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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제 Oct 13. 2024

장난감들로 마음을 치유하는 모래놀이치료

여러 가지 치료를 받으면서 방황하던 나는 드디어 다시 정신과에 갈 결심을 하고 집 근처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그 정신과의 선생님은 굉장히 상냥했어요. 하지만 계속 항우울제를 바꿔도 내게는 잘 듣지 않았습니다. 다만 불안한 증상에는 약이 잘 들었어요. 왜 항우울제가 안 들었는지는 나중에 내가 조울증인 것이 밝혀지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양극성장애 2형인데 이건 울증이 길고 조증이 약하기 때문에 우울증으로 오인을 많이 받는다고 해요.      


어쨌든 이렇게 정신과를 다니고 있을 때 예전에 상담을 받았던 상담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모래놀이치료 자격증을 받기 위해 실습을 해야 하는데 그 실습 대상자가 되어줄 수 있냐고요. 나는 당연히 해보겠다고 했지요. 사실 모래놀이치료가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했지만, 행운으로 다가온 치료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날 다시 떠올려준 게 참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치료실에 가니 책장들이 사방으로 있었고 책장에는 장난감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모래가 담긴 사각형의 틀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장난감들 가운데 마음에 들거나 지금 끌리는 것들을 가지고 오라고 말했습니다. 생각은 많이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 나는 선생님 말대로 그냥 ‘지금 그 순간’ 마음에 들어오는 장난감들을 골라서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아래 그림이 처음 모래놀이를 한 날의 그림입니다.        


모래놀이치료는 내가 장난감들을 골라 가지고 와서 모래 위에 배치하면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 상담 선생님과 이야기하면서 이루어집니다. 어떤 생각을 하면서 장난감들을 골라오는 게 아닌데도 모래 위해 펼쳐놓으면, 그것은 바로 지금의 내 마음이 되는 게 언제나 너무 신기했습니다. 나의 무의식이 눈 앞에 펼쳐진다는 것이 미술치료와 비슷했고 너무 좋았습니다. 게다가 모래놀이치료는 그림을 그리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이 그냥 장난감만 배치하면 된다는 점에서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구성의 이름은 '나만의 안식처'입니다. 아직은 밖에 괴물들이 노리고 있어 조금은 불안하지만 그래도 벽도 3겹이나 되고 마리아 님과 선한 대마법사가 함께 지켜주고 있습니다. 나는 도끼와 총들을 갖추고 있지요. 음식도 많고, 정말 위험해지면 날개 달린 말을 타고 도망가면 됩니다.      


이때는 그래도 전보다는 조금 마음과 외부 상황이 나아졌던 시기입니다.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그런 상태인 거죠. 그런 제 상태가 잘 표현되어 놀라웠어요. 모래놀이치료는 이렇게 모래상자 안에서 장난감들을 이용해 무의식과 감정을 표현하고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뒤에 어째서 이런 구성물이 나왔을까를 상담선생님과 말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내적인 통찰을 하게 함으로 심리치료가 가능하다고 하네요. 내가 느끼기에도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의 연못


처음에는 이렇게 외적인 상태에 대해서 주로 표현을 하다가 회기가 거듭될수록 마음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나는 모래 위에 호수와 회중시계를 계속 올려놓게 되었어요. 그것은 바로 나의 마음 깊은 속 기억들을 뜻했지요. ‘기억의 연못’라는 제목의 구성물을 시작으로 나는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됩니다. 다른 데서 못했던 엄마, 아빠에 대한 욕을 모래놀이치료를 하면서 실컷 하게 되었지요. 이상하게 말이 나오지 않았던 적나라한 이야기들이 모래놀이치료를 하면서는 쑥쑥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엄마, 아빠에 대해 여태까지 죄책감으로 아래 구성물처럼 못 본 체 하고 욕을 못 하고 있던 것들을 실컷 하면서 나는 마음속에 있던 한들이 조금씩 가벼워져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에 대해서 ‘가족조각이불’이라는 짧은 소설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상담 선생님에게 말하고 나 또한 자신을 돌아보는 글을 쓰면서 치료의 효과는 더욱더 커졌다고 생각합니다.


끔찍한 일들


이 구성물은 어릴 때 못 볼 것을 보고 말하고 싶었던 것들을 말하지 못 했던 저의 상태를 잘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힘들었던 제가 모래놀이치료를 하면서 '아, 내가 이런 상태였구나!' 하는 걸 깨달으면서 그때 말하지 못 했던 것들을 말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나는 마침내 이런 구성물을 만들게 됩니다.



이 구성물의 이름은 ‘앞으로 나아가자’입니다. 여기에는 무섭고 위협적인 상징물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따듯한 빨간 불이 심장처럼 피어오르고 있고 보석처럼 소중한 시간과 글을 쓸 노트북이 있습니다. 나는 마리아 님의 가호 아래 친구들과 함께 안전한 안식처에 있습니다.      


비슷한 구성물을 여러 번 만들면서 모래놀이치료는 마침내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나에게 모래놀이치료는 마음 깊은 곳의 한과 두려움을 눈앞으로 끄집어내 인식하게 하고, 말하게 하는데 굉장히 효과가 좋았던 치료입니다.      


성인들이 하는 치료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사진들과 함께 소개해보았습니다. 상담 선생님과 솔직하게 마음을 나누는 게 좀 힘들고, 매개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분들이 있다면 권합니다. 그럼 오늘도 평온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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