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랫동안 우울과 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우울과 무기력이 굉장히 심했지요. 그런 증상 중 하나가 침대에서 일어나기 힘든 것입니다. 계속 자는 과수면을 하기도 하고 그냥 무기력감에 시달리며 누워있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고 누워있던 어느 날 저는 너무 절망스러워서 힘들더라도 세수라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거의 기어가다시피 욕실에 갔어요. 욕실에 도착해서 간신히 물을 틀고 세수를 하는데 그러고 있는게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나더라구요. 세수를 하는데 눈물이 나니까 계속 씻게 되고... 참 어떻게 보면 웃픈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든데도 일어나서 세수를 했다면 이건 칭찬받아야 하는 거 아냐? 근데 다른 사람들은 내 상황 모르고 세수했다고 칭찬은 안 해주겠지. 그러니 나라도 나를 칭찬해주자!”
이런 생각이 들어서 제 방으로 돌아와 “노트에 세수했음!” 이렇게 크게 쓰고 집에 있던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었습니다.
<살아있으니까 귀여워> 중, 조제
이게 바로 저의 자기 칭찬 일기의 시작이었어요. 저는 전에는 자기를 칭찬할 생각을 거의 못 해봤고 자책이 심했어요. 특히 별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세수 같은 것에 칭찬할 생각은 더군다나 못했는데 막상 해보고 나니까 기분이 좀 괜찮았습니다.
그래서 ‘계속해보자!’라는 생각이 들고 기분이 조금 나아지니 힘도 조금 생겨서 인스턴트 컵밥이지만 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밥 먹은 후에 칭찬 일기장에 ‘밥 먹었음!’ 이렇게 쓰고 또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었지요.
저는 하루에 제가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두 가지 일이나 했던 것입니다. 칭찬 일기장을 바라보는 제 기분이 왠지 뿌듯했습니다. 그뒤로 저는 세수하기, 밥 먹기, 샤워하기, 산책하기 등 난이도를 조금씩 높여 가면서 행동을 했고 그 역시 칭찬 일기장에 하나하나 적었습니다. 텅 비어있던 제 하루가 자신에 대한 칭찬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어요.
물론 항상 이렇게 잘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또 못 일어나게 되는 상황이, 아무 것도 못하게 되는 상황이 왔습니다. 그럴 때를 위해 저는 저만의 주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바로 이겁니다.
<살아있으니까 귀여워> 중, 조제
아무것도 못 할 때 우리는 자신을 자책하기 쉽습니다. 그러니 그 시간을 견디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지요. 그래서 만든 문장이에요. 아무것도 못 할 때 이제부터 자책을 하지 말고 ‘내가 고생하고 있구나...’ 생각해주시면 좋을 듯 합니다. 자책은 채찍과 같아서 마음에 맞으면 무엇을 할 에너지를 오히려 없어지게 만들거든요.
자, 칭찬 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그러면 칭찬 일기를 쓰게 만든 우울과 무기력, 그리고 번 아웃의 원인이라고 제가 생각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해드리겠습니다. 이것 또한 저의 경우에서 생각해낸 것입니다.
우리는 자라면서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칭찬을 별로 받지 못하고 야단이나 지적을 많이 받고 자라왔습니다. 아니면 무조건적인 사랑이나 칭찬이 아니라 조건적인 사랑을 받을 때가 많았지요. 이렇게 자라온다면 마음속에 자신을 칭찬하는 긍정적인 소리보다는 자신을 자책하는 부정적인 면박꾼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내면의 면박꾼은 있는지도 모르게 자책을 만들고 완벽주의를 만듭니다. 무엇을 해도 부족함을 느끼게 하고 더 노력하게 채찍질합니다.
이런 것에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재 그 자체를 받아들여 주기보다는 그 사람이 성취한 것들로 사람을 판단하니까요.
저는 이것을 생각해보고 더욱더 저 자신을 칭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내면의 면박꾼이 제게 뭐라고 지적을 하면 그걸 그냥 지나치는 게 아니라 인식하고 좋은 말들로 반박하기로 했습니다.
예를들어 요즘도 세수하고 칭찬 일기에 쓰면 "뭐 그런 일로 계속 호들갑이야!" 하는 말이 가끔씩 들립니다. 그러면 이렇게 속으로 대답합니다. "내겐 세수하는 일이 지금도 큰일이야!"하고요. 이런 식으로 계속 내면에서 들리는 저를 깎아내리는 말에 좋은 대답을 해주다 보면 면박꾼의 면박도 조금씩 옅어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신기하게도 우울과 무기력도 조금씩 나아지게 되었습니다.
자, 그럼 이렇게 자기를 칭찬하다 보면 도착하게 되는 ‘자책에서 자기 자비, 자기 사랑으로의 이동’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책을 많이 하던 저는 이제 칭찬노트를 쓰면서 자책이 많이 덜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시절과 사회분위기 때문에 자책을 많이 하다가 이제야 칭찬 일기 덕분에 덜 하게 되었는데 자신을 칭찬하는 상태에서 더 나아가는 건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과연 그건 무엇일까?'
그렇지만 자신을 사랑한다라... 그 개념은 저에겐 너무나 생소하고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본 것들 중에 자기 자비라는 말이 저에게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기 사랑으로 가는 징검다리처럼 느껴졌지요.
자기자비라는 것에 대해 여러가지 말이 있지만 제가 쉽게 받아들인 것은 자신을 함부로 비난하지 말고 친절하게, 자비롭게 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친구나 반려동물을 대하듯 자신을 대하는 것이지요. 좋아하는 친구가 잘못했다고 막 욕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저는 이렇게 자기 사랑을 향해 가는 징검다리인 자기 자비에 아직 머물러 있습니다. 자기 사랑이 무엇인지는 저도 더 공부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기 자비를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훨씬 쾌적하게 느껴지니 참 좋을 따름입니다.
요즘도 과수면을 아예 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보다는 짧고 하루 이틀이면 일어나는 편입니다. 예전에는 사일이고 일주일이고 했으니까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칭찬 일기 쓰기, 하루에 해야 하는 일들로 루틴을 느슨하게 만들고 지켜보기, 가능하면 짧게라도 밖에 나가보기 등이지요. 어렵지만 실천해보려고 합니다.
또한 최근에 무기력에 대해서 깨달은 일이 하나 있습니다. 사는 게 어린 시절부터 불행했던 저는 행동하는 것이 아프고 힘든 삶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느껴서 가만히 있기를 무의식중에 선택했던 듯 싶습니다. 주로 가만히 앉아 책을 보는 것으로 삶에서 도피했었지요. 그런데 요즘 삶이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은데도 그 습관이 계속 내려왔던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이걸 깨닫자 무기력증이 조금 덜해졌습니다. 움직이고 행동해서 내 삶에 참여하고 싶어졌습니다.
아,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정말 무기력과 우울 증상이 심하면 정신과를 이용하는 것을 권합니다. 너무 심할 때는 약을 먹고 어느 정도 상태를 올리는 게 필요하거든요. 현대 의학의 힘을 빌리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번엔 저를 오래 힘들게 했던 우울과 무기력증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