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제가 겪었던 여러가지 경험을 쓰는 것이 저와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하고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쓸 때가 많습니다. 이번엔 은둔형 외톨이 경험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저는 아빠가 알콜중독자이고 그로 인해 부부싸움이 심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오빠는 어릴 때부터 저를 때리고 나쁜 짓을 하면서 학대했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저를 괴롭히고 무섭게 하니 저는 어릴 때부터 인간이 싫고 책만이 유일한 도피처였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친구를 사귀고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책을 보는 것을 택해 친구가 없었습니다. 소풍을 가서도 혼자 밥을 먹고 대화를 할 사람은 없었지만 저는 사람이 제게 말을 거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기에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은따’였지만 저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나는 왜 은톨이가 되었나?
그렇게 대학까지 사람과 별다른 교류를 하지 않고 나와 회사에 들어갔으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을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지만 인간관계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자기주장을 하거나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를 다닐 때는 대하기 싫은 사람과는 관계를 끊으면 되었지만 회사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는 점점 스트레스가 쌓여서 마음에 병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다가 견디기 어려워지면 그만두고 다른 회사에 들어가는 것을 반복하던 어느 날 저는 아침에 출근해 컴퓨터를 켜면 갑자기 숨을 쉬기 어려워지는 증상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생활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생긴 신체화 현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참고 회사를 다니려고 하다가 저는 도저히 못 견디고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그 회사는 전부터 제가 들어가고 싶던, 이름 있는 회사였기에 저는 그런 자신이 너무 나약하고 무능하다고 느껴서 깊은 우울감과 무기력감 그리고 자책감에 빠져버렸습니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며칠이나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정말 무능한 쓰레기다. 이제 어떻게 살지?’ 하면서 막막해 하던 때 말이죠. 그때 저는 세상 사람들에게 내 모습을 보는 게 부끄럽고 사람들이 무서워서 밖에 나가기가 겁나고 싫었습니다. 처음엔 그 증상이 너무 심해서 원룸의 문 손잡이마저도 만질 수가 없었습니다. 어쩐지 그 손잡이를 통해 무서운 것들이 묻어 들어올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도 계속 굶을 수는 없어서 건물 내에 있는 편의점에만 간신히 후다닥 다녀오곤 했습니다. 거기 있는 음식만을 조금씩 먹으면서 건물 밖에는 절대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계속 방 안에 혼자 있으면서 밤낮도 바뀐 채 인터넷을 보거나 책을 보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회사를 그만 둔 충격이 좀 가라앉은 후 처음에는 그래도 ‘오래 전부터의 소원이었던 사람과 접촉하지 않고 지내는 걸 해볼 수 있겠다, 그러면 내 지치고 아픈 마음도 나아질 거야!’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렇게 마음이 좀 편했던 건 얼마 안 되어 사라지고 점점 마음속이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입니다. 마음속에 검은색 강철 솜들이 점점 자라나 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듯 했습니다. 환기를 잘 안 시켰기 때문에 방 안 공기는 언제나 텁텁했고 청소도 하지 않았기에 먼지도 많았습니다. 화장실 청소도 별로 하지 않아서 점점 오염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별로 음식을 먹지 않았고 음식물 쓰레기만은 벌레가 생길까봐 두려웠기에 변기에 조금씩 흘려보내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전반적으로 쓰레기와 먼지투성이 방이었습니다.
그런 더러운 방에서 인터넷만 하다가 졸리면 잠들고 다시 일어나면 인터넷만 하면서 지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는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 할 정도였습니다. 가끔가다 인터넷을 하고 있으면 이유도 모르게 초초하고 불안해졌습니다. 아마도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도 될까?’ 하는 불안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하는 절망감이었을 듯도 같습니다.
방 안에 도피해와 혼자 있는 게 안전하게 느껴지면서도 답답하고 무서웠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게 혼란스럽고 두렵기만 했습니다.
나를 울린 말, “우리는 조제님이 더 중요해요”
그렇게 계속 이어지던 은둔형 외톨이 상태는 전혀 다른 계기로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혼자 방 안에서만 있었던 어느 날 갑자기 제가 괴물로 변하는 환촉과 환시가 생긴 것입니다. 그건 너무 생생하게 현실로 느껴져 너무 무서운 것들이었습니다. 그런 느낌이 24시간 쉬지 않고 제게 나타나 저는 너무 무섭고 괴로워서 침대에서 떼굴떼굴 구르면서 비명을 지르곤 했습니다. 아무리 인터넷을 해봐도 그 끔찍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며칠을 그렇게 시달리던 전 진짜 무섭고 죽을 것 같아 인터넷을 검색해 어떤 상담센터에 가게 되었습니다. 왜 병원에 가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정신과에 가본 적이 없어서 바로 가기엔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검색을 통해 찾아낸 상담센터는 꽤 실력이 좋은 곳이어서 저를 검사하더니 사람과 접촉하는 게 필요하다며 저를 그 센터에서 운영하던 집단상담에 집어넣었습니다. 저는 왜 날 이런 모임을 하라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며칠간 이어진 집단상담의 경험을 제게 아주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집단상담이라는 것은 상담사를 지도자로 해서 사람들끼리 밖에서는 말 못하는 솔직한 말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심리적 치료효과가 있길 기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때 제게는 사람과의 접촉 자체가 너무 희박했기에 효과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아무 말이나 해서 상처를 줄 수 있는 밖의 환경과 달리 이곳에서는 서로를 배려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느껴졌습니다. 저의 환촉과 환시는 그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 놀랍게도 바로 사라졌습니다. 인간이 그때 나의 치료약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과 솔직하게 말을 해보지 못 했던 저는 그 집단에서 더듬더듬 내 마음을 말하기 시작했는데 그럴수록 사람들을 엄청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지지해주는 말을 해줬습니다. 그 경험을 마음속에 마치 링거 주사를 맞은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무섭고 불안하고 초초하고 우울하던 마음이 그 집단상담에만 갔다 오면 생기발랄하게 살아났습니다. 물론 그 효과가 계속 지속된 건 아니지만 하루 이틀 정도는 굉장히 살아있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센터에서의 집단상담이 끝나고 돈이 별로 없었던 저는 한 번에 8만 원이나 하는 상담을 지속할 수가 없어서 혹시 무료나 저렴하게 하는 심리상담이 없을까 계속 검색해 보았습니다. 다행히 북촌한옥마을쪽에 여성무료상담소가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어서 계속 망설이다가 상담소에 전화를 걸어보았습니다. 전화를 받은 분은 되게 상냥했고 개인상담은 지금 대기가 좀 있지만 격주 수요일 10시마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상담모임이 있으니 와보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바로 찾아가지는 못했지만 이대로 혼자 있으면 또 환촉과 환시가 시작될지 모른다는 공포심에 저는 그곳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상담소는 아담한 한옥이었고 조금 늦게 가서 사람들은 이미 둥그렇게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저는 낯선 환경이라 또 바로 이야기를 하지는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사람들은 점심시간에 같이 밥을 먹자고 권해주고 힘들면 가만히 있어도 된다고 했습니다. 오랜만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으니 밥도 너무 맛있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기운이 없어 밥을 먹고 졸고 있는 저에게 그분들은 여기서 자도 되고 마음 편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무료 여성 상담소에서 저는 밥도 먹고 잠도 자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서 조금씩 힘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상담소에서는 심리상담 계간지도 냈는데 제가 출판 쪽에서 일했다는 말을 듣고 교정교열을 해보면 어떠냐는 권유가 들어왔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무섭고 자신이 없었습니다. 오타를 내면 어쩌나, 틀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상담소의 선생님에게 말하니 선생님이 제가 평생 들은 말 중에 가장 놀라운 말을 해주셨습니다.
“틀리면 어때요? 우리는 글자 하나 틀리는 것보다 조제님이 더 중요해요.”
아, 이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났습니다. 저는 한 번도 내가 이런 존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일을 할 때 틀리면 절대 안 되지, 틀리는 것보다 내 존재가 소중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걸 가르쳐준 사람도 없었고 스스로도 생각해볼 수 없었습니다.
이 순간을 시점으로 저는 내가 그 동안 성공하고 일을 잘 해야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마음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그 마음이 저를 아주 오랫동안 병들게 해온 주범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인간이고 인간은 성공하지 않아도 그 무엇을 잘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존재인 것이 당연한 것인데 그동안 아무도 내게 그런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소진시키면서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 않을까요. 자신이 가치 없다고 믿으며.
놀라운 것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살아 있을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조금씩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전에 성공해야 한다고 믿으면서 무엇을 할 때보다 더 하는 일이 잘 된 아이러니함입니다.
절박하게 불안하고 초초하게 무엇을 하기보다 힘을 빼고 ‘잘 되면 좋고 안 되도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했더니 더 잘 되었습니다. 그리고 잘 되지 않아도 전보다 상처를 덜 받고 자책을 덜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면서 서서히 저는 삶을 살아갈 힘을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사무보조 알바도 시험 삼아 해보고 그게 어려우면 글로 할 수 있는 재택알바도 조금씩 하면서 무리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정신과 병원에도 용기를 내어 찾아가 맞는 약을 찾으면서 우울증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우울증이 나아지는 경험으로 그림 에세이 <살아있으니까 귀여워>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건 아주 열심히 한 건 아닙니다. 그냥 조금씩 힘을 빼고 하면 좋고 안 되도 괜찮아, 라는 마음으로 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가치 있고 귀여운 존재입니다
우리는 모두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고, 귀여운 존재입니다.
어릴 때부터 이 사실을 알았다면 얼마나 사는 게 덜 힘들었을까요? 공부를 잘 해야, 외모가 아름다워야,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좋은 회사에 들어가야, 돈을 많이 벌어야 가치 있는 존재인 것은 아닙니다.
인생의 목표가 성공과 돈만은 아닌 것입니다. 이 사실을 좀 더 빨리 알았다면 내가 그렇게 오래 아프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입니다. 지금은 예전보다 설렁설렁 인생을 산책하듯 살고 있습니다.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죽습니다. 이제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것을 느끼면서 살고 싶습니다. 지금 혼자 방안으로 들어가 있는 저의 동료 분들에게도 이것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것도 잘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지금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됩니다. 그러다가 하고 싶어지면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은 만큼 하면 됩니다. 삶은 이겨야 하는 경쟁도 아니고 잘 해야 하는 시험대도 아닙니다. 그냥 조금씩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들 하면서 경험해보고 즐겁기도 하고 하면서 살아가는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인생을 ‘경험’할 수 있길 빕니다.
여러분을 응원합니다.