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가가치세법을 공부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세법은 양이 방대하고 미친듯이 복잡하기 때문에 세법을 공부하면서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데 나는 실제로 다른 생각을 했다. 나는 생각이 많다. 신이 사람을 만들 때 사람 한 명당 생각 한 줌씩을 넣어줬다고 한다면 내 차례에 와서는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생각의 재고를 모조리 털어버린 것이 분명하다. 아니라면 생각이라는 것들이 대부분 상하기 직전의 모양을 하고 있을리 없다. 많은 생각은 삶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어찌됐든 세법이라는 딱딱한 공부를 하면서도 말랑말랑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약간의 장점이 된다.
오늘의 생각에는 미래의 내 아이가 등장했다. 아이가 뭔가 말을 걸었는데 아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나는 가장 먼저, 내가 결혼을 했다는 사실에 놀라야 했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 좋다. 그런데 글 쓰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글 쓰는 행위를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예민하고 쓸쓸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문학적인 마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과 한 평생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남은 생이 벌써부터 끔찍해져 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글을 쓴다는 사실로부터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부잣집 자식이라서, 잘 나가는 변호사라서 선을 보는 것과 똑같이 추한 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도 싫다. 까다로운 사람은 굶을 확률이 높은 것이 이치다.
나의 아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제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다. 나는 앞으로 시를 쓰겠다. 내게 닥칠 어려움을 이겨낼 각오는 이미 하고 있으니까 아빠는 이해를 해달라. 다른 일은 전혀 하고 싶지가 않다. 어쩌면 그것은 가상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