 동등한 인간으로서 대해준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발달장애를 가진 우리 오빠 생각이 안날 수가 없었다. '오빠가 어렸을 때 오빠의 기질과 특성을 조금 더 잘 이해해주고 기다려 줄 수 있는 은사님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우리 부모님이 오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너무 먼 길을 돌아온 건 아닐까'하는 아쉬움이 반정도 들었고, 이미 현재진행형인 오빠의 삶 가운데 내가 뭔가 해주려고 하기보단 그의 삶 자체를 응원하고 존중하는 것이 형제로서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반정도 들었다.

약간 사담인데, 오빠는 이따금 나와 내 남자친구의 관계를 부러워하면서 본인은 언제쯤 여자친구를 사귀고 결혼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한다. 어떤 여성이 본인에게 조금만 친절을 베풀어도 금방 마음이 설레어 며칠이고 그녀의 이름을 되뇌이며 자랑을 할 때도 있다. 오빠에게 결혼은 실현할 수 없는, 아니 해선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또, 꼭 그러란 법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오빠가 크리스티처럼 뼈아픈 성장을 딛고 조금만 더 성숙해진다면, 본인의 앞가림을 넘어 가정을 꾸릴 만큼의 노동력이 생긴다면...? 이라는 가정 하에 잠시나마 희망을 품어본다.

오빠가 보고싶다. 사랑하는 우리 오빠의 뼈아픈 성장에 동생으로서 할 수 있는 만큼 응원하고 다독이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는 건 꼭꼭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크리스티가 사랑의 아픔을 견뎌낼 때 그의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콜박사와 그를 위해 작업실을 만들어준 어머니와 아버지와 형제들, 새로운 사랑 앞에서 다시 희망을 가진 그의 눈빛을 믿어주며 차에 오른 가족들처럼. 꼭, 꼭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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