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는 세상이 '우리'를 열고 들어왔다 (1)
살면서 어느 순간까지는 삶을 '내 의지'로 선택하고 끌고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일부는 사실이었지만, 생각해보면 내 의지가 아닌 것들, 생각지 못했던 것들, 의도치 않았던 것들로 삶은 더 빼곡히 채워져 있다. 목표는 A였는데 어쩌다 보니 B로 가게 되었고 그런데 거기서 C가 열렸다. 당시에는 A에 가지 못한 것을 '실패'라고 여겼으나, 통틀어 생각해보면 C로 가는 과정이었을 뿐. 그리고 C는 또 새로운 F로 가기 위해 버스를 갈아타는 정류장이었다.
20대의 한복판에서 나는 이런 것들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다.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불면증을 겪었던 어떤 시기에, 나는 새벽의 푸르스름한 빛이 가득한 원룸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가 '애쓰지 말자'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내 마음속에서 스물스물 떠오른 것 같았지만, 마치 누가 머리에 써주고 간 것처럼 너무 선명하고 강렬해서 어쩌면 그때부터 내 삶의 모토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게, 대충 살자는 의미는 아니었다.
최선을 다하되,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되 마음을 너무 쥐어짜면서 뭔가를 너무 바라지 말고, 억지로 되게 하려는 식의 '애'를 쓰지 말자는 의미였다. 안 되면 안 되는 거고 되면 되는 거다. 될 건 되고 안 될 건 안 된다. 또 안 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 다음에 더 좋은 게 있기 때문이다. '더 좋다'는 것의 의미는 나에게 '더 맞는 것'이다. 회사도, 사람도, 사랑도 다 그렇다. 그렇게 모든 것들에 해탈한 것처럼 나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애쓰지 말자. 어차피 내 인생은 잘 풀려.
불면증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어느날 사라졌고 나는 그 이후 정말 그렇게 살았다. 조금 변하기도 한 것 같다. 큰 걱정을 거의 하지 않고 살았다. 고민도 하지 않았고,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어차피 계획은 매번 과정으로 변형되었고(실패했다고 쓰지 않는다.) 인생은 정말 나부끼는 억새밭 같았다. 산들산들. 다만, 오늘과 또 이번주는 잘 살려고 생각했다. 때로는 힘이 들게 쪽쪽 빨리면서(?) 가열차게 일하고, 최대한 많이 있는 힘껏 재밌게 놀았다.
그렇게 살고 있었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인생의 대사도 대단한 계획이나 결정 없이, 자연스럽고 '원래 그렇게 될 일'처럼 나에게로 와서 이루어졌다. 확신 같은 것은 이미 내가 2년 동안 보아온 그 사람에게 있었다. 별달리 '정말 내가 이 사람과?' 같은 생각도 없었고, '내가 생각해왔던 결혼은 이렇고 이렇게 해야겠군'하는 것도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내내 기쁘게 성사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찾아온 '아이'라는 카테고리는 조금 달랐다.
이것은 그냥 흐르는 물살에 내 몸을 맡겨두기에는 인생의 너무 많은 부분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바뀔 것 같았다. 지금까지의 변수나 과정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부분이야말로, 나는 내가 마음을 먹고 뭔가를 결정해서 내 '의지'로 컨트롤하고 싶어졌다.
다행히 내 주변에는 아기를 낳아 키우거나, 임신을 하고 있는 지인들이 많았다. 나는 진정으로 궁금해졌다.
'아기 물론 예쁘지만, 뭐 사람이라면 나와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이 한 번 안아보고 싶겠지만, 그런 거 말고.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그 '생명체'를 어떻게 세상에 놓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을까. 그 생명체의 인생은 너무도 내 손에 달려 있는데. 정말 모두 본인이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자격 운운까지는 너무 심각하다면, 자신이 있을까? 제대로 바르게 키울 자신이 다들 있을까? 그 생명체가 나중에 스스로 고난이도의 사고를 하게 되면서 (보통 중학교 고등학교 이런 때) 내 뜻대로 살아주지 않으면? 아,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니 꼭 내 뜻대로 살라고 할 순 없는 거구나. 그렇지만, 그래도 그때 가서 자식이 웬수가 되면 어쩌지?(내가 엄마한테 그랬던 것처럼). 대체 이렇게 대단하고 어마무시한 일들을 사람들은 어떻게 하기로 마음 먹고, 해내고 있는 걸까.' (시도때도 없었던 의식의 흐름 중 일부)
무엇보다 지금도 너무 달콤하고 재밌는 남편과 나 '둘의 시간'이 어쩌면 막을 내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컸다. 이미 너무 많은 육아 전쟁들을 보고 듣고 해온 터.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뭐든 할 수 있는 지금,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있는 지금. 이 '지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대체 아기를 갖겠다고 어떻게 마음 먹었어?"
아기를 낳았거나, 낳을 예정인 친구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대뜸 '오? 너 아기 가지려고?' 같은 반응이었다. 그건 아닌데, 그냥 그 마음이 정말 궁금하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낳아야 할지, 낳지 않아야 할지 도무지 '마음 먹는 것부터' 되지 않는다고.
재밌는 건, 10명 중 8명은 '딱히 뭘 마음 먹은 건 아니었고~' 같은 대답이었다. 어쩌다보니 생기기도 하고, 자궁에 문제가 있어 낳을 거면 시간이 별로 없다는 말에 얼른 가지기도 하고, 낳을까? 하던 중 생기기도 했다고. 그중 계회한 지인은 부모와 자식으로 이뤄진 '가정'을 꾸린다는 것에 대한 오랜 꿈 같은 것들, 아이들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꼭 낳고 싶었다는 이유 정도였다.
생각보다 대단한 것이 없었다.
그즈음 나는 남편과도 이야기를 아주 많이 했다. 우리는 아이를 가졌을 때와 가지지 않았을 때의 좋은 점, 안 좋은 점, 생겨날 일들 같은 것을 최대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또 지금 당장 어떤 결정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풀어두고 자유롭게 얘기하기로 했다.
닭볶음탕과 소주를 먹다가도, 집에서 평범한 저녁을 먹다가도, 침대에 누워 있다가도, 육아프로그램이 슬쩍 지나가는 순간에도 거부감을 갖지 않고 얘기해보려고 했다. 그런 시간이 좋았다. 결혼해서도 우리가 딱히 결혼했다, 부부다라는 느낌을 사실상 실감하기 어려웠는데, 남자친구같은 느낌에서 남편같은 느낌으로, 우리가 정말 '인생을 같이 살아가고 있구나' 생생하게 느끼는 시간이었다.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 와중에 재미를 느꼈다.)
결혼 2주년 여행을 다녀오고 몇 주 후, 나는 또 한 번 내 인생이 내 의지대로, 인생의 소매를 붙잡고 내가 가고 싶은 방향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님을 새삼 뼈저리게 깨달았다.
의미심장한 나름대로의 내 설문의 끝에 대단한 대답이 없었던 데에 대해서도 격하게 납득하게 되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임신 테스트기에 너무나 선명하고 빠알간 줄 2개가 떠있었기 때문이다.
방실방실 아조씨 | 포차성애자. 소녀 감성과 아저씨 취향 그 사이 어디쯤에서 소맥을 말고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