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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제 Oct 17. 2024

자조모임의 활용

심리치료가 도움이 많이 되었지만 저에게 또 하나 도움이 된 게 있었습니다. 바로 자조 모임입니다. 자조 모임은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외국에는 미드나 영화 등을 통해 많이 보이곤 하지요. 자조모임이란 그럼 무엇일까요? 바로 ‘비슷한 질병과 심리·사회적 문제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서, 서로의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고 그 해결을 지지해 주면서 보다 효과적으로 자신의 삶을 조절하기 위한 자발적인 모임’이라고 합니다. (출처 : 상담학 사전, 김춘경, 2016)   


저는 이런 자조모임을 여러 개 거치면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비슷한 문제나 아픔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 공감하기 쉬웠고 각자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해결방법들을 배울 수도 있었지요. 지지나 응원도 다른 사람에게서 받는 것보다 더욱 진하다고 느꼈습니다.


우선 내가 제일 먼저 찾았던 자조모임을 소개합니다. 바로 알아넌’ (http://www.alanonkorea.or.kr)이라는 알코올중독자의 가족이 서로 도우며 격려하기 위해 모인 모임입니다. 저는 아빠가 알콜중독이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런 괴로움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제대로 말해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런 아빠를 가진 집은 우리 집뿐이 없는 줄 알았고, 커서는 흠이라고 생각해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다가 익명의 알콜중독자 모임인 A.A 모임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 자매모임인 알아넌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알아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본 저는 너무 마음이 뛰었습니다. 나처럼 술을 먹는 가족 때문에 힘든 사람들이 매우 많았고 모임도 전국적으로 있었습니다. 모임들을 여기저기 훑어보다가 그리 멀지 않는 곳에서 내 또래의 자녀들이 모인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나는 바로 그곳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모임은 익명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므로 별칭을 썼으며, 모임 안에서 이야기된 것들은 다른 곳에서 이야기할 수 없도록 하는 원칙이 있어서 더욱 마음에 안전감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거의 모든 자조 모임의 원칙이기도 합니다. 모임은 일주일에 한 번씩 있었습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자신이 지난주 어떻게 지냈는지와 힘들었던 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는데 참 누구 이야기를 들어도 많이 공감되었습니다. 그리고 듣고 나면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해주었습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그 모임 구성원 중 알콜중독인 가족이 죽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는데 웃프게도 그것 때문에 모임원들에게 부러움을 받았습니다. 아빠가 죽은 게 부러운 일이라니 다른 사람 같으면 이해 못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알콜중독인 가족 때문에 계속 고통을 받아온 사람이라면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자조 모임은 성폭력 생존자들이 모인 자조 모임입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한 달에 마지막 수요일에 진행하는 이 모임은 내가 이 세상에 나만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친족 성폭력의 아픔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해준 아주 고맙고 소중한 모임입니다.


처음에 모임에 갔을 때는 기도 죽고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어느새 모임의 분위기에 푹 빠지고 말았습니다. 많이 설명하지 않아도 같은 경험을 공유한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다른 이들보다는 몇 배로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서로 받아들여 주고 있고 진심으로 듣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어디 가서 이렇게 마음 편히 눈치 안 보고 이런 이야기를 남들 앞에서 글도 아니고 입으로 소리 내 말 할 수 있을까요.


평온해 보이던 얼굴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예고도 없이 일그러지고 눈물이 터져 나옵니다. 울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사람이 이야기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합니다. 몇 번이나 이런 모습을 봤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그랬습니다.


사실 나는 몇 년 전부터 혼자서 글쓰기로 예전에 기억들을 많이 질리도록 써왔고, 혼자서 울기도 눈알이 빠지도록 엄청나게 울었습니다. 치유 글쓰기 워크숍까지 했기 때문에 이제 더 그 일들을 이야기해도 눈물이 나오지는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우는 모습을 보다가 나도 갑자기 눈물이 슬그머니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내용이 너무나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그런 줄 알았지 내가 이야기를 할 땐 울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몇 번이나 몇십 년이나 생각하고 떠올리고 글로 썼던 일들이 아닌가요.


하지만 말을 하기 시작하자 나도 모르게 갑자기 말문이 막히고 목소리가 떨리고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습니다. ‘어, 울기 싫은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든 말은 계속했는데 목소리도 엉망진창, 흐느끼면서 간신히 말을 멈췄습니다.


이젠 글로 쓰거나 기억을 떠올릴 땐 눈물이 제법 안 나오게 되었는데 '소리 내 말하니' 또 이렇게 다르구나 싶었습니다. 친족 성폭력 경험이 개인의 영혼에 어떤 손상을 마치는지 너무도 잘 아는 동병상련의 여성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듣고, 또 내가 '소리 내 말하는‘ 그 시간은 분명히 무언가 달랐습니다.


그 증거로 그 모임에 다녀온 저는 산송상처럼 지내지 않고 돌아다니고 밥도 먹고 에너지도 조금은 생겼습니다. 또한 내가 일상생활, 직장생활하면서 부딪혔던 여러 가지 문제들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무척 안심되었고 또한 그러므로 더더욱 어떻게든 그런 나를 보듬고 조금씩 천천히 노력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의지가 약하고 약해빠진 영혼이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니 얼마나 좋았던지. 이유 없이 혹은 미량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오는 갑작스러운 무기력증, 감정의 오락가락, 심장이 마비되는 느낌, 아무것도 못 하게 되는 마비 증상 등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내가 오로지 느낄 수 있는 '공포'라는 느낌마저 나와 비슷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분과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의 경험을 나누니 무척이나 마음에 힘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제가 만든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 모임‘입니다. 이 자조 모임은 여태까지 내가 다닌 자조 모임을 본으로 해서 만든 모임으로 모임의 형식은 비슷합니다. 우울하거나 불안하거나 한 마음이 힘든 사람들이 익명으로 한자리에 모여 한 주에 있었던 힘들었던 일이나 혹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부를 그런 식으로 진행하고 2부에는 마음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책을 같이 읽어보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눈치를 보면서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던 분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지 이야기의 양이 많아져 심리학책 이야기를 별로 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게 좋았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많이 할수록 좋은 게 우리 이야기 모임이니까요. 한 사람이 이야기하면 여러 명이 그 사람의 이야기에 응원이나 지지의 이야기를 해주거나 문제해결을 요청하면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해주기도 했습니다. 서로 공감이 되고 감정이 이입되어서 우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야기 모임을 다니면서 좋아져서 다시 회사로 돌아가거나 안 나오게 된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축하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졸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오픈카톡으로도 서로 힘든 이야기를 하는 자조 모임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듯합니다. 만나는 것보다는 아쉬울 수도 있지만 이런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좋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저 역시 요즘은 오프라인이 아닌 오픈카톡을 통해 마음이 힘든 분들을 위한 이야기모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조모임 만들기 가이드북'을 보건복지부에서 만들어서 배포하고 있으니 직접 자조모임을 만든다면 다운받아서 참고하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 마음성장 프로그램 토닥토닥 온라인 자조모임 자료 다운받기

https://www.ncmh.go.kr/research/board/boardView.do?no=3914&bn=SNMH_COMMON_BOARD&menu_cd=03_02_00_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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