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치킨의 맛은 어떠십니까?

가족조각이불

by 조제

아빠는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일을 안 하고 있었는데, 그에 반비례해서 술을 먹는 양은 점점 늘어갔다. 어릴 때부터 그랬지만 그때는 거의 매일매일 취해 있었고, 날이 가면 갈수록 그의 정신도 급격히 무너져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게 '어떤 파국'을 향해 서서히 하지만 확실히 굴러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때 취업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야근이 많아 힘들었고, 사람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사회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침에 출근할 생각을 하면 막막하고 겁이 나서 혼자 울다 잠들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때 당시 우리집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나뿐이 없었기에 아무리 무섭다고 해도 맘대로 그만둘 수는 없었다.


아빠는 계속 술을 먹었고 취했고 주정을 부렸고 맑은 정신일 때가 별로 없었고, 엄마는 우울하며 신경질을 냈고 아빠와 악다구니하며 싸웠으며 삶에 한탄했고, 결혼해서 나간 큰오빠는 현금서비스를 받아 빌려준 돈을 갚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신경이 날카로웠고 조금만 건드려도 마구 울 듯한 기분이었다. 돈도 항상 모자랐다. 그리고 그때 그일이 있었다.


어느 주말, 아빠는 역시 술에 취해 내게 치킨이 먹고 싶다고 졸랐다. 그때 당시 치킨 한마리는 만 얼마 쯤. 그정도 돈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때 난 앞에 말해다시피 사는 것에 너무 지쳐있었고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고 괴롭히기만 하는 것 같아 하루하루 사는 게 너무너무 힘들었다.


앞으로 납입기한이 몇년이나 남은 학자금대출을 꼬박꼬박 갚는 것도 힘들었고, 적금도 좀 들고 싶고, 책도 더 사고 싶고, 친구들이 간다는 해외여행도 한번쯤은 가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그냥 쉬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특히 가족이 없는- 곳에 가서, 잠시라도 아무 걱정없이 악몽없는 잠을 실컷 자고 싶었다. 누군가, 그 누군가, 제발 날 좀 안아주고 사랑해주었으면 했다.


그런 내게 치킨을 사달라는 아빠의 술 취한 얼굴과 목소리는 너무나 끔찍했다. 그의 오래된 무능력함과 나약함이 너무 미웠다. 날 낳지 말지, 왜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되었지? 그럴 능력도 안 되면서. 그러면서 내게 용돈을 바라거나-그래봤자 다 술 먹는데 쓸- 먹고 싶다고 치킨을 사달라고 하는 그 뻔뻔함이 진저리나도록 싫었다.


치킨 같은 거 비싸지도 않지만, 치킨 같은 거 까짓 사줄수도 있지만, 사주기 싫었다. 그래서 "지금 현금 없어"라고 말하고 내방에 들어가버렸다.


그뒤 얼마후 아빠는 추석 때 역시 술을 먹고 성묘를 갔다가 산에서 넘어져 갑자기 뇌출혈로 떠나버렸다. 마지막 기억조차 술을 먹은 그를 구박하는 나였다.


전화로 소식을 듣고 택시를 타고 가던 나는 무의식중에


"아빠 차라리 죽어주세요. 식물인간이나 반신불수가 돼서 우리 고생시키지 말고 제발... 병원비가 얼마나 많이 나오겠어요. 그럼 나 너무 힘들어요. 지금도 너무 힘든데..."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공교롭게도 아빠는 내 생각대로 혼수상태로 응급실에 실려와 그뒤로 눈한번 못 뜨고 숨을 거뒀다.


그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럴수밖에 없었고 아마 똑같은 상황이 되도 또 그럴 것이다.

안다. 나는 그때의 나를 이해한다. 그리고 그때도 이해했다. 스스로를 애도한다.


하지만 그뒤로 난 그때문에 오래도록 죄책감에 떨었고, 아빠가 날 원망하며 지옥에서 날 데리러 올거라는 근거없는 공포와 환상에 시달렸으며, 오래도록 악몽에 고통스러워하며 서서히 미쳐가야만 했다. 몇년간이나.


그뒤 몇년간 나는 닭을 먹지 못했다. 치킨집 간판만 봐도 구역질이 났다. 거식증세가 나타난 것도 그때쯤부터였다. 나는 사실 그전까진 치킨을 참 좋아했다.


그렇지만 시간은 흘러가고 죽지 않는 이상 사람의 상처는 아주 미세하게라도 조금씩 나아진다. 몇년이 지난 어느 아빠의 기일에 치킨집을 지나던 난 고소한 치킨 냄새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구역질은 나지 않았다.


나는 가게문을 열고 들어가 떨리는 목소리로 치킨을 주문해 뜨거운 프라이드 치킨 한마리를 샀다. 들고 오는데 치킨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올라 배가 고파졌다. 나는 아빠 사진밑에 치킨을 두고 엄마와 추도기도를 한다음, 비로서 그 치킨을 먹었다. 눈물과 함께 먹은 치킨은 맛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