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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제 Oct 20. 2024

부모와 정서적으로 독립하기

나이를 먹어가면서 부모와 정서적으로 독립하는 건 누구에게나 아주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어린 시절 부모 때문에 상처가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더 중요한 일이지요. 오늘은 그래서 저의 예를 들어 마음에 부모로 인한 아픔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서적 독립 방법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또 도움이 된 책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부모와 정서적으로 독립을 하기 위해서 사실 우선적으로 가장 필요한 일은 물리적으로 독립을 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야 마음에서 멀어지게 할 수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사정상 그렇게 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고, 또 물리적으로 분리가 되었다고 해서 꼭 정서적으로 독립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마치 끈적끈적한 검은 타르처럼 부모가 심어준 독은 마음속에 남아서 저를 괴롭혔습니다.     


어린 시절 학대를 받고 자라서 트라우마가 있는 제게 부모와의 연락은 그 트라우마를 자꾸만 건드리는 폭탄 같은 것이었지요. 알콜 중독이었던 아빠는 일찍 돌아가셨지만 엄마와 연락이 되면 전화를 받고 나서 울기 일쑤였습니다. 아직도 어릴 때처럼 엄마가 커보이고 무섭고 엄마의 나쁜 말에 상처를 크게 받았지요.


하지만 어느날 30살이 넘어서도 계속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보았는데 일단 <독이 되는 부모>라는 책이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자식들에게 독이 되는 부모들을 분류해서 대처하는 방법들을 알려주는 책인데 아주 좋아요.               

                                       

독이 되는 부모


책을 읽으면서 부모는 나를 낳았으니까 돌볼 의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어, 효도나 부모님의 은혜라는 개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나를 키운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그럴 수 있지만 고마운 일에서 그치는 것이지 그게 무슨 갚아야 할 은행빚 같은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마음속 부모에 대한 고정관념이 달라지면서 차차 엄마가 전화를 해서 무슨 말을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들을 수 있게 되었고 뭐라고 하면 담담하지만, 반발도 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책 속에 나오는 부모와의 대면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모와의 대면은 편지로 할 수도 있고 직접 만나서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처음엔 겁이 나서 상담 선생님을 가운데 두고 삼자대면을 하는 형식으로 했어요. 나는 엄마에게 어릴 때 엄마가 나를 때렸던 것들과 나를 방치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참을 말했지만 엄마는 기억이 안 난다고 했습니다. 맥이 빠졌지만, 엄마에게 내가 가슴 아팠던 일에 대해 말할 수 있던 것만으로도 조금 기분이 나았어요.     


두 번째로 내가 단둘이 있을 때 다시 한번 말을 했을 때 엄마는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냈으면 됐지! 그런 걸 아직까지 기억해서 날 괴롭히냐!”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엄마에게 말하지 않기로 했어요. 엄마는 내가 바라는 대로 사과를 하거나 용서를 구할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책에도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부모와 대면한다고 해서 부모가 당신을 인정하거나, 사과하거나, 자신들이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사실이 없다고 잡아떼거나, 잊어버렸다고 하거나, 어린 시절에 문제를 일으킨 걸 들먹이면서 되레 당신을 비난하거나 화를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하는 것으로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것은 이미 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이 작업은 당신을 위한 작업이지 부모를 위한 작업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255)     


맞는 말이었습니다. 이 작업은 엄마의 반응과 상관없이(반응이 좋으면 좋았겠지만) 나를 위해 한 작업이었습니다. 나는 엄마가 날 위해 언젠가는 상냥한 엄마가 될지도 모른다는 부질없는 환상에서 벗어났습니다. 엄마는 나를 슬프게 한 사람입니다.         


저는 부모와 정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부모 욕(?)을 실컷 했고, 부모에 대한 동화를 쓰면서 글쓰기 치료도 했습니다. 제가 쓴 동화의 제목은 <엄마 아빠 재판소>입니다. 딱 느낌이 오지 않는가요? 아이들이 잘못한 엄마아빠를 재판하는 내용입니다. 쓰면서 정말 후련했어요.     


                                                                

엄마아빠 재판소



우리는 그냥 태어났습니다. 낳은 이상 키울 의무가 있습니다. 은혜나 빛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고마울 땐 그냥 고맙다고 말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면 서로 돕고 배려하면서 살 수는 있겠지만 강요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엄마에 대한 저의 감정은 죄책감에서 건강한 분노로 변했고, 그 모든 것이 다 타오르고 나서 지금은 그냥 늙고 병든 한 인간이라는 느낌이 가장 많습니다. 예전에 아이의 마음으로 무섭고 힘들어했던 그 사람이 아닙니다. 미워하고 분노를 터뜨리던 사람도 아닙니다. 그냥 한 인간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되고 나서 나는 굉장히 편해졌습니다. 과거의 아픔으로부터도 많이 자유로워졌습니다.     


부모와의 대면은 꼭 살아있을 때만 할 수 있지는 않다고 합니다. 마음에 힘이 생겼을 때 이미 돌아가셨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럴 때 <독이 되는 부모>에서는 무덤 앞에서 편지를 읽거나 사진이나 빈 의자를 앞에 두고 큰 소리로 편지를 읽어도 좋다고 합니다.     


엄마와의 대면은 살아있으니까 눈앞에서 했지만 아빠는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였습니다. 나는 아빠와의 대면을 편지로 했습니다. 되게 여러 번 글을 썼는데 쓰면 쓸수록 마음이 가벼워지는 듯했어요. 꼭 읽거나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더라도,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리되고 좋아졌습니다.   

  

부모에게 응어리가 많은 분들은 많은 분은 먼저 편지를 써보기를 권합니다. 처음부터 만나서 대면하기는 너무 힘들고, 편지를 보내든 안 보내든 효과가 있으니까요. 편지를 봐주고 편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면 저에게 보내셔도 좋습니다. 열심히 읽고 답장을 보내드리겠습니다. (편지는 이메일 로 보내주세요 xxeen@naver.com)         


덧붙여서 부모에게 명의를 빌려주거나 월급을 맡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 돈, 내 권리를 꼭 잡고 있길 바라요. 그리고 이렇게 속으로 마음 정리를 계속했는데도 나를 해치는 행동을 계속하는 부모와는 연을 끊을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정말 힘든 일이지만 나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언제나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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