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 작가를 만나려고 순천을 다녀온 이야기
1, 2월 동안 신문기자 인턴을 했다. 2달 간의 인턴 생활이었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지쳤다. 언론사라는 곳은 인턴이 고작 두 달 버티기에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걸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반은 성공이다. 아무튼 인턴이 끝나고 5일 만에 바로 개강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개강한 이후에도 믿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개강 첫 주의 금요일 수업을 빠지고 1박 2일 여행을 갔다. 순천행이었다.
순천으로 향한 이유는 아주 명확했다. 김승옥 작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작년 대학로에서 김승옥 수채화 전시회를 했을 때도 찾아갔지만 그때는 실패했다. 김승옥 작가는 요새 서울과 순천을 오가며 생활하는데 주말에는 주로 순천 집필실에 내려간다는 인터뷰를 봤다. 순천은 순천만으로 유명하고 순천만 안에는 순천 문학관이 있다. 순천 문학관은 동화 <오세암>으로 유명한 정채봉 문학관과 김승옥 문학관으로 구성돼 있는데, 김승옥 문학관 한 켠에는 집필실도 마련돼있다. 그러니까 혹시나 순천 문학관의 집필실에 내려왔을지도 모르는 김승옥 작가를 만나기 위하여 나는 용산역에서 KTX를 탄 것이다.
김승옥의 글을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표현은 부족하다. 지금은 덜 하지만 한때의 나는 김승옥이 만들어놓은 세계에 흠뻑 빠져있었다. 새벽에 방에 홀로 누워 <환상수첩> 같은 작품들을 읽다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곤 했다. 그 시절 나는 인간은 서로를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혼자 있으면 외로워하면서도 스스로 나를 고립시켰고 매사에 더 시니컬해졌다. 뒤늦은 사춘기 비슷한 게 왔던 것도 같다. "너희들은 행복하지? 나는 괴롭다. 너희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온몸으로 표현하며 살았다.
김승옥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나도 괴롭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설픈 연민이나 동정 같은 것이 아니었다. "너도 괴롭지? 나도 괴롭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라는 자기계발서의 메시지였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책을 덮어버렸을 것이다. 그랬다면 순천으로 내려가는 이 기차에 몸담을 일도 없었겠다. "너도 괴롭지? 나도 괴롭다. 하지만 너와 나는 결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너는 너를 이해할 수도 없고 나는 나를 이해할 수도 없다"고 그는 말했다.
오후 2시쯤에 순천역에 도착했다. 수업을 빼먹어서 그런지 하늘이 유난히 맑았다. 역 앞에서 점심으로 국밥을 먹었는데 역시 맛있었다. 전라남도의 음식점은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시간이 늦어 바로 순천만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잘못 내려 한참 헤매다가 겨우 동문을 찾았다. 김승옥관은 순천만에 있는데 순천만은 순천만 국가정원 안에 있다. 내가 김승옥관에 가기 위해서는 정원 티켓을 사야 하고 정원에서 순천만으로 넘어가는 스카이큐브 티켓을 사야 했다. 티켓 값만 2만 원은 나왔던 것 같다.
돈 아까웠지만 정원 등등은 다 무시하고 바로 김승옥관으로 넘어갔다. 김승옥 작가가 있을까. 그를 만날 수 있을까. 만나면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매우 떨렸다. 김승옥관은 초가로 꾸며져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아담했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관람객도 없었고 김승옥 작가의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전시관을 구경했다. 작가의 생애부터 현재까지 자세히 정리돼 있었다. 특히 <서울, 1964년 겨울> 원고가 전시된 자리에서 오래 서 있었다. 군 복무를 할 때 <서울, 1964년 겨울>을 원고지에 필사한 적이 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육체적 접촉이 끌리는 것처럼 어떤 글을 좋아하다 좋아하다 보면 읽는 것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시점이 온다. 나는 그럴 때면 원고지를 사서 베껴 쓴다. 60년대의 서울의 겨울의 포장마차의 갈 길 잃은 청년들은 괴로워한다. 보통 이 소설을 60년대의 서울이라는 시대성을 반영해서 많이 읽는데, 그러한 거대담론이 비집고 들어오기에 포장마차는 좁고 비릿하고 눅눅하다. 그래서 포장마차 장면을 좋아한다. 대학 2학년 때 어설프게 써봤던 첫 소설이 포장마차 씬으로 시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작품의 원고가 전시돼 있는 것이다. 눈이 반쯤은 돌아갔던 것 같다. 가방에서 필사 원고지를 꺼내서 한 자, 한 자 대조하며 읽어나갔다. 원래의 제목에는 '서울'이라는 단어가 빠져있었나 보다. 김승옥을 만나지 못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