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서사 속 불균형, 트랜스 남성은 어디에?
미디어의 진보적 변혁이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이야기
글을 들어가기에 앞서, 필자는 남녀 갈등에 대해서 한쪽을 옹호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미디어와 사회의 역설적인 모습을 조명하는 것이 이 글을 작성한 목적이라고 명시해 두겠다.
최근 TV를 비롯한 레거시 미디어에는 종전에 보기 어려웠던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가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무지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예컨대 '성전환자' 다시 말하면 ‘성’이라는 천부적인 것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무지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는 단순히 레거시 미디어에만 한정된 변화가 아니다. OTT에서는 일찍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려는 시도를 해왔다.
'D.P. 시즌 2 중'예컨대 어떤 집단보다도 마초적임을 위신 하는 군대를 그려낸 드라마 DP에서는 드랙(Drag)을 하는 남성이 떠안아야 하는 사회적 부담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통념에서 벗어나려는 개인의 모습과 이를 가두려는 군대라는 집단의 대비에서 오는 괴리를 시청자로 하여금 몰입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묘사했다.
물론 지금까지 무지되어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려는 전환은 지극히 긍정적이며, 바람직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
다만 한 가지 의문스러운 점은 미디어가 이들의 이야기를 그려낼 때에 생겨난다. 물론 미디어에 의해 시각화되고 있는 집단은 다양하지만, 이 글은 앞서 예시로 언급한 미디어 속의 '트랜스젠더', '성전환자'에 더욱 초점을 맞추어보고 싶다.
요즈음 성전환자로서 미디어에 등장하는 방송인들은 모두 트랜스 여성이다. 과거에는 방송인 하리수, 최근에는 풍자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에는 드라마 DP에서 다루듯 드랙을 하는 남성들의 이야기도 미디어의 소재로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성전환자가 트랜스 여성만 존재할까? 왜 미디어는 이들의 이야기만 조명하는 것일까.
우리는 단순히 미디어의 표면적인 진보적 변혁에 안심할 것이 아니라, 트랜스라는 영역 내 트랜스 여성 바깥의 이야기들은 왜 미디어의 서사가 되지 못하는가에 집중해야 한다.
심지어 우리가 ‘트랜스 젠더’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하는 용례를 살펴보면 이 단어는 대다수 트랜스 여성에게 한정된다.
남성과 여성 모두 트랜스 젠더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젠더(Gender)'가 남성에게 한정되는 서술어가 아님에도, 자신을 남성이라고 칭하는 여성을 볼 때면 무엇이라고 칭해야 할지 곤란해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에 더해 많은 기사와 미디어는 트랜스 여성 방송인들에게서는 당당한 모습을 찾아내 조명하는 반면, 트랜스 남성을 다룬 기사나 미디어들은 모두 그들이 성별을 바꾸기로 결정한 후 남성으로서 짊어져야 했던 책무와 부담, 종국적으로는 사회에서 남성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를 강조한다.
무엇이 이렇게 어색한 모습을 빚어내는 것일까? 물론 복합적인 사회적 요인이 존재하겠지만, 필자는 다른 이유를 자처하고서라도 가부장제의 영향을 부정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드라마_사랑이 뭐길래가부장제,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이는 가장인 남성이 강력한 가장권을 가지고 가족구성원을 통솔해 가족구성원에 대한 가장의 지배를 뒷받침해 주는 제도를 말한다.
가부장제가 지난 시간 동안, 다시 말하자면 우리 내의 아버지 세대 혹은 그 윗세대에서는 강력한 사회 규범의 일환으로서 작동해 왔지만, 최근 그 힘이 몹시 약화된 것은 당연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시선으로는 마땅히 부당해 보이는 가부장제가 과거에는 작동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필자의 좁은 식견에서, 가부장제는 기본적으로 가장이 짊어진 책무와 부담의 신성함을 강조하며 작동해 왔던 것처럼 보인다.
신의 대리를 수행하는 제사장이 신성하게 여겨지는 모습에서 볼 수 있듯, 신성한 책무를 수행하는 가장 또한 가장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성 역할이 뚜렷하던 과거를 생각해 보자, 당시 가정의 안정에 드리운 위험으로 두드러지는 것은 가정의 불화와 같은 내부적 요인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속 가정의 존속을 사수해야 하는 외부의 것이었다.
때문에 가정의 책무와 부담은 외부의 위험과 맞서는 가장의 것으로 온전히 귀속되는 것처럼 보였다.
가정의 영위를 위해 공장 노동자로서 사회라는 위험이 도사리는 곳에 뛰어들어 돈을 벌어오거나 같은 것 말이다.
이러한 상황은 책무와 비례하는 정도의 권위를 인정하는 우리의 시스템과 혼합되었고, 그 결과 가장의 권위는 자연스럽게 사회에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 그리고 1인 가구의 증가와 같은 사회 변화가 고전적 개념으로서의 '가족'을 허물어뜨린 현재, 가부장제가 설 자리를 잃어버린 것은 자연스럽다.
다만 주목할 만한 점은 그럼에도 가부장제가 완전히 소멸되어 버린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가부장제는 이제 새로운 생존 전략을 취하고 있다.
flickr_Matt Hrkac 제공필자는 미디어 속 트랜스 젠더에 관한 논의에서 이러한 가부장제의 새로운 생존 전략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기본형이 남성인 자의 여성화는 권위에서의 자유로운 탈피로 보아 그 당당함을 찾아내려 노력하지만, 기본형이 여성인 자의 남성화는 남성이라는 위험을 동반한 권위에의 도전으로 자연스레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하면, 이 영역에서 아직 여성성을 기본형으로 부여한 그들에게 가부장제가 작동하고 있음을 부정하기에는 어려운 것 같다. 그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남성을 중심으로 한 가부장제가 ‘트랜스’의 영역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앞으로는 미디어가 그들의 서사까지 환대하며, ’그’로서의 그들의 모습 또한 자주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